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순진한 통속성 <룰리>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1-11 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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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 <룰리> 포스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20세기까지는 미국의 위성국가쯤으로 여겨졌던 북쪽의 캐나다를 앵글로아메리카, 그 아래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와 그 아래쪽의 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을 라틴아메리카로 통칭한다. 앵글로아메리카를 선진적이라고 하는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후진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후, 국가의 탄생, 정치 등의 맥락과 연관성이 높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역사적 구도 관계, 유럽 안에서도 북유럽과 남유럽 간의 현실과 인식 차이에도 유사한 상관관계가 있다. 


근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종교와 종파를 설명하면서 기후를 차이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한다.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에 따른 심리적 여유는 단일사상에 매몰되지 않음으로써 종교 영역에서 다양한 종파가 공존할 수 있고, 추운 날씨는 신체적 움츠러듦과 동시에 심리적 위축을 유발시켜 단일종교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종교가 정치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종교가 그 자체로 정치였던 시대에 다양성을 인정해온 민족은 왕권을 부정하고 시민주권을 추구했다. 사회주의는 이들에게 대안이었고, 대체로 남유럽,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적극 수용됐다. 이 과정에서 시장논리를 기반으로 물질적 선진체제를 갖춘 민주주의와 대조되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정치적으로는 독재에 사회주의가 이용됐다.


영화가 발명된 이후 잘 팔리는 대중예술 콘텐츠, 언문(言文)을 몰라도 선전선동이 가능한 주요매체 등 두 가지 측면에서 영화가 적극 활용됐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국가가 미국이다. 양차 세계대전에 대규모 제작시스템을 동원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미국영화를 팔았다. 세계질서의 군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미국적 가치를 잘 포장하고 전파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반미국주의가 필요한 국가들은 미국영화 양식을 거부하고 독창적인 방식을 개발했다.

 

▲ <룰리> 스틸

브라질도 영화를 적극 활용한 국가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영화가 소개됐던 1895년 직후인 1896년에 영화가 대중에 공개됐고, 주요한 대중예술로 자리 잡았다. 멕시코가 영화산업이 빠르게 부흥한 반면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은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유성영화 발명 이후 언어 문제가 있는 국가들은 춤, 노래, 슬랩스틱코미디를 주로 활용한다. 공식적으로 16개 언어를 사용하는 인도 영화들도 춤과 노래 중심의 영화가 발달해왔고 브라질의 초창기 영화도 그랬다. 1959년 쿠바혁명에 영향을 받아 브라질 영화는 민중의 언어로 기능하기도 했다. 20세기 말까지 정치적 이유로 브라질 영화산업은 활로를 찾지 못했다. 영화가 각국의 문화적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브라질 영화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브라질의 문제가 표면화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파되는 수단이 됐다.


영화를 유통하는 창구가 극장 스크린과 TV 화면에서 스마트폰과 온라인으로 확장되면서 21세기의 브라질 영화도 민간 차원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OTT의 마케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유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중국도 56개 민족을 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 민족에게 할당하는 TV 채널이 있다. 브라질의 영화산업 일부는 넷플릭스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브라질 영화 <룰리>(2021, 세자르 호드리게스)는 1990년대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와 유사하다. 적당한 유치함, 유쾌함, 통속적 감성과 함께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판타지가 잘 섞여 있다. 여성 주인공이 의사임에도 가운 이너웨어가 가슴골이 드러날 정도라거나, 모든 등장인물이 브라질 100쌍둥이인 양 죄다 착하기만 하다거나, 가족 간의 사랑에 집중하고 동성애에 관대해 보이지만 근원적인 고민과 성찰은 없다는 점 등은 몰입을 방해한다. 특히 일관되게 지나친 화사한 장면과 시간대가 구분되지 않는 배경 장면은 미숙함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1980년대 할리우드와 1990년대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도 이러했고, 확실히 이전의 브라질 영화와는 차별성이 있다. 다만 브라질 영화마저 할리우드 영화와 구분되지 않는 독창성과 독특성이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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