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치매, 착한 공생 <소중한 사람(折り梅)>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09-28 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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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지난 21일은 ‘치매 극복의 날’이었고, 내달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치매 극복의 날은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에 의해 지정됐고, 노인의 날은 1997년부터 시행된 보건복지부 주관의 법정기념일이다. 노인의 날은 2000년부터 정부 행사에서 민간 노인 관련 단체의 자율행사로 전환됐다.


기술의 발달 속도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제도 등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문화지체라 한다. 예컨대 온라인 영상 플랫폼의 사건‧사고보다 이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항상 늦고, 보이스피싱 범죄가 정책‧법률보다 언제나 한발 빠르다. 주요 문화지체 현상 중의 하나가 노인 문제다. 전체인구 대비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에 따라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 진입까지 24년이 걸린 데 비해 우리는 17년밖에 안 걸렸다. 프랑스의 115년, 미국의 73년, 독일의 40년 등과 비교하면 우리는 무척 빠르다.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되면 평균 5명 중 1명이 노인이다. 통계청은 한국의 초고령사회 시점을 2026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노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은 의료서비스이고, 가장 두려운 질병이 치매다. 노인과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국가별로 노인과 치매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스웨덴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13, 플렉스 할그렌)은 노인의 모험과 ‘행복한 죽음’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 선진적인 노인 복지정책을 제시한다. 2011년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소중한 사람>(2002년 제작, 마츠히 히사코)은 치매 노인과 가족 간 화해를 다룬 내용으로,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일본이 치매 노인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지원하고 해결해나가는지 보여준다. 이에 반해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추창민)에서는 다양한 노인들의 군상을 제시하는 가운데 치매 노인과 가족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한국도 최근 몇 년간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가족사를 통해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정책 차원에서 진일보하긴 했지만 <소중한 사람>에서 나타나는 치매에 대한 진보적 담론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원제는 <오리우메(折り梅)>로, ‘꺾인 매화’라는 뜻이다. 극중 치매 노인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는데, 그 어머니가 ‘매화는 꺾어도 제각기 자라난다’는 말을 한다. 버림을 받았음에도 꿋꿋하게 살아내어 아들을 잘 키워 며느리와 손녀, 손자를 얻었고, 며느리의 헌신으로 치매 노인에서 모든 걸 잊었을지언정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노인은 생활환경이 급변하게 되면서 치매 증상이 발현되는데, 시간을 역행하는 지남력장애, 품위를 유지할 수 없는 행동장애, 언어 사용에 문제가 있는 인지장애, 우울하고 불안정한 정서장애 등이 심화된다. 삶의 고통을 인내하며 살았던 그녀는 언행이 거칠어지는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극중 유일하게 그녀의 절대적 지지자이자 보호자인 며느리에게 도시락을 집어 던지고, 때리고, 화분을 망가뜨리고, 말로 상처 입히며 박대한다.


한편, 며느리는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가족을 설득해 직접 돌볼 것을 결정하면서도 자신의 일과 가족 간 관계 유지에 소홀하지 않는다. 불치병인 치매환자이자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훨씬 적은 노인을 보듬으면서도 일상의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 며느리의 모습은 여성 감독이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영화의 내용이 당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내러티브의 한 축일 뿐일지라도, 우리 사회의 노인과 치매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방안과 대안을 제시한다.


노인은 가족의 공부와 노력으로 ‘나쁜 치매’환자에서 ‘착한 치매’환자로 개선됐고, 가족 일원을 모두 잊어버린 채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지만 가족은 그녀를 영원히 아름다운 어머니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화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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