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고원 가는 길

배성동 시민/소설가 / 기사승인 : 2021-05-18 09: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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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 망명보고서(5)
▲ ©문정훈 화가

 

 

1907년 백로 무렵이었다. 원산항을 떠난 증기선은 함흥을 경유해 북청 신포항(新浦港)에 도착했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 달린 일장기를 본 권취문은 원산 세관에서 당한 조선인 순사보가 떠올랐다. 군인으로서 무장해제를 당하는 치욕보다야 더할까마는, 막상 병영을 나서고 보니 자그마한 수모에도 나라 잃은 설움으로 다가왔다. 군대는 나라의 큰 울타리라는 생각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증기선에서 내린 권취문과 이기풍은 각자 볼일을 보고 난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권취문은 약재상 거리로 갔다. 백두산을 비롯해 함경도 심산유곡에서 거둬들인 약재들을 거래하는 점방이 밀집했다. 점방에 들어서자 노장이 류취문을 알아봤다. 노장은 산삼이나 약초, 녹용, 웅담, 호피 같은 진귀한 물건들을 거래하는 상인으로, 왜인뿐만 아니라 청인, 러시아 사람들과도 거래가 있는 큰손이다. 권취문은 가방에 넣어온 비단 보따리를 풀었다. 회령 보을하진에 복무할 당시 홍범도와 합동 사냥을 해 얻은 용골로, 긴요할 때를 대비해서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산사람들을 상대해온 노장답게 예상가보다 낮은 액수를 책정했다. 권취문은 속는 셈 치고 거래를 마쳤다. 


“화승총 몰수한다는 소문 들었겠구랴? 총이 목숨인 포수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요.” 


곧 닥칠 조선인 총포금지령를 말하는 것 같았다. 침략군 일제는 조선병대 강제해산에 이어서 조선 포수들이 소지한 화승총 몰수에 나섰다. 왜제가 조선병대를 해산시킨 데 이어 총포화약류단속법을 준비해 둔 것 역시 의병의 핵심 전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산포수들의 의병 참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 


“장로 영감, 긴히 여쭐 게 있습니다.” 


노장이 곁으로 다가앉는 권취문을 돋보기 너머로 흘겨보았다. 


“홍범도를 찾으려고 하오. 북청 어디 있다는 소릴 들었소만…….” 


조심성 많은 노장이 히물쩍 웃었다. 


“후치령 엄방동 임 촌장을 만나보시구려. 서로 단짝이니 알 수 있을 거요.” 


임 촌장이라면 권취문도 알만했다. 함북육진 변방 고을들을 순환 복무했던 권취문은 이 바닥의 웬만한 산포수라면 알고 있었다. 풍산 출신 임창근(林昌根)은 범 사냥의 일인자 소리를 듣는 어용포수였다. 조선 궁궐에 있는 10여 명의 어용엽사들은 전국 경향 각지의 사냥터를 돌며 범 용골, 곰 웅담, 사슴 녹용, 사향노루를 사냥해 조정에 바치는 일을 맡았다. 어용엽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임창근은 만주와 연해주를 드나들며 입수한 서양식 총으로 후배 포수들을 가르쳤다. 원래 어용엽사와 산포수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파가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백정 취급을 받는 산척(山尺) 들과는 자연히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됐는데, 유독 임 촌장만큼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왜경과 일진회가 그 사람 뒤를 캐고 있소. 하긴 산포수들도 범 잡을 생각은 않고 사람 잡을 궁리 하는 세상이니. 쯧쯧.”

아흔아홉 층층 따비길, 후치령

점방을 나온 권취문은 후치령 길을 잡았다. 마침 이곳 지리에 밝은 이기풍이 있으니 이참에 개마고원을 다 뒤져서라도 홍범도를 찾아볼 참이었다. 북청(北靑) 읍내에 들어선 왜제 북청수비대 연병장 인근을 지날 무렵에는 병사들의 쩌렁쩌렁 고함소리가 들렸다. 북청 거랑 길을 따라 후치령 기슭의 직동 역참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선배님, 저 후치령을 넘어야 배승개덕이 나옵니다. 북청 읍내에서 꼬박 이틀은 걸리꼬마.” 


