‘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 기사승인 : 2021-09-28 0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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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누구나 자신의 삶은 눈물겹습니다. 녹록지 않은 인생길, 입맛을 잃기도 여러 번입니다. 어떻게든 힘을 내어 또 견뎌봅니다. 그리고 ‘툭툭’ 털면서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눈물 흘린 컵라면을 먹어보지 않고서 인생을 논하지 말라”입니다. 과거 고단한 삶을 대변하던 ‘눈물 젖은 빵’이 어쩌다가 ‘눈물 흘린 컵라면’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라면은 사람들에게 고단함이 연상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작가 김훈은 어려운 시절, 서민들의 주 요깃거리가 되어 준 라면과 김밥에 들어있는 밥벌이의 중압감, 삶의 서늘함과 외로움을 이야기합니다. 1963년 라면이 처음 나오던 때, 춘궁기로 굶주린 국민에게 그 당시 박정희 소장은 “더는 국민을 굶기지 않겠다”라며 울먹였다고 합니다. 여러 화학조미료로 조합된 라면 국물과 밀가루 면발로 주린 배를 달래게 하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사람이 기계인지 기계가 사람인지 모를 만큼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는 라면은 대량으로 생산 유통돼 단번에 끼니 시간을 줄여주는 서민 음식의 상징이 됐습니다. ‘후루룩’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은 시간을 쪼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을 점점 닮아갔습니다.


수출 100억 불 달성. 산업사회에 대한 희망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산업화가 가난이나 굶주림, 질병과 소외된 삶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 접두사처럼 붙었던 ‘발전과 성장’이라는 말은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돼, 오직 국가를 위해 나를 잊고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세계도 놀라는 고도성장을 해냈고 물질적 풍요도 이뤄냈습니다. 배만 곯지 않으면 평화와 평등은 당연히 뒤따라올 것이며 비참한 상황이 막을 내릴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해지지도, 더 자유로워지지도, 더 평등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한층 넓어졌고 허기는 면했지만 물질적 욕망은 더욱 커지고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 또한 커져 갔습니다. 기계 부품처럼 달려온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펴보며 행복을 느끼는 시간을 제대로 가져 보지조차 못했습니다. 경제 성장, 첨단기술을 장착한 사회는 풍요롭지만, 뼛속에서 느끼는 사람의 허기와 한기는 오히려 개인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작가 김훈은 획일화되고 기계화된 삶을 거부합니다. 그것이 물질적 풍요는 주지만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고 나누던 우리의 공동체와 가족을 해체했다 말합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농경사회에서는 어땠습니까? 서로 일을 도와주고 둘러앉아 음식을 나눴습니다. 상추에 된장을 얹어 아래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욱여넣으며 노동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생활전선에 나가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물에 말고 밥숟가락에 통통한 새우젓을 한 마리씩 얹어 먹으면 뱃속이 편안해지고 질퍽거리던 마음은 보송보송해졌습니다. 그런 장면들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돼버렸습니다.


작가 김훈은 ‘맛이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하고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공동체의 해체 속에 점점 더 외로워지는 세상 속에 뼛속 깊이 그리운 그 맛을 마치 고향처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라면은 규격화돼 대량으로 소비되는 음식입니다. 사람들은 그 맛에 인이 박이고 또한 그 맛에 주눅 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된장찌개의 국물이 주는 깊은 위안이나 미역국이 주는 섬세한 위안이 없습니다. 시간의 작용이나 기다림, 환상, 스밈, 우러남처럼 삶의 깊이를 가져오는 기능들이 사라지고 있다 작가는 토로합니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라면서 말입니다. 이 때문에 라면 봉지에 적힌 최적화된 조리법에 자신의 독특한 조리법을 더해 획일화된 맛을 거부합니다. 그는 가짜가 진짜처럼 구는 조미료 맛에 천연 재료를 듬뿍 넣습니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킵니다. 또한 국물과 면의 조화를 위해 더욱 주의를 기울입니다. 국물맛이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며 말이지요. 달걀은 미리 깨서 흰자 노른자를 섞어서 국물의 끓기가 잦아들 때 넣어줘야 합니다.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잘 섞이게 해야 국물과 면발이 조화를 이뤄내고 그것이 바로 김훈 작가표 최고의 라면이 되니까요. 


그렇게 끓여 낸 라면을 독자들에게 건넵니다. 사람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만한 조화로운 맛을 희망하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순한 라면 한 그릇을 내어놓습니다. 그는 달게 먹는 이를 바라보며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고 말합니다.


박가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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