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다시 만난 전설 속의 울산 호랑이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 기사승인 : 2022-01-03 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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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

한국 공업화의 첫 출발 1962년 임인년(壬寅年)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즉 호랑이해이다. 60년 전 같은 임인년이었던 1962년 울산은 상전벽해의 격변이 시작됐다. 박정희 군사 정부는 그해 1월 옛날부터 성곽들이 즐비한 군사도시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공포했다. 곧 불과 일주일 만에 당시 대현면 납도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함으로써 공업 도시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이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가 군사도시에서 범처럼 속전속결로 진행한 우리나라의 공업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 후 지구 지정 9년 만인 1971년 반구대암각화가 공식 발견돼 한반도에서 멸종된 호랑이를 9마리나 만날 수 있었다. 공업 도시 울산에서 태어난 호랑이는 이제 환갑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지역적으로 울산, 설화 중에서 전설에 한정해 지역 민중들에 투영된 울산 호랑이들의 맨얼굴을 살펴본다.

Ⅰ. 인간까지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본능에 충실한 포식자

◯ 호식(虎食)과 명당(두서면 내와리 탑골)
갑자기 주위가 음산해지더니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고 있었다. 상여꾼들이 상주들을 에워쌌다. 호랑이는 순식간에 맏상주를 물고 갔다.(두서면지)

◯ 호식(虎食) 안샘(웅촌면 은현리 안샘)
옛날 호랑이가 배가 고파 개를 잡아먹으려다 어린 처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물고 가 ‘불사금터’에서 잡아먹었다. 주민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 올라갔더니 뼈만 남아 있었다.(웅촌면지)

◯ 사학골[死鶴谷](언양읍 반곡리 사학골)
사학골에서 어느 각시가 목화를 따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주민들이 ‘묵은등’에서 각시를 잡아먹은 것을 확인했다. 그때 호식당한 사람들의 뼈를 묻은 묵묘가 남아 있다.(언양읍지)
 

 
Ⅱ. 인간과 처절하게 싸우다가 목숨을 다한 맹수

◯ 문수산과 박 포수 설화(삼동면 작동리)
호랑이는 쏜살같이 박 포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그는 침착하게 몸을 피하면서 다시 한 발을 쏘았다. 호랑이는 바로 나자빠졌다.(삼동면지)

◯ 박 포수에 관한 설화(삼동면 작동리)
총알을 장전하여 범굴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뛰어나와 박 포수 어깨를 물었다. 격투 끝에 범을 잡았다.(삼동면지)

 

▲ 관음골저수지에서 바라본 문수산(문수산과 박 포수 설화)



Ⅲ. 주민들과 싸우다가 물고 간 인간을 두고 달아난 패배자


◯ 호사(虎死)한 열부(삼동면 작동리 상작마을)
아내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남편을 따라갔다,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징을 치며 따라가서 합류했다. 주민들은 호랑이에게 횃불을 들이대고 아낙은 남편의 다리를 잡아당겨 남편의 시신을 뺏었다.(삼동면지)

◯ 가천리 강당마을 열부 전설(삼남읍 가천리 도적골)
호랑이가 ‘도적골’까지 사내를 물고 갔다. 아내가 고함을 지르며 따라갔고, 동네 사람들은 양푼을 두드리며 올라갔더니 호랑이가 남편을 두고 도망갔다.(삼남마을 조사 보고서)

 

◯ 호랑이에게 물려간 강당마을 어린이(삼남읍 가천리 불썬바우)
호랑이가 애를 물고 달아났다.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불썬바우’ 앞에서 살아 있는 애를 찾았다.(삼남마을 조사 보고서)

 

▲ 삼남읍 가천리 사지에서 바라본 불썬바우(호랑이에게 물려간 강당마을 어린이)


○ 이 대목 딸 호식(虎食)당한 전설(온양읍 외광리 귀지마을)
귀지마을 처녀들이 대운산 아래에 딸기를 따고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한 처녀를 물고 달아났다. 이 사실을 안 처녀 어머니와 동민들이 횃불을 들고 징을 치면서 뛰어갔다. 처녀 아버지가 횃불로 거세게 호랑이를 위협하자 달아났다.(온양읍지)

 

 

Ⅳ. 주민들이 횃불 들고 양푼만 두드리며 쫓아가도 달아난 겁쟁이


○ 가천리 강당마을 열부 전설
양푼을 두드리고 올라가니까 호랑이가 남편을 두고 가 버렸다.(삼남마을 조사 보고서)

 

