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 기사승인 : 2021-09-13 0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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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자연과학
▲ 단일 슬릿(single-slit)과 이중 슬릿(double-slit) 비교 ©위키피디아

 

빛은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파동과 입자.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파동은 연속적인 흐름을 의미하며, 입자는 알갱이로서 불연속적인 대상이다. 연속과 불연속이라는 상반의 세계를 빛은 모두 내포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름이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연속이거나 불연속인 한 가지 상태를 가진다. 이를 ‘상보성의 원리’라고 한다. 따라서 빛을 파동이자 입자로서 동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은 언제 바뀌어 나타날까?


이중슬릿 실험을 들여다보자. 빛이 없는 실험실에서 손전등으로 벽을 비추는데 둘 사이에 빛이 통과할 수 없는 판을 놓는다. 이때 판에 슬릿(slit)이라고 불리는 가늘고 기다란 구멍을 뚫는다. 그럼 빛이 슬릿을 통해 벽면에 빛줄기로 나타난다. 이를 A슬릿이라 하자. 이제 A슬릿 옆에 동일한 형태의 새로운 슬릿을 만든다. 이를 B슬릿이라 하자. 두 슬릿을 통과한 빛은 여러 줄의 불빛으로 나타난다. 이는 A, B슬릿을 통과한 빛의 보강과 상쇄 간섭을 통한 빛의 파동성의 강력한 증거다. 


이제 손전등 대신 전자를 발사할 수 있는 전자빔 발사기를 사용해 보자. 전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전자가 닿으면 색이 변하는 도료를 벽에 바른다. 앞서 행한 손전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자빔 발사기에서 방출된 전자다발은 슬릿들을 통과해 여러 줄의 무늬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자빔도 빛과 같은 파동임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전자다발이 아니라 한 개의 전자씩 발사해 보자. 하지만 전자다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줄의 무늬가 나타난다. 전자를 한 개씩 발사했으므로 전자는 A슬릿을 통과하든지 또는 B슬릿을 통과해야 하는데 결과는 A, B슬릿을 모두 통과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결과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했고 하나의 전자가 다른 두 지점에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발사된 전자가 두 개의 슬릿 중 어느 하나에 존재할 확률을 가진다고 할 때 전자는 확률을 가지는 모든 지점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


하나의 존재가 다른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에 작용하는 원리가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인 거시세계는 뉴턴 역학으로 설명되는 ‘고전역학’이, 전자처럼 작은 것들이 살아가는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이 물리법칙으로 작동한다. 양자역학에서 ‘양자(quantum)’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로 상호작용하는 모든 물리적 독립체의 최소단위다(위키백과). 즉, 존재를 에너지로 환원해 볼 때 그것을 정량화하는 최소단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반되는 원리에 기반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어떻게 이 세계를 합력해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구체적 경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실험과 가설을 토대로 그 경계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탄소 원자 60개가 모여 입체구 형태를 이루는 플러렌(Fullerene)을 적용한 이중 슬릿 실험을 들여다보자. 전자를 축구공 크기로 볼 때 플러렌은 태양보다 더 크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플러렌 분자를 적용한 실험의 결과는 2개의 띠로 나타난다. 즉, 입자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공기 중이 아닌 진공에서 실험하면 전자의 경우처럼 여러 줄의 무늬가 나타난다. 이로부터 우리는 플러렌이 공기라는 기체에 작용할 때는 입자성이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파동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실험으로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A슬릿과 B슬릿에 전자관측장비를 달아서 어떤 슬롯으로 전자가 통과하는지 확인해 보면 전자는 앞서 진행한 실험과 다르게 A 또는 B슬릿에서만 관측되고 도료를 바른 벽에는 이중의 띠가 나타난다. 위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입자는 어떤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하게 되면 그 성질이 입자성으로 나타나고, 상호작용이 없을 때는 파동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빛의 이중성으로부터 우리는 세상이 모두 상호 연결돼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상호 연결돼 있기에 상호작용해 동쪽에 있으면 동쪽에 있고 서쪽에 있으면 서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꽃’과 같이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네가 있는 것이다. ‘나’만 중요해진 이 시대에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빛은 ‘너’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영두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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