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의 발전,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9-07 00: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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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태화강의 기적’이라니, 한강의 기적이 떠오르는 표현이다. 1978년 3월 30일 신문 기사(<동아일보>, ‘공업단지 양지와 음지의 새 풍속도(3) 울산공단’)에서는 중화학 공업도시로 발전한 울산의 모습을 ‘태화강의 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978년 울산은 전국 공업단지 가운데서 임금수준이 가장 높았다. 울산의 공업단지 기능공의 평균임금은 전국 기능공의 평균임금 6만9168원보다 42%가 많은 9만8202원이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평균 3만 원선으로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대표 무대로서 울산의 공업단지는 기적 같은 성장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집약적 부문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중화학공업단지 안에서도 노동집약적 성격을 갖는 일부 분야에는 누군가 저임금을 받으며 고강도 노동을 해야 했다.


중화학공업단지의 새로운 기술을 가진 주인공으로 ‘남성 기능공’이 선택됐다. 기술인력 확보가 시급했던 정부는 실업계 고등학교와 직업훈련기관을 통해 기능공을 양성하고자 했다.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의해 실업계 학생에 대한 우대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1967~71년 과학기술교육진흥 5개년 계획을 통해 실업교육을 확대했다. 1962년을 기준으로 할 때 1969년 말 농고는 15.7% 증가한 데 비해 공고는 41.0%, 상고는 52.7% 증가했다. 특히 정부의 지원은 공업고등학교에 집중됐다. 1973년에 출범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는 공업고등학교 특성화 정책을 추진해 기계공고, 시범공고, 특성화공고를 설립·지정하고 일반공고를 양적으로 확대한다. 학비 지원, 병역 혜택, 자격증 취득, 취업 보장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계공고·시범공고·특성화공고는 모두 ‘남자 공고’였고 일반공고 역시 여학교는 극히 드물었다. 1980년 문교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공업고등학교의 88.8%가 남자학교로 설립됐고 공학은 8%, 여자학교는 3%다. 반면 상업고등학교는 여자학교 53%, 공학 25.9%, 남자학교 20%로 공업고등학교의 남성화와 상업고등학교의 여성화 현상이 보인다. 공업고등학교는 53%가 국공립학교, 상업고등학교는 68.9%가 사립학교로 설립됐다. 국가의 교육재정은 공업고등학교에 집중 투자됐고, 사립학교 설립자들은 공업고등학교에 비해 운영비가 적게 드는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실업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여학생들에게 선택지는 사립 상업고등학교뿐이었다. 


이 시기 울산의 실업계고등학교 설립 현황에서도 성별화 현상이 드러난다. 1962년 울산농림고등학교(전 울산공립농업학교, 1937년 개교)가 울산실업고등학교(현 울산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남성 기능공을 양성했다. 여학교로는 1962년에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학교법인 울산육영회, 현재 공립으로 전환됨), 1966년에 언양여자상업고등학교(현 울산산업고등학교), 1967년에 웅촌상업고등학교(울산서여자상업고등학교를 거쳐 현 울산미용예술고등학교)가 설립됐다. 


학교에서의 기술교육 체계와 더불어, 사회에서 기술노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직업훈련제도가 시행됐다. 직업훈련은 국가에 의해 실시되는 공공훈련, 기업주에 의해 실시되는 사내훈련,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기관에 의해 실시되는 인정훈련이 있다. 공공훈련은 중화학공업 직종 및 기계공업 분야의 기능공 양성을 목적으로 실시됐으며 국가가 100% 지원했다. 1980년 공공훈련 참여자 중 96%가 남성 노동자였다. 애초에 중화학공업 여성 노동자를 양성하는 공공훈련은 없었다. 노동청의 직업훈련과는 공공훈련 분야 중에서 ‘여성 직종’을 따로 분류했다. 1972년 노동청이 117개 직종 중 여성 직종 10개로 한정한 직종은 전화 교환, 방직(미싱자수, 직기 운전, 염색), 공예(수편, 나전, 죽세), 미용 등으로 경공업이나 서비스업 중심이다. 여성 노동자는 중화학공업단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울산지역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술 획득의 기회는 선택적으로 부여됐다. 여기서 배제된 여성 노동자들은 미숙련 노동자로 규정됐고,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저임금과 구조조정이었다. 미숙련×저임금×보조인력=여성노동자, 숙련×고임금×필수인력=남성노동자라는 오랜 기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진 공식은 중화학공업도시 울산의 기획 단계에 만들어졌다. 산업화 시기 울산지역의 산업, 노동자, 노동운동을 되돌아봄에 있어서 ‘젠더’라는 렌즈가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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