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등산, 소풍을 가도 좋은 봄날의 화장산

노진경 시민 시민기자 / 기사승인 : 2021-05-17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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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행

여기저기 꽃이 만발이다. 평년 같으면 마음이 설레 온 산을 헤집고 다녔을 터다. 허나, 고헌산 자락으로 이사 온 뒤, 예전처럼 산을 자주 찾지 않게 됐다. 거실에서 고헌산이 보였고, 책상에 앉으면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이 보였다. 부엌에서는 가지산을 볼 수 있었다. 

 

▲ 책상에 앉아서 만나는 (왼쪽부터)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산행이 점점 뜸해졌다. 예전 지리산 산하의 목통골에서 만난 어른께서 “우리는 도통 지리산에 올라가지질 않는다.”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울산시내에 살 때는 언양읍이 촌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은 언양시장에 가도 도시 느낌이 든다. 모든 가치는 언제나 이렇듯 상대적이다. 


지난달 함께 산행한 벗이 신불산에 가자며 연락이 왔다. 다시 가슴이 콩닥거린다. 함께 걸음을 맞춰보기로 했다. 산행 날 아침, 바람이 보드랍고 볕이 쨍쨍했다. 양달은 흡사 곧 여름이 올 듯했고, 응달진 곳은 아직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봄이지만 여름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들어오는 벗과 상북면 능산마을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 능산마을 논길을 걸으며

편의점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한 모금 들이킨다. 여기저기 날리는 꽃가루와 송화가루 덕에 목이 칼칼하다. 벗과 함께 편의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니 슬슬 꾀가 난다. 바로 걸어갈 수 있는, 뒷동산인 화장산은 어떠냐 묻는다. 즉흥적인 그이도 흔쾌히 수락한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볍다. 

 

▲ 산의 초입 삼목원에서 보는 간월재와 배내봉

 

▲ 산을 오르다 쉬어가며 풍경을 감상한다.

어떤 산이냐고 묻는 산우에게 산책이나 소풍을 간다는 마음으로 걸어도 좋은 산이라고 답했더니, 그럼 등책(등산+산책)이라고 줄여 부르자 한다. 그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든다. 산행을 가는 마음이 가볍고 흥이 난다. 논길을 걸어 삼목원이 있는 산의 초입으로 든다. 


바람이 일자 소나무의 노란 송화가루가 구름처럼 뭉텅 날린다. 일 순간 우리는 휙 뒤돌아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드니 등 뒤쪽에도 소나무가 있었다. 물론 별 소용이 없는 행위였다. 우리의 아둔함에 그저 웃음이 났다.


청명한 봄의 하늘과 연두의 빛깔이 시원하다. “어쩜 이런 자연의 색은 그림으로 표현이 안 될까요.” 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산우가 말한다. 격하게 공감이 된다. 그 시원한 경치를 마주하며 걸어 오르니 세이지가 나온다. 탁 트인 못 어귀, 판판한 돌 위에 앉아 싸 온 과일 도시락을 먹는다. 흡사 제주 어느 오름에 올라온 듯한 느낌이 든다. 코로나로 다니지 못하는 방랑병이 살짝 치유되는 느낌이다. 

 

▲ 제주의 오름 같은 세이지

다시 걸음을 걸어, 능골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왕벚나무꽃이 만발이다. 벗은 이 길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하다며, 너무 아름답다 한다. 그리 큰 감흥 없이 길을 걷다가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면밀히 숲을 보게 되고, 그 말에 공감하게 됐다. 역시 좋은 기분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것을 체득하는 순간이다. 

 

▲ 만발한 왕벚나무꽃

 

▲ 왕벚나무 숲길

능골봉에 도착해 누군가 손글씨로 쓴 귀엽고 정겨운 정상석과 그 뒤로 아름다운 지내 들의 논을 감상한다. 최상의 상태는 중도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빼곡한 숲도 좋지만, 잘 정돈된 밭과 논을 마주하는 것에 비할까. 


다시 걸음을 걷는다. 화장산 정상 인근의 너럭바위로 간다. 그 바위는 딱 두어 사람 앉기 좋은 넓이로 평발을 치고 앉으면 편안한 자세가 된다. 쉬어가기 딱 맞춤이다. 해가 넘어가며 바람이 온기를 잃었지만, 낮 동안 볕을 받은 바위가 따뜻해 기분 좋게 한참을 앉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언양읍의 건물도 땅도 모두 네모반듯하다. 가까이 보이는 나무, 돌멩이들은 다 제각각의 모양을 갖고 있는데 사람이 만든 건물들은 하나 같이 네모다. 

 

▲ 능골봉 정상에서 지내리를 배경으로

 

▲ 능골봉 정상석과 지내 들의 논

 

▲ 정상 인근 너럭바위에 앉아 언양을 내려다 보는 중

그 네모들을 한참 내려다보며, 도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인다. 역시 네모보다는 다양한 제각각의 모양을 더 편안해하는 자신을 자각한다. 각진 삶보다는 편안한 제각각의 모양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노진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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