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에 대하여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2-01-04 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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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1986년이었습니다. 햇살 좋은 봄에 선배들과 함께 반구대 앞 민박(반구대 앞 공중화장실 그 자리)에서 묵으며 2박 3일 동안 당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였던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를 탁본하였습니다. 훈련된 선배들이 주로 탁본 작업에 참여하였고, 저와 같은 보통의 학생들은 탁본 과정을 지켜보며 반구대 앞 대곡천(현재 반구천)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얻은 탁본들은 전문적인 처리를 거치며 표구가 되었고, 가을에 교내 탁본전시회에 걸렸습니다. 탁본과 전시회 전 과정에 참여한 것은 즐거운 기억으로 제게 남아있지요.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고대사를 담당하는 교수님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다운동으로 지표조사를 가자는 것입니다. 3학년 선배들이 주축이었지만, 밝은 인사성(?)으로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던 저도 따라붙었습니다. 아마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 듯한데 기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니 다운동아큰마을아파트 그 자리인듯합니다. 집들이 몇 채 있었고, 주택 뒤에 파헤쳐진 산자락이 있었지요. 누군가 장비를 이용해 판 듯 보였습니다. 깨어진 토기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뭔지도 모른 채 선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마냥 좋아 더위 속에서 토기 조각들을 채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1986년 더위 속 토기 조각을 찾던 그곳에서 본격적인 매장문화재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한 것이었지요. 1993년 창원대 박물관이 발굴을 시작하였고, 1995년에는 울산대학교 사학과(현 역사문화학과)가 발굴에 참여하였습니다. 울산대학교에 박물관이 없었기에 학과 차원에서 발굴조사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조사된 곳이 ‘다운동 유적’이었습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울산의 소국, ‘굴아화국’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사학과의 ‘다운동 유적’ 발굴 참여는 1995년 12월 초 울산대학교 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울산의 제1호 등록 박물관이었습니다. 교수연구동으로 이용되던 건물에 박물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건물 입구에 이름표가 달렸지요. 나무현판 제작자에게 대학 박물관이 제1호 박물관인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그는 그럴 리 없다는 확신으로 제2호 박물관이라고 새겨 납품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시 제작해야만 했지요. 문화시설이 부족했던 당시 울산 상황과 관련한 웃픈(?) 해프닝이었습니다.


이후 울산대학교 박물관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으로서 다양한 조사사업에 참여하였답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의미 있는 발굴은 ‘연암동 유적’ 조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울산대학교 박물관이 북구 무룡고등학교 건립부지에 대한 매장문화재를 조사하였고, ‘연암동식 주거지’라는 독특한 형태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아직도 발굴 현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동천강 강가에 살면서 청동기시대 울산사람들은 강의 범람으로 마을이 홍수 피해를 입게 되자, 마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물 피해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창안해 냈습니다. 집 둘레에 구덩이를 둥글게 파 집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지요. 그때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집자리였지요. 그래서 동네 이름을 딴 ‘연암동식 주거지’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뒤 동천강 가를 따라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고, 그곳에서도 ‘연암동식 주거지’가 조사되었습니다. 연암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동천강 강가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 형태를 보여줍니다. 


2000년 이후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이 전국에서 설립되고, 조사기관의 자격 기준이 강화되면서 대학 박물관의 매장문화재 조사사업 참여기회는 축소되었습니다. 대학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은 전문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으로 이전되어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도 울산대학교 박물관은 이제 국보가 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정밀실측 조사연구를 하고, 얼마 전엔 울산역사문화대전 구축용역작업을 수행하며 변화를 모색하였습니다. 그러나 폐관 결정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폐관을 하루 앞둔 12월 30일, 울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후배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며 안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답니다. 역사적 책무를 다하였다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대학 박물관이 수행해야 하는 사회·교육적 기능은 남아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나 봅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 역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새해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새해에도 모두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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