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역사, 옛 울산청년회관 터(현 삼일회관)를 제대로 보존합시다!”

배문석 / 기사승인 : 2021-08-19 0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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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광복절 특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회·여성·노동·교육운동의 큰 터전
천금으로 살 수 없는 100년 역사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
북정동 재개발로 철거 위기…보존 위한 각계각층 여론
묵묵부답 울산시, 원도심 문화사업 맞물린 돌파구 필요

울산광역시 중구 성마을길 3번지(북정동 58-6). 울산미술관 신축 공사장 바로 옆에는 ‘삼일회관’이라는 아치형의 낡은 간판이 달려 있는 건물이 있다. 미술관을 마주 보는 1층 출입구 쪽으로는 사회적기업 ‘거마’가 입주해있고, 2층은 대한민국통일건국회 울산본부 사무실로 사용한다. 오랜 시간 울산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사회·문화 중심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인근 공사장에서 날아온 먼지가 쌓여간 채 방치되고 있다. 조만간 시작될지 모르는 주택재개발 공사로 헐리게 된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불안함마저 감돈다.
 

▲ 1921년에 세워졌던 옛 울산청년회관 모습과 현재 삼일회관 모습(중구 성마을길 3)

 


울산청년회관과 삼일회관, 100년을 이어온 이야기

삼일회관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1921년에 낙성한 “울산청년회관”이 단아한 목조건물로 서 있었다. 1920년 2월 울산청년회가 창립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지역 유지들과 청년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성금을 모아 건설한 공간이었다. 3.1만세운동(1919년) 직후 울산 전역에 청년회가 만들어지면서 항일운동의 기운이 깊게 안착하던 시기였고, 울산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진 청년회관이다.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21년 3월이었고, 11월에 완공 후 낙성식을 열었다. 이곳에서 울산청년회가 각종 강연회·강습·토론회를 열며 민족 계몽활동과 회원교육 공간으로 사용했다. 평상시에는 강습소 해영학원, 유치원, 노동야학이 운영돼 민중교육의 장소였다. 


1923년 10월에 발간된 잡지 <개벽> 38호에 실린 울산기행문을 보면 울산읍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이라고 그 위치를 매우 칭찬하며 소개한다. 야트막한 언덕에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높은 빌딩이 없던 시절에는 태화강 남쪽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곳에 터를 잡은 정신 또한 높게 평가했다. 


“더욱히 울산청년의 성혈이 엉기여 결정된 청년회관은 장엄하게 청공이 놉히 소사 시중을 감시하는 감이 잇슴은 이야말로 무엇보다 이상의 결미를 비상케 한다.”-잡지 <개벽> 제38호 ‘울산만장(蔚山漫草)’ 1923년 8월 1일
 

▲ 울산청년회관에서 결성된 단체 창립 신문 기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간회울산지회, 혁신회, 노농동우회, 울산청년동맹, 울산노동조합, 근우회울산지회)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독립운동의 핵심 공간으로

울산청년회관이 들어설 때 바로 앞은 조선시대 울산읍성 객사인 학성관을 이용해 만든 울산보통학교였다. 그리고 옆으로는 울산군청(현 울산동헌), 울산법원(출장사무소), 울산신사가 연달아 세워져 있었다. 울산경찰서(현 시립미술관 부지)도 서쪽 아래로 100m 거리였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후 기존 조선시대 관청 자리를 일제 지방통치기관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런 한복판에 들어선 울산청년회관은 울산지역 청년들뿐 아니라 울산 전체에 항일운동에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1927년에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모두 결집한 일제강점기 가장 컸던 항일단체인 신간회(新幹會)울산지회 발기대회를 연 곳이 울산청년회관이었다. 창립식을 열려고 하니 일제 경찰이 방해를 시작했다. 창립대회에 앞서 금지명령을 내리고 무력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런 사건은 1929년 6월, 울산지역 청년단체를 하나로 묶은 울산청년동맹 결성식을 청년회관에서 열기로 하고 준비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울산노농동우회(1923.12), 울산혁신회(1925.3), 울산노동조합(1929.8), 근우회울산지회(1930.10) 등 각종 단체가 창립하고 회의를 열 때마다 청년회관을 찾아 이용했고 사회운동의 중심지로 지역 사회에 자리매김했다. 울산지역 민족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 교육운동, 노동운동이 한데 어우러지는 소중한 터로 사랑받은 것이다.
 

