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 스페인의 다시 문화‘패권’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08-24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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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G7정상회의 참석 후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국빈 방문했다. 스페인 상하원 합동연설 뒤 상원도서관을 찾았을 때 도서관장은 ‘신중국지도첩’을 소개했는데, 여기에는 울릉도와 천산도(독도)가 포함된 1730년대 한반도의 모습이 있었다.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한창 홍보 중이던 당시 독도가 명실상부 ‘우리 땅’임을 공고히 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닛산의 바르셀로나 공장 매각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던 스페인이 팬데믹 이후 일본보다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1492년 통일왕국을 세운 스페인은 16~17세기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고, 최고의 전성기였던 18세기에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프랑스대혁명 즈음 스페인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다가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망 후 제국 역사의 막이 내린다.


스페인은 아프리카 대륙 북단과 남유럽의 교두보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으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이슬람적 세계관이 혼재된 혼성적 문화가 발달해왔다. 18세기 후반 가톨릭의 정치적 통제로부터 시작된 스페인 문화는 20세기 초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검열과 감시로 언론과 방송이 고사 상태에 이른다.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발명과 동시에 스페인에서도 영화제작이 이뤄졌지만 이같은 시대적 흐름에 스페인 영화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기기와 통신의 비약적 발달로 콘텐츠 플랫폼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그때 태어난 대형 OTT(Over The Top, 인터넷 영상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이 ‘넷플릭스’다. 2009년 시작된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존 영상 플랫폼의 빈약한 콘텐츠와 차별적으로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으로 단숨에 전 세계 영상시장을 장악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 패턴을 분석해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정 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스페인의 <종이의 집> 시리즈가 시작됐고, 20대를 중심으로 이슈였던 이 작품은 영상산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스페인의 위상을 새롭게 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이를 통해 스페인 영상 콘텐츠를 처음 접한 이들이 많다.


내달 공식 개시되는 시즌5에 진작부터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에서는 2022년 공개 예정으로 현재 리메이크 작품을 촬영 중이다. 캐스팅 면면을 보면 원작 배우들과 싱크로율(동질성)을 맞추려 애쓴 점이 보인다. 리메이크의 본질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새로운 전개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화된 시점에 한국판 <종이의 집> 또한 세계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이의 집’은 조폐국을 풍자‧은유하는 말로, 시즌1, 2는 조폐국을, 시즌3, 4는 중앙은행을 턴다는 범죄물이다. 한정된 공간,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과 희로애락이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극중 털이범들은 ‘달리 가면’을 쓰는데, 이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후 각종 시위에서 이 가면을 사용했는데, 대한항공의 일명 ‘땅콩회항’ 시위에 활용된 ‘가이 포크스’ 가면과 의미가 상통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5, 제임스 맥티그)에서 독재적 정부 체제에 항의하는 자경단 우두머리 ‘V’의 것이다. 가면은 약자들, 상이한 인간 군상들에게 하나의 지성 또는 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페르소나적 힘을 가진다. <브이 포 벤데타>는 미국과 독일의 합작품으로, ‘V’는 영국인이다. <종이의 집>에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로 응용된 것으로 본다. 실제 가이 포크스 가면과 달리 가면은 상당히 닮아 있다.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로, 당시 탄생한 영화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의해 회화의 연장선에서 실험적인 매체로 기능했다. 달리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는 14분 분량의 실험영화로,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영화로 크게 이슈가 된 바 있다.


선과 악이 혼재된 <종이의 집>은 현실 반영으로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5)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색깔로 서로의 익명성을 보장했다면 <종이의 집>은 대도시명을 활용한다. 이는 넷플릭스의 세계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G7 정상회담 이후였다면 주인공인 ‘도쿄’는 ‘서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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