역참 산발치에서 올려다본 후치령(1355미터)은 까마득했다. 후치령은 함남 북청과 풍산의 경계가 되는 변방 재로, 황초령, 부전령, 금패령과 함께 개마고원으로 들어가는 새외사관(塞外四關) 중 하나다. 들리는 말로는 ‘새외사관의 수문장은 범’이니, ‘만주에서 혜산, 갑산으로 이어져 오랑캐 길’이니 하는 풍문이 있었다. 


직동 봉놋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둘은 아침 일찍 역참으로 나갔다. 먼저 온 흰옷무리 길손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있었다. 사나운 맹수가 설치는 후치령을 넘으려면 적어도 이삼십 명 정도의 무리를 이뤄야 했다. 이들은 풍산이나 삼수, 갑산, 혜산진으로 가는 장사치들이거나 산에 기대어 사는 개마고원 토착민들이었다. 등에 짐을 잔뜩 실은 마바리 떼들도 줄지어 섰다. 조랑말 고삐를 잡은 사내들 중에는 늙은 장사치부터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떠꺼머리총각도 있었다. 헌칠한 키에 도토리 물을 들인 조끼 차림의 총각은 산사람 같아 보였다. 


허리춤에 칼을 찬 왜경 순사가 왔다. 통변 조수와 왜경 앞잡이 일진회로 보이는 조선인들이 뒤따랐다. 후치령까지 호위를 해 주려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변경 지역을 드나드는 불령선인을 단속한다는 구실로 검문을 했다. 왜경 순사가 개화복 차림의 권취문과 이기풍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이기풍은 귀향하는 해산 군인이라 했고, 권취문 역시 같은 동료라 했다. 원산세관과는 달리 까다롭지 않게 통과가 됐다. 검문을 마친 길손들이 기러기 떼인 듯 길을 나섰다. 


후치령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잿마루였다. 이리 봐도 산, 저리 봐도 산, 아흔아홉 층층 따비길은 된 숨을 몰아쉬게 했다. 하늘을 나는 새조차 찾지 않는다는 험한 잿길을 구슬땀 흘리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마바리 떼 중에서 소금을 실은 말은 힘에 부쳐 휘잉 휘잉 힘든 날숨을 토하던 혀로 제 코를 핥아 댔다. 넉살 좋은 소금장수는 넓디넓은 세상을 두고 하필이면 돌아오지 못할 이 삼수갑산 길을 갈까나 하는 익살 섞인 발품타령을 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후치령은 화차가 다닐만한 큰길과 빡센 지름길 두 갈래가 있었다. 선두에 선 떠꺼머리총각은 장꾼들이 모는 마바리 떼를 인솔해 주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장꾼 짐을 받아주기도 했다. 너나없이 된 숨을 몰아쉬며 코가 땅에 닿는 잿길 중턱에 올라섰다. 산 아래는 아직 한여름인데도 여긴 벌써 가을 단풍이 들고 있었다. 후치령 민둥산 중턱에 있는 바위샘터에서 다리쉼을 했다. 남정네들은 곰방대에 연초 불을 붙였고, 바리바리 싸든 짐을 내린 아녀자들은 골병든 다리를 주물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앞장선 떠꺼머리총각이 숲이 우거진 단풍 길을 열었다. 선두는 꽹과리를 치고, 맨 후미에는 나팔을 불어 맹수 출범을 퇴치했다. 맹수 출몰이 잦은 산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맞은 편 산기슭에서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괴성이 들렸다. 


“이크, 범이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놀란 토끼 눈들이 일제히 괴성이 들리는 산기슭 쪽으로 몰렸다. 앞서 길을 열던 떠꺼머리총각이 황급히 뛰어왔다. 중년치가 고삐를 잡은 말 등짐 속에 찔러둔 화승총을 꺼내 들었다. 괴성이 들리는 곳은 후치령 최고봉인 두운봉(2487미터)과 지경산 서북쪽 기슭의 골짜기였다. 


“시오리 밖 골짝이요. 범이 연초 냄새를 맡았꼬마.” 


