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한국영화: <자유만세> 최인규 감독, 친일의 고해성사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08-18 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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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한국의 영화운동은 크게 3개의 범주로 구분된다. 1925년 조직돼 1935년 해산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카프(KAPF)영화운동”,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의 민족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민족영화운동”, 그리고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영화로써 투쟁한 “민족민주영화운동” 등이다. 통상의 ‘운동’이 신진세력이나 아방가르드 세력에 의해 추진된 것에 반해 ‘민족영화운동’은 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범민족적 목표와 함께 기성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제외한 모든 영화인과 연대했다. 친일 세력만 아니라면 이념은 상관없었다.


불쾌하거나 또는 애끓는 사실은, 친일 스타들이 민족영화운동의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분단 이후 미군정의 억압에 대항해 영화인들은 투쟁적으로 변모했고, ‘보수적 영화인’들은 여기에서 탈퇴했다(‘보수’는 현재 한국 정치권의 보수‧진보 의미와 상이하다.). 민족영화운동을 과격하게 이끌었던 잔존 조선영화배우들은 식민지시기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일본의 프로파간다 영화에 출연하며 일제강점기 아래 호사를 누렸던 자들이다. 지원병으로 출연했던 한국의 장 가뱅(1930년대 프랑스의 유명 남성 배우)인 최운봉, 지적인 이미지의 남승민과 독은기, 그들의 현모양처 또는 누이로 분했던 문예봉과 김신재가 그들이다.


일제 산하 ‘조선영화사(社)(조영)’ 소속 조선영화인들은 해방 후 ‘조영’을 인수받은 뒤 조선영화사(史)를 기록했는데, 이들이 친일에서 민족영화인으로 환골탈태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비(非)조영 영화인들은 이들의 모든 행위를 거부했다. 결국 반민족행위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윤백남 감독을 위원장으로 한 ‘조선영화건설본부’가 한반도 영화계의 중심세력이 됐고, 비조영 영화인들의 상당수는 월북했다. 윤백남은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의 맹서>(1923)를 연출했는데,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이 무성영화는 일본제국주의 체신국에 조선인의 저금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계몽영화로, 시사회는 있었지만 극장 개봉은 하지 않았다.


‘조영’의 대표적 영화인들은 전술한 자들 외 감독에 안석영, 이병일, 서광제, 박기채, 방한준, 최인규, 촬영에 양세웅, 김학성, 이명우, 기술에 이재명, 편집에 양주남, 배우에 서월영, 김한, 이금룡, 김일해, 이원용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던 최인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면서 제대로 된 사진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냉엄한 후세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해방 직전 징병 프로파간다인 <태양의 아이들>(1944), <신풍의 아들들>(1945), <사랑과 맹세>(1945) 등 일제 군국주의 선전영화를, 해방 이후에는 <자유만세>(1946), <죄 없는 죄인>(1948), <독립전야>(1948) 등 반일‧항일영화를 만들었다.

 

▲ <자유만세> 스틸

 


최인규의 <자유만세>는 한국영화사에서 고전의 정수로 인정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영화계에는 현실을 왜곡하는 할리우드 문법에 대응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네오리얼리즘이 확산됐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대표 감독으로 인정받는 <자전거 도둑>(1952)의 비토리오 데 시카에 비견되는 이가 바로 최인규이고, 작품은 <자유만세>다. 최인규 이후 한국영화의 리얼리즘과 한국영화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마의 계단>(1964)의 이만희, <오발탄>(1961)의 유현목 등 우수한 감독들이 배출됐다.

 

 

▲ <자유만세> 포스터

 


그러나 그는 작품의 우수성과 높은 평가에도 반민족행위에 대한 준엄한 단죄를 피하기 위해 반일 또는 항일영화로 고해성사를 했다는 비판 또는 조롱을 받는다. 또한 그는 납북돼 생사를 알 수 없다거나, 납북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만 남긴 채 누구도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존재는 잊혀가고 있다.

 

 

 

 

▲ 최인규

 

 

영화적 천재성은 높이 사더라도 민족 앞에서 한 개인의 치욕적인 재능이 미화될 수는 없다. 이 땅에 더 이상의 최인규가 없을 때 광복절이 진정한 한반도의 축제가 될 것이다.

 

▲ 최인규(왼쪽 두 번째)와 <국경> 스태프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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