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해체와 의무적 재결합 -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2-21 00:00:56
  • -
  • +
  • 인쇄
영화 인문학
▲ <포스 마쥬어>(2014, 루벤 외스트룬드) 공식 포스터

 

‘포스 마쥬어(Force Majeure)’는 프랑스어로 ‘불가항력적인 힘’을 뜻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이 영화의 부제는 ‘겨울 휴가(White Vacation)’다. 휴가지에서 가족들이 재난에 맞닥뜨리는데, 이는 자연재해나 사고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1993년 국내에 번역돼 출판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 저, 김경숙 역, 친구)는 사고방식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남성은 좌뇌형이고 여성은 우뇌형이어서 특정 사안에 대해 남성은 논리적으로 여성은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우뇌형 남성도 있고 좌뇌형 여성도 있지만 심리학자인 존 그레이는 통계적 수치를 따른다. 영화는 이성적 접근과 감성적 접근의 분류에서 성별, 삶의 태도, 세대로 구분하고, 주인공 부부를 통해 성별 인식 차이를, 여행지에서 만난 유부녀 커플을 통해 삶의 태도에 따른 인식 차이를, 주인공 남성의 친구 커플을 통해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제시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감독의 주관적 시각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카메라 무빙이 거의 없이 풀숏이나 롱숏을 주로 활용한다.

 

▲ 공간적 배경, 롱숏
영화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플롯 구조를 여행 첫날에서 마지막 날까지의 5일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날에는 주인공 가족과 주변인물 등의 콘텍스트(맥락)에 대해 소개하고, 둘째 날에는 사건이 벌어지며 갈등이 발생한다. 셋째 날 새로운 인물들이 이야기에 편입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넷째 날 가족은 심리적으로 해체된다. 마지막 날 이들은 극적인 상황을 통해 재결합하게 되지만 예상치 못한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앙금을 남긴 채 영화는 끝난다.


토마스와 에바 부부는 큰딸 베라, 작은아들 해리와 스키장으로 휴가를 간다. 오프닝에서 광활한 눈밭을 배경으로 사진사가 가족들을 한 화면에 담아내며 서로 간 밀착을 요구한다. 사진에 찍힌 이들 가족의 모습은 SNS 게시물처럼 보여주고 싶은 행복함만 기록하고 있다. 첫째 날 이들 가족은 사진 속의 모습처럼 항상 함께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실내복도 같은 것으로 입는다. 다음 날 테라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중 스키장에서 눈사태가 발생하는데 아버지인 토마스는 부인과 자녀들을 내팽개친 채 전화기와 장갑만을 챙기고 혼자 도망쳐버린다. 눈사태는 금세 잠잠해졌지만 부인과 자녀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되돌아온 토마스에게 마음이 상한다. 부인인 에바는 꺼림칙한 마음에 대해 토마스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다가 유부녀 커플과의 식사 자리에서, 토마스의 오랜 친구인 매츠 커플과의 만찬 자리에서 술에 취해 하소연한다.


극중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유부녀는 결혼과 연애를 별개로 여기며 자식과 남편에게 의무를 다하기만 하면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할 고유영역으로 인식한다. 매츠는 부인과 이혼하고 자식들은 전처가 양육하는 상황에서 스무 살인 연인과 여행을 왔다. 유부녀 커플과 매츠 커플은 이들 부부의 감정을 극화시키거나 해소시킨다. 사건 직후 에바는 남편에게 화가 나 있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남편은 부인의 기억과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매듭과 같다. 두꺼운 밧줄 매듭은 힘이 들지언정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가는 실로 매듭을 지으면 잘라버려야 하거나, 풀려면 무척 섬세하게 공을 들여야 한다. 명확한 물증이 있는 경우가 밧줄 매듭이라면 실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감정의 소모적 상황이다. 이런 경우 표면적인 갈등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사소하고 마음에 담아두기에는 찝찝하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사과하거나 화내기를 기다리는데, 이러한 소극적인 기대감의 기저에는 불화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는 곧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무책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해결 방식에서 감성적 접근을 하는 에바는 남편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제3자인 유부녀 커플과 매츠 커플 앞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객관화하며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 관망하는 카메라 워킹, 풀숏

유부녀 커플과의 대화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유부녀는 본능에 충실함을 강조하고, 남자는 상황을 회피한다. 스무 살 패니는 에바를 위로하지만 매츠는 유부녀와 같은 의견이다. 토마스 휴대폰의 당시 영상을 확인하고서야 에바는 감정이 해소되면서 냉철해지지만 토마스는 갈등의 극단에서 유아기로 퇴행해버리면서 생떼를 부리며 운다.


어느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모성애나 부성애는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헤게모니로, 상품을 팔기 위해 인간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프레임 안에서 개인은 언제나 양가적 입장과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구라도 그에 대해 비난할 수도 비난해서도 안 된다는 것,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존중받아야 한다, 라는 명제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영하 22도의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가족의 갈등 이야기, <포스 마쥬어>의 메시지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