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의 길목에서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8-24 00:00:12
  • -
  • +
  • 인쇄
기억과 기록

지난 금요일, 해운대를 방문했습니다. 부산이 거리두기 4단계인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이뤄진 것이었지요. 옛 스승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습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스승은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방송기자 생활을 했죠. 1970년대 후반 대졸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기자였답니다. 사회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거죠. 유신체제의 종말과 신군부의 등장이라는 시대를 직접 목격했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취재차 광주를 방문했고,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죠. 광주에서의 취재 경험이 계기가 돼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냈답니다. 


기자 생활을 접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지요. 부산지역 대학의 교수로 먼저 임용된 부인을 따라 가족과 함께 부산에 있다 1984년 울산대 교수로 왔습니다. 다음 해 울산대가 종합대학이 됐지요. 전두환 정권 시기 ‘졸업정원제’가 실시됐습니다. 모집정원의 130%를 선발한 뒤 졸업 과정에서 30%를 추려낸다는 것이죠. 대학 학력에 대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변혁의 핵심 세력이었던 학생들의 관심을 사회문제에서 학업으로 돌리려는 나름의 꼼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정원제 적용으로 졸업을 못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고, 학생운동이 약화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하여튼 그 과정에서 늘어난 학생 수만큼 교수의 충원이 필요했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젊은 교수들이 대학으로 유입됐습니다. 울산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교수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야당이었던 신민당이 1985년 초 총선에서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놓더니, 다음 해 초에는 ‘대통령 직선제 1천만 서명운동’을 시작했답니다. 여기에 종교계와 여성계 일부가 호응했고, 대학교수들도 가세했지요. 학생세력뿐 아니라 사회운동세력도 직선제 개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죠.


내 스승도 동료 교수들과 의기투합해 호헌을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지요. 6월 민주항쟁이 있기까지 두 번의 민주화를 위한 시국선언이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6월을 거리에서 보냈죠. 이런 활동의 결과가 ‘민주화교수협의회’의 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교수협의회는 학내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시민사회의 지원 요청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말입니다.


이번 스승 방문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울산광역시의 “울산민주화운동사 기초자료조사 연구용역”이라는 연구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울산의 민주화운동을 기념·계승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입니다. 울산의 민주화운동사를 정리하기 위해 울산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문 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만났고, 이번 스승 방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직선제 개헌으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됐고,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활동도 활발해졌죠. 권위주의적인 정치 권력의 감시와 통제 아래 비공개적인 소모임 활동을 해오던 사회운동가들은 6월 민주항쟁 이후 시민단체를 결성해 시민과 청년, 노동자들의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대중 활동을 펴나갔고, 노동자들은 권익향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야권의 분열로 정권교체에 실패했고, 정권 연장에 성공한 집권 세력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지요. 공안정국이 시작된 것입니다. 노동자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됐고, 파업 노동자와 지원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과 수배, 구속 그리고 해고가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억압과 탄압의 공세가 강화될수록 그만큼 저항행위도 거세졌습니다. 저항행위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런 굴곡을 거쳐 현재 우리가 있습니다. 


희생이 따르는 저항이 있었기에 역사는 진보해왔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입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기념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진보는 멈춰 설 수 있습니다. 서툴지는 모르지만, 시작하지 않음보다 낫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