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만큼 보인다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9-07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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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 주계진의 환룡삼족호

문화재청장을 지냈고 명지대 석좌교수인 유홍준은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에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물이 다 아는 것만큼 보일 테지만 특히 역사성을 강조하는 문화재나 골동품 등은 모르면 그냥 눈앞이 깜깜하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말한다. 


내가 남들보다 좀 일찍 은퇴한 것은 그래도 총명이 흐려지지 않을 때 그동안 꿈꿔왔던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기 위해서다. 역사기행 문화기행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중국 동북에서 활동하는 동안 내게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 관광을 시켜줬다. 물론 직접 안내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돌아가면 거의 연락이 온다. 여행팀을 구성할 테니 꼭 여행 가이드가 돼 달라는 것이다. 왜 내게 부탁하느냐고 물으면 설명을 너무 잘 해줘서 볼 수 없었던 것까지 깊고 넓게 보게 돼 감동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발효차(醱酵茶)를 먹는 유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차(茶) 또한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말할 수밖에 없다. 차뿐만 아니라 발효식품은 모두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보관은 잘 됐는지 제대로 만들어졌으며 재료는 좋은 걸로 사용했는지를 따지고 그 가치를 논한다. 차는 그로 인해 맛(味)과 향(香)과 기(氣)가 천차만별이라서 오랜 품차(品茶)를 통해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고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명차는 아는 사람의 눈에 띄게 마련인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 많은 공부를 하고 떠난다. 가고자 하는 곳의 정보를 수집하고 역사를 찾아본다. 지도를 펴서 지형을 살피고 그 지역의 명산물과 유명 인물들을 탐구한 다음 한껏 부풀어진 기대를 갖고 달려가는 것이다. 기대감에 설렘과 흥분된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여행하지 않는다. 


요즘 나는 찻집 기행을 하고 있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좋은 찻집을 찾아 쉬었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찻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찻집 분위기가 편안히 쉬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설사 좋은 환경의 찻집을 가꿔 놓았다 하더라도 차를 우려내는 주인이 차를 모르니 좋은 팽주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를 모르는 주인이니 내어놓는 차가 좋은 차일 수 없고 다양하지도 않다. 나는 찻집에 들어가는 순간 주인에게 팽주가 돼 줄 수 있느냐를 먼저 묻는다. 내 집에서야 손수 차를 끓이고 대접하지만 나와서는 다른 팽주를 만나 그분의 인격과 생애가 묻어나는 차를 맛보고 싶은 것이다. 담소 가운데 좋은 영향을 받고 행복해지며 오래 기억하게 된다. 대부분 찻집 주인들이 영업 마인드는 있는데 차를 모르니 씁쓸하다. 


아무리 좋은 차도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면 좋은 차일 수 없다. 내가 얼마나 차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청허당(淸虛堂) 다향만실(茶香滿室)에 오는 많은 차인(茶人)에게 편안하게 차를 강의하고 있다. 차의 일반적인 지식은 책 한 권 읽어보라 하고 내 찻자리에서는 차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찻자리가 재미있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차를 알아보는 안목을 위해 품차를 많이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차를 좋아하게 되고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차호(茶壺)도 그렇다. 알지 못하면 명품을 앞에 두고도 지나치게 된다. 많은 다기(茶器)를 수집했지만 그중 보물처럼 아끼는 차호가 있는데 주계진(周桂珍) 선생의 환룡삼족호(環龍三足壺)다. 20년 전 중국 베이징 시장 노점 상인이 가지고 나온 것을 구입했다. 당시 그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차호를 다루고 사라고 권했다. 순간 내 눈을 사로잡았고 금방 명품임을 알 수 있었다. 단돈 몇만 원에 구입한 차호가 지금 어마어마한 가격의 보물이 됐다. 청허당 다향만실을 찾는 사람 중에도 안목(眼目)이 있는 사람만이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만물이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람들은 말한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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