▲ 삼남읍 가천리 장제큰못에서 바라본 도적골(가천리 강당마을 열부 전설)


○ 이 대목 딸 호식(虎食)당한 전설
처녀 어머니와 동민들이 횃불을 들고 징을 치면서 쫓아가니 호랑이가 달아났다.(온양읍지)

 

▲ 온양읍 외광리 귀지마을에서 바라본 대운산(이 대목 딸 호식 당한 전설)

 

Ⅴ. 변신하여 효자를 도운 의로운 동물


◯ 홍가네 집터 전설(웅촌면 대복리 복골)
한 스님이 개 100마리를 먹으면 어머니 병이 낫는다고 했다. 홍 씨는 호랑이로 변해 개를 잡아다가 어머니를 봉양했고, 백 번째 개를 잡으러 가려고 변신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집을 나가 버렸다.(울산 문수산 일대의 문화유산)

 

▲ 웅촌면 대복리에서 바라본 복골(홍가네 집터 전설)


◯ 홍생원(洪生員)네 대밭의 범(온양면 동상리)
부모가 갑자기 병이 났는데, 의원이 개를 1000마리 잡아먹어야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효자는 간절히 기도를 드려 호랑이로 변할 수 있는 주문 책을 얻었다. 그는 마지막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로 변신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 아내는 그 사정을 모르고 그 책을 불사라 버려 사람으로 변할 수 없었다.(울산광역시사)


 

Ⅵ. 사소한 은혜도 갚았던 너무나 인간적인 보은자(報恩者)


○ 하작마을의 범골(삼동면 작동리 하작마을)
아낙네들이 산에 갔다가 개호주를 고양이 새끼로 잘못 알고 귀여워 쓰다듬었다. 갑자기 “어흥~” 하는 호랑이의 고함 소리를 듣고 바구니도 던져 버린 채 신발이 벗겨진 줄 모르고 돌아왔다. 다음 날 호랑이가 마루 아래에 모두 가져다 놓았다.(삼동면지)

○ 열녀 정씨 부인과 호묘(虎墓)(상북면 향산리 능산마을)
꿈에 본 그 함정을 찾아갔더니 그 속에 호랑이가 빠져 있고,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가지고 죽이려고 했다. 부인이 눈물을 흘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 주민들이 따랐다. 그 호랑이가 정씨 부인을 업고 그 길로 묘소에 가서 함께 시묘살이를 했다.(구비문학대계) 

 

▲ 상북면 향산리 능산마을(동래정씨 정려각과 영호총, 영호영세불망비)

 

 

Ⅶ.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靈物)


◯ 열녀 정씨 부인과 호묘(虎墓)
호랑이가 살짝 정씨부인에게 다가온 그 날부터 매일 밤만 되면 같이 시묘살이를 했다.(구비문학대계)

◯ 가분데고개에서 사람 살린 호랑이(강동면 정자고개)
어느 날 가분데고개에서 버스 앞에 호랑이가 가로막았다. 승객들은 호랑이에게 모두 양말을 던져서 호랑이가 가지는 사람을 내려놓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애의 양말을 깔고 앉았다. 한 할아버지가 어린 애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면 함께 내렸다. 호랑이는 버스가 떠나자 홀연히 사라지고, 버스는 그 고개를 내려가다가 떨어져 모두 사망했다.(울산어울길)

 

▲ 북구 강동동 정자고개(가분데고개에서 사람 살린 호랑이)


울산 지역의 전설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단순한 포식자부터 위험을 알고 미리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영물까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포식자 호랑이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또 호랑이는 총을 지닌 인간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해 죽임을 당하거나 힘겹게 물고 간 사람도 횃불이나 양푼 소리에 질려 내주고 줄행랑을 치는 우스꽝스런 겁쟁이로도 등장한다.


한편 인간이 호랑이로 변신하여 인간의 효행을 돕기도 하고, 자신의 새끼를 귀여워해만 줘도 은혜를 갚는다.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은혜를 입지 않아도 미리 구해주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울산권 전설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지역에 회자하는 관용구처럼 이른바 ‘천(千) 층(層), 만(萬) 층, 구만(九萬) 층’이다. 다양한 군상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는 호랑이에 대한 민중들의 민간 사고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울산 공업화의 60년은 호랑이가 사냥하듯이 질주해 왔지만, 이제는 사냥 직전의 모습처럼 조금씩 머뭇거리면서 달리다가 떨어뜨린 고도성장의 그늘도 함께 껴안고 갈 때다.

 

글: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사진: 김정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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