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무변, 다시 가을이 오고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1-08-17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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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훨훨’

풍월무변(風月無邊)이라. 바람과 달, 자연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말에서 빌려와 옮겨 놓은 이름이 경주 안강읍에 있는 옥산서원의 누마루 무변루(無邊樓)다. 서원으로 들어서는 역락문을 넘어 고개를 들고 누각을 바라본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의 한낮,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입추였다.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사물이 정지된 것 같은 적막함이 어느 여름보다 깊숙하게 와닿는다. 폭염과 바이러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는데 무엇이 변한 것일까. 

 

▲ 구인당에서 바라본 무변루

 


각 지방에서 가장 풍수가 뛰어난 명당에 자리를 잡는다는 한국 서원의 위세를 모르던 바는 아니지만 소나무 숲을 지나 계곡물이 흐르는 마을로 들어서자니 예사가 아니다. 도대체 이런 멋진 풍광 속에서 어떻게 학문을 닦았을까 싶다. 휘돌아 나가는 낙동강과 펼쳐진 병산의 자연 속에 지어진 병산서원도 그 멋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웠지만 옥산서원도 못지않게 자연을 품에 안았다. 자옥산과 화개산이 앞뒤로 병풍을 치고 그 사이 자계천이 흐른다. 서라벌 신라에서 조선의 흔적이라는 품위까지 더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9곳이 201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나라에서 설립했던 향교와 달리 개인이 후학과 선인의 제향을 위해 지은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한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과정을 가치로 인정받았다. 경북도에만 5곳이다. 옥산서원이 있는 세심마을과 옥산마을은 보물과 국보를 꽤 가지고 있는 마을 자체가 보물인 곳이다. 

 

▲ 옥산마을의 여름 들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제외됐고 불국사가 불탔던 시절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옥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대학자이며 동방 5현으로 불리었던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관직에서 내려와 7년을 기거했던 독락당이 있고 그가 죽은 20년 후 서원이 건립됐다. 서원 최초로 누마루의 건축양식을 도입했던 옥산서원의 무변루는 특이하게 2층에 방이 있고 온돌형식을 갖췄다고 한다. 벽을 굴뚝으로 삼은 독특한 양식의 가치로 현재 국가 보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무변루를 들어서면 옥산서원의 편액이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역락문, 무변루, 강당인 구인당, 사당까지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고 전형적인 전학후묘, 전재후당 서원의 일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강당인 구인당에 앉아보면 시선이 바깥을 볼 수 없도록 조금 폐쇄적으로 지어져 있다.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 머물지 말라는 뜻일까. 방문한 날도 마침 촬영이 있어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었다. 다녀간 다음날 대권주자 한 분이 방문해 제향을 하고 갔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고 없는 사람을 기리고 교육해 마땅한 도리를 가르친다는 것, 학문을 닦는 것은 다만 ‘인(仁)’에 이르기 위함이라는 뜻을 오가는 사람들이 되새긴다. 

 

▲ 역락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옥산서원의 편액은 추자 김정희의 글씨다.

 


안강의 옥산마을과 양동마을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한국의 역사 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으니 서원과 함께 2관왕이다. 홀로의 즐거움, 그가 마흔에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을 정리하고 은둔하며 머무르던 독락당(獨樂堂)으로 향하기 위해 너럭바위 세심대 계곡을 건넌다. 세심대, 흐르는 물에 몸을 닦는 것은 마음을 흘려보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독락당으로 향하는 세심대 앞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 아래 물놀이를 하고 있는 피서객들이 많다. 고요한 서원 앞에 어울리지 않는 외람된 풍경 같지만 어차피 지금은 비현실적인 여름이지 않는가. 세상에 없는 시절과 계절을 견디며 즐기고 웃는 모습조차 귀해 보인다. 단풍 물든 가을 풍경을 상상해보면 그래, 늦가을이면 더없이 좋겠다 싶다. 

 

독락당의 솟을대문이 멋스럽다. 행랑채나 담장보다 높이 솟게 만들어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문간채를 높인 솟을대문은 양반의 집을 상징하는 대문이기도 하다. 입구 여름꽃이 함께 붉다. 5백 년 독락당에는 현재 후손이 살고 있고 한옥 체험으로 민박을 운영한다. 계정으로 이어지는 담장 사이로 누운 향나무를 지나 계곡물에 닿을 수 있다. 묵어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보니 세세히 살피기는 조심스러워 다음 기회에 달빛을 품고 하룻밤 유숙을 기약해 본다. 

 

▲ 독락당 솟을대문

 


마을에서 가장 마음에 뒀던 정혜사지 13층 석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딱 걸려있다. 바람 한 잎 없어 세상 모든 사물이 정지된 진공의 시간 한여름 태양 볕 아래. 숨을 곳이라고는 하나 없는 벌판 위, 혹여 그림자가 눈치챌까 발을 최대한 지면에 가까이 두고 묵음으로 걷는 한여름의 한 걸음은 천 년이다. 지난 무수한 태양 볕을 몸에 새기고 한 철 지나 짙어지는 소나무의 몸에 더 깊고 검은 지도가 그려진다. 그런 여름의 흔적을 좋아한다. 


먼 곳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탑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오기를 알고 있었다는 듯 자태가 그대로 그리움이다. 입구에는 피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려니 하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 수형을 보니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데 화룡점정이다. 붉은 꽃이 아니라 보랏빛이어서, 여인의 이름인 듯 단정하게 앉아있는 정혜사지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꽃과 탑은 천 년이 넘는 다른 시간을 건너 만났지만 앞으로 가없이 서 있을 시간을 생각해 보자면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보 제40호

 

 

정혜사지 13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국보 제40호로 지정돼 있다. 원 절터의 크기로 짐작해보면 정혜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상부 일부만 한 차례 수리됐다고 하는 이 석탑은 13이라는 층수도 유일하거니와 두 번째 기단 이상에서 비율이 맞지 않게 줄어들면서 쌓아진 것이 독특한 모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생경한 독특함이 더 눈에 남는다. 


세상을 헤매다 지쳐 돌아온 바람 앉고 하루를 짊어지고 사라질 노을 앉고 태양 볕에 달궈진 나도 앉았다. 갈 여름을 배웅하고 오는 가을을 마중하기 좋은 들녘에 호기로움이 넘친다. 


돌아와 글을 쓰며 이언적 선생의 한 시 한 편을 읽고 있자니 옥산마을 여름 향기가 벌써 그립다. 다녀온 저녁부터 신기하게도 밤공기는 선선해졌다. 풍월무변, 참 틀림이 없는 바람과 달이 아닌가.

初夏野興(초하야흥)

李彦迪(이언적)(1491~1553)

野水潺潺流不盡(야수잔잔유부진)
幽禽款曲向人啼(유금관곡향인제)
閑吟閑步仍閑坐(한음한보잉한좌)
十里江郊日欲斜(십리강교일욕사)

초여름 들판

들판에는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어디선가 날 향해 정답게 지저귀는 새
한가로이 읊으며 걷다가 앉아 쉬는데
길게 뻗은 강둑으로 해는 기운다.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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