▲ 1929년 울산청년회관에서 열린 신간회울산지회 설립 1주년 기념 단체 사진

 


1971년 재건축된 삼일회관, 재개발구역에 묶여


해방 직후에는 울산건국청년단(회장 김태근)이 사무실을 두고 사용했다. 해방 초기 울산읍내의 치안을 맡았던 단체였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잠시 미군 통신실로 이용하기도 했고, 울산초등학교가 육군제32병원으로 사용되자 학생들을 위한 임시교실로 대체됐다. 


지금의 삼일회관으로 이름 붙여 재건축된 것은 1971년이다. 울산지역 거부이자 정치인이었던 고기업이 기부한 금액을 내어놓았다고 한다. 건국청년회가 1960년 5.16 군사정변 후 해산된 뒤에도 지역 인사들이 모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낡은 건물을 헐고 개축이 필요했다. 신축된 건물에는 1970~80년대에 시민대학이 운영되기도 했고, 저명인사들을 울산에 초청해 연 강연회 장소로 쓰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향토사연구회(회장 김석보) 사무실로 사용했고, 지금은 대한민국건국회 울산지부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토지는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국유지로 돼 있기 때문에 북정동·교동 건축재개발구역에 포함된 후 건물 존폐 논란이 빚어진 상태다. 


현재 북정동·교동 일대(B-04구역)와 복산동 지역(B-05구역)은 주택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B-05구역이 기존 주택 철거를 마치고 공사가 진행 중이고, B-04구역은 주민 보상작업 진행 과정에 집단소송 등 진통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삼일회관 위치가 B-04구역에 들어서는 공공시설과 공공주택단지 경계에 놓여있다.


먼저 공공시설은 진통과 논란 끝에 울산미술관 건립 부지가 옛 울산초등학교 자리에서 옛 북정공원과 옛 중구도서관 자리로 옮겨가면서, 울산초등학교는 임시 공영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삼일회관은 미술관과 임시주차장 사이에 꼭지점처럼 위치하는데 바로 그 자리에 공공주택(11 단지)과 통행 도로를 놓겠다는 것이 현재 내놓은 계획이다. 그 위로는 북부순환도로까지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둘러싼다고 한다.
 

▲ 북정동·교동 일대(B-04구역)에 들어서는 공공시설과 공공주택단지 경계에 삼일회관이 놓여있다.

 


개발이익으로 바꿀 수 없는 문화가치…제대로 되살려야

삼일회관을 이어온 울산청년회관의 역사를 아는 시민사회에서는 재개발로 철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존과 계승을 제안해왔다. 2018년 울산미술관 건립을 시작하기 전 열린 시민공청회에서도 근현대 역사와 연결된 사업 시행을 촉구하기도 했고, 2019년에는 ‘3.1회관 존치를 위한 시민대책위’가 발족한 바 있다. 하지만 울산 중구청과 울산시청은 그런 목소리를 애써 듣지 않았다. 현재는 B-04구역 재개발을 명분으로 지자체에서는 뒷짐을 지고 앉은 형세다. 


울산 문화계 인사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어떤 수만 금의 개발이익이 있다고 해도 현재 삼일회관 공간이 지닌 문화가치를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재개발로 공간이 사라져버리면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온 이야기도 함께 빛이 바래게 된다는 충고다. 이미 건물이 무너져버린 공간도 되살려서 복원하고 문화유적으로 만들면서, 버젓한 공간을 사라지도록 방치한다는 비판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더구나 옛 울산청년회관이 지닌 가치를 알고 있는 시 담당 공무원들이 있음에도, 작은 표지판 하나 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중구 문화의거리나 젊음의거리 곳곳에 근·현대 건물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지만 이곳은 외면한 셈이다. 아예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 원도심 역사기행 참가자들이 삼일회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뜻 있는 시민들 나서야…원도심 역사명소로 탈바꿈

삼일회관을 지키고 있는 건국회 회원들뿐 아니라 보존과 계승을 바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울산시가 나서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개발이 되기 전까지 장소에 깃든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원도심 역사기행 때 삼일회관 앞을 찾는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토지가 국유지이기 때문에 울산시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울산시가 지방정부로서 도심 재개발 과정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장소가 사라지는 것을 막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존치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충분히 협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재개발 업체로 지정된 공공·민간기업과도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더구나 원도심을 문화·예술 거점지역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것과 맞물려 본다면 현재 삼일회관이 마주한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할 최적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해답 중 하나로 울산 원도심의 근현대사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자는 목소리 역시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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