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킨 빙도(氷島) 노채(老寨)마을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8-24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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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 빙도 노채마을

 

 

중국 내몽고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때 일이다. 수년간 벼르고 있던 중국 차산지(茶産地) 기행을 하게 됐다. 운남성(雲南省) 서쌍판납(西雙版納) 지역의 육대(六大) 차산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육대 차산지는 란창강(瀾滄江)을 끼고 형성돼 있으며 대부분 소수민족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서쌍판납 지역의 차산지에서는 저마다 자랑하는 차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차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4대 명차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 4대 명차(보이차)는 의방(倚邦)의 만송(蔓松), 맹해(盟海)의 노반장(老班章), 임창(臨倉)의 빙도(氷島)와 석귀(昔歸)다.


차산지 기행에서 느낀 것은 유명 차라는 것이 대부분 고산지대에 있다는 것과 소수민족 마을이라 낙후돼 있다는 것이다. 교통이 좋지 않아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육대 산지를 둘러보는 가운데 특별한 교훈을 얻은 곳이 의방의 만송과 임창의 빙도노채(老寨)다. 이 두 마을은 역사와 환경이 비슷하고 차도 최고를 자랑한다. 만송마을은 청나라 황실공차를 만들면서 최고가 됐다. 해발 1340m 이상에서 자란 고수차인데 향이 좋다. 마시면 쓴맛이 거의 없고 단맛이 가득하다. 특히 만송의 왕자산(王子山)은 황실다원(皇室茶園)이 됐다. 빙도 노채마을도 대설산 해발 1500m에 있다. 노채마을은 야생고수차의 보고(寶庫)이며 2007년부터 중국 정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주민은 납호족(拉祜族)인데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산 지 500년이 넘는다. 노채마을에 들어서면 500년 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주민 42가구 182명이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차나무마다 고유번호를 매달아 놓고 보존하고 있었다. 빙도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이 빨리 사라지며 향이 깊고 회감이 좋아 마신 후 입안에 단맛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마을 고수 쇄청모차(曬晴母茶)로 만든 보이차는 즉석에서 우려 마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처럼 두 지역의 환경이나 생산된 차의 특성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만송은 지금 거의 없어지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빙도는 보존된 고수차를 통해서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있음을 본다. 그 이유는 역사와 전통을 지킨 마을과 그렇지 못한 마을의 차이에 있다. 만송과 빙도는 똑같이 고산지대이고 길이 험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만송은 문화대혁명 때 개발의 유혹에 넘어가 황폐화됐고 그 유명했던 만송은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가 됐다. 빙도 노채마을은 끝까지 개발을 거부했다. 자연을 보존하고 역사를 지키며 전통을 고집했다. 그 결과 빙도 노채마을 고수차는 가치가 노반장을 넘어 제일의 상품이 됐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을 정도다. 1000여 그루의 고수차 나무에서 생산되는 보이차는 그해 357g 한 편이 즉석에서 160만 원을 호가했다.


그동안 인류는 개발 논리에 빠져 보존 가치를 뒤로 밀어냈다. 생태 환경 등의 말은 이단시돼 언제나 소외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부에 있던 생태 환경 보존 등의 담론이 중심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산업으로,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성장 발전해가고 있다. 빙도 노채 마을은 차 생산뿐 아니라 관광 수입도 대단하다. 앞으로도 중국 차산지의 대표적인 장소가 될뿐더러 최고의 보이차로 각광받고 그 명성을 이어 갈 것이다. 나는 이런 결과가 당연하다 생각한다. 빙도 보이차가 중국 제일의 차가 돼 오랫동안 이 지역을 부흥 발전케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와 환경을 지키고 보존한 빙도와 개발 논리에 밀려 황폐화시킨 만송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찻자리의 다담론(茶談論)으로 전해질 것이다. 내 집 차방을 방문하는 차인들에게 직접 제작한 빙도를 마음껏 대접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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