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의 수다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8-17 0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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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 제주 해녀박물관에 전시된 불턱의 모습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와 모닥불을 피워놓고 옷을 갈아입으며 담소를 나누는 곳,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얼핏 보면 작은 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곳을 제주도에서는 불턱이라 불렀다. 불턱은 차가운 물에 언 몸을 녹이고,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또 물질에 필요한 도구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이 작은 성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오늘 잡은 해산물이 얼마나 되는지, 이 해산물을 팔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요즘 우리 마을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 각종 이슈를 넘나들며 정보를 나눴을 것이다. 그것으로 누군가는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보면 마을이나 해녀들 간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회의장으로서 역할도 했던 것 같다. 


꼭 불턱이 아니라도 빨래터나 시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이런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면 누구나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데 이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배우는 있는 기회가 된다. 또 ‘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연대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사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제주 해녀들은 예전부터 물질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바다의 한 구역을 정해 거기서 채취되는 해산물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마을 일에 수고하는 이장에게 주는 ‘이장바당’,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육성회비를 충당해주는 ‘학교바당’ 등도 있었다. 이들은 공동체의 이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헌신적으로 참여하고자 했다. 이런 사회사업들은 어쩌면 불턱과 같은 공공의 장에서 해녀들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한 일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현대식 탈의장이 생겨 따뜻한 온수도 나오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만큼 어린 엄마는 물질하러 오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수다가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요즘 해녀들은 물질만 하지 않는다. 그림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해녀들의 삶을 보여주는 공연에도 참여한다. 물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 에바 알머슨이라는 유명한 스페인 화가가 해녀 그림을 그렸는지, 왜 그들의 문화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는지. 불턱에 옹기종기 모인 그녀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해녀들의 고된 삶만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온,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문화가 아닐까.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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