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할까요?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 기사승인 : 2022-01-04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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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함께

사람들은 종종 ‘차 한잔할까요?’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달콤한 과일 주스를 마신다. 나도 차 마시자고 해놓고 커피를 주문할 때가 많다. 그리고선 ‘차’는 뭘까? 차를 마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사전적 의미의 ‘차’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을 말한다. 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차나뭇과의 상록교목 또는 관목(학명 Camellia sinensis)의 잎을 우려낸 것이다. 또 차의 두 번째 뜻으로 찻잎이 아닌 식물의 잎이나 뿌리, 과실 따위를 달이거나 우리거나 하여 만든 마실 것을 통틀어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즐겨 마시는 보리차, 둥굴레차, 인삼차, 유자차, 허브차 등은 사실 ‘차’ 앞에 ‘대용’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부터 마셔 온 것으로 추측되는 차는 일종의 치료제와도 같았다.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차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기원전 2700년경에 약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주 오래전부터 차를 마셔왔고 사랑했다. 지금도 사용되는 차 관련 어휘나 관습, 인물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삶에 차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했는지 알 수 있다. 일상다반사, 다방, 다과, 다례 등의 단어만 봐도 차를 마시는 일이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제사나 혼례에 차를 올렸다거나 오늘날까지도 행해지는 차례도 본래 조상께 차를 올리는 데서 비롯한 것도 마찬가지다.


차는 오래전부터 일상에서 약용적 가치와 기호식품의 가치와 종교적 가치를 두루 아우르며 존재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적 색채는 거의 사라졌고, 약용의 기능은 많이 약해졌지만, 기호음료로서는 보다 넓은 의미로 확대돼(찻잎 이외의 식물을 포함하여) 여전히 ‘차’라는 단어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출근하면 ‘차 한잔하고 시작할까요?’라고 말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뽑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동료를 위해 차를 우린다. 십분 남짓의 짧은 모닝 티타임으로 그날 하루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오후가 되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차 한잔하면서 숨 좀 돌리자’라며 휘핑을 잔뜩 올린 딸기라떼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강변을 걷다 강바람에 몸이 얼면 ‘차나 한잔 때리자’며 일단 눈에 보이는 카페로 뛰어간다. 그리고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난 주말이 되어서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찻잎을 고르고 찻잔을 꺼내고 차를 우린다. 


현대의 ‘차 한잔하다’라는 문장은 관용구다. 대화의 시작을 열어주고, 휴식을 알리고, 긴장을 완화하고, 의지를 다지고,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갖자는 관용적 표현. 꼭 찻잎을 우려낸 것이 아니라도 ‘차를 마시다’라는 행위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 시간들이 포함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직장인의 체력을 급속충전하는 힐링 포션이고 오후의 단 음료는 깎였던 생명 하나를 충당하는 하트이며, 정성스럽게 우려낸 차는 내 영혼을 충전시켜주는 성수와도 같다. 오늘도 나는 인스턴트커피로 긴급 수혈을 하면서 할 일 목록을 체크하다가 문득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 들여 만들어준 음료를 마시며 하늘을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잠깐의 여유가 절실해졌다.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지난 일 년간의 나를 돌아본다. 늘 아쉽고도 아쉬운 날들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참 힘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잘 할 순 없었나.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 특히 올해는 여유시간 동안 나를 위로하고 돌보기보다 휴식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방임했던 것 같다. 쉰다고 쉬고 논다고 놀았지만, 그것마저도 강박적으로 게임이나 취미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용도로 여유시간을 소비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고. 바쁜 틈에 여유가 생기길 기다릴 게 아니라, 부러 잠깐의 틈이라도 비집고 여유를 만들어야 한다. 나를 돌보고 위로할 시간은 기다려서는 오지 않는다. 나의 외부적인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 영혼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을 치유하고 채우는 것은 차 한잔 마시며 한 숨돌리는 그 짧은 순간이면 된다.
잠깐, 차 한잔할까요?

정온진 글 쓰는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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