후각이 예민한 범은 사람 냄새는 십 리 밖, 연초 냄새는 수십 리 밖에서도 맡는다. 또 다시 온 산이 떠나갈 우짖음이 있었다. 간이 콩알만 해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마바리 떼들이 날뛰었고, 예민한 말은 오줌을 싸댔다. 범이 있는 위치를 가늠한 떠꺼머리총각은 범 울음소리가 들리는 골짜기로 사라졌다. 그 행동이 얼마나 민첩한지 재빠른 맹호를 보는 것 같았다.
 

▲ ©문정훈 화가

풍산 파발리 역참걸

겁에 질린 길손들은 똘똘 뭉쳐 후치령을 올랐다. 해발 1300미터가 넘는 후치령 구개목은 고산지대였다. 고원지대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개화 홑옷을 걸친 피부에 와 닿았다. 산 아래 장터걸 기온이 봄 날씨라면 고산지대는 초겨울이었다.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산중역참 파발리에 도착했다. 풍산군 안산면 파발리는 사방이 탁 트인 산간고을이었다. 북청(北靑), 풍산(豊山), 중평장(仲坪場), 혜산(惠山)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조정의 공문을 전달하는 파발꾼들이 쉬어가는 역참걸이 있었으므로 파발리라는 지명이 붙었다. 서북쪽으로는 황수원(黃水院), 동쪽 계류는 남대천이다. 길손들은 역참 인근에 열린 산골장터로 갔다. 무리들은 사람들이 군집하는 장터에 들어서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수선한 장판에는 남자라고는 단지 봇짐꾼들뿐이었고,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산골장터에는 읍내장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물목들이 많았다. 권취문은 마바리 떼 장사치들을 따라 내중주막으로 들어갔다. 태산 같은 후치령을 넘기 전에 한 잔, 넘어서 한 잔, 주막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전소였다. 주막에서 얼요기를 하고 나온 권취문은 난전에서 연초와 당황, 화각 한 통씩을 장만하고, 임 촌장에게 선물할 들쭉술도 구입했다. 마침 떠꺼머리총각과 함께 다니던 중년치가 보였다. 


“말 좀 묻겠소. 후치령에서 사라진 그 총각 말이요. 혹시 누군지 아시오?” 


“댁들은 뉘시요?” 


아까부터 낯선 두 개화복 사내가 남달라 보였던 중년치는 시큰둥한 낯짝으로 되물었다. 갑산 출신 이기풍이 나서 설명하고서야 자초지종을 말했다. 


“임 촌장 아들 석이요. 여기서는 새끼 범장군이라 부릅죠.”


권취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수소문하고 있는 임 촌장의 아들이라니 내심 반갑기도 했다. 두 사람은 중년치가 모는 조랑말 꽁무니를 따라갔다. 


“보아하니 산사람 같진 않아 보이는데 임 촌장은 왜 찾으십니까?” 


“홍범도를 수소문하다보니 임 촌장을 만나 보라더군요. 참, 홍범도 아시오?” 


“이 바닥에서 홍 대장 모르는 사람 있겠소?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안다오. 지금은 북청포수계를 영도하는 산포대장을 맡고 있습죠. 개마고원 사람들 죄다 홍 대장 받들어요. 만민이 다함없는 경모심이죠. 홍 대장은 한 번 사냥을 나가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기약 없습니다. 그러다가도 범이 나타나면 불쑥 나타납니다. 올봄에도 그랬어요. 감자밭에서 일하던 화전집 처녀가 범에게 변을 당해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죠. 홍 대장은 사람고기 맛을 본 식인범은 끝까지 추적하죠. 북청분견소에서도 못 잡던 범을 결국 홍 대장이 잡았소. 잡고 보니 늙고 병든 만주범이였습죠.” 


중년치가 일러준 임 촌장 포수막은 구개목에서 시오리를 더 들어간 서짝골에 있었다. 온통 산으로 에워싸인 산중에 들어서자 외딴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통나무와 진흙 벽 그리고 널빤지를 얼기설기 역은 집이었는데, 돌풍이 심하고 눈이 많은 특성상 지붕이 뒤집히지 않게 많은 돌이 올려졌다.

※ 이 글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배성동 시민기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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