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냉혹함 혹은 희화화: 영화 <특별시민>과 <정직한 후보>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09-07 0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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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한국인에게 정치란 ‘함부로’ 말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정치인은 근엄하고 강하며 잔혹한 자들이라는 인식과 동시에 한없이 비굴하고 비열하며 비겁한 자들이라는 억하심정을 우리는 갖고 있었다. 그 근원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반공주의자를 거쳐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잘 살아남아 어느새 권력의 철옹성을 지어버린,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피딱지처럼 이고 앉은 우리의 여린 속살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을 풍자하는 매체가 제법 있긴 했지만 대체로 어둡고 무거운 내러티브는 일반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풍문으로 떠돌던 전두환 씨의 내연관계를 다룬 영화 <서울무지개>(1989)는 ‘보통 사람’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야 영화계의 묵직한 스토리텔러 김호선 감독을 통해 ‘떡영화’ 본새로 겨우 등장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간책’으로 포장한 김제철의 <적도>(1994, 우리문학사, 전 4권)가 출간됐고, 경찰을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 <투캅스>(1993, 강우석)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가진 자’들의 비루함을 다루기 시작한 기점은 <공공의 적>(2002, 강우석)으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화를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예술은 공식적으로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됐음을 분명히 한 결과물이다. 작금의 ‘한류’는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투캅스>가 썩을 대로 썩은 경찰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1984, 끌로드 지디)를, <공공의 적>이 인텔리 계층의 정신병리적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미국, 캐나다 합작영화 <아메리칸 싸이코>(2000, 메리 해론)를 표절했다는 시비가 공론화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두 영화 모두 정부·정책의 변화에 따라 탄생할 수 있었던 장르였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로 들어서면서 정치는 희화화되기 시작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고졸 출신 대통령을 폄훼했다. 반노무현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을 외쳤고, 친노무현은 애정을 가득 담아 그를 “바보”라고 불렀다. 학벌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았지만, 그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고문의 흔적까지 온몸으로 웅변하던 거물이었고, 군부독재정권과 3김 시대의 종말 앞에서 평등한 분배라는 일종의 전 국민적 부채의식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보수 측에서 숭배하는 미국이 보호했다.


노무현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만끽했던 대중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부활한 통제된 자유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블랙리스트가 회자됐고, ‘어쩌다 블랙리스트’나 ‘가짜 블랙리스트’들까지도 이를 일종의 훈장처럼 여겼다. 기기와 통신의 발달로 팟캐스트 등의 대안언론이 빠르게 진화하고 확산되면서 부와 권력의 중심과 그에 기생하는 자들까지 모두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특히 영화 <내부자들>(2015, 우민호)은 반(反)자유에 대한 저항의 정점이었다.


대안언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이슈로부터 선거 관련 콘텐츠가 다양한 매체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박근혜 정권에서 제작된 <특별시민>(2016, 박인제, 개봉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2017년 4월)과 문재인 정부 하의 <정직한 후보>(2019, 장유정)는 누가 집권해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군중심리와 집단지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되는지 보여준다.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역의 최민식 씨는 권력의 ‘맛’을 아는 영악함,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장하는 연기력, 충성스런 참모의 피를 밟고 전진하는 잔혹함, 동지(同志)를 장기말로 여기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고루 갖춘 정치인의 모습을 연기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정치인은 일반 대중에게 이런 모습이었다. <정직한 후보>에서 3선 국회의원으로 분(扮)한 라미란 씨는 습관성 거짓말쟁이에서 판타지적 사건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말을 여과 없이 내뱉는 모습으로 반전된다. 그의 모습에 관객이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인이란 이처럼 희화화된 객체로 인식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성숙한 시민에게 정치란 삶의 일부이고 정치인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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