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세기, 시민문화권 보장을 위한 용어 바로 읽기④ 참여(participation)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 봄 예술학 박사 / 기사승인 : 2021-07-06 0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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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과거에 참여는 정치권이나 기업, 그리고 행정 조직에서 민주주의의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일반 관용구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참여는 우리 삶에서 일반화됐다. 그런데 과연 참여라는 게 단지 좋은 것일까? 


정치에서 참여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다. 1970년대 복지국가 모델이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 대체된다.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뤄진 약탈적 세계화는 세계 모든 도시에서 양극화를 불러왔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1990년대 말, 자본주의는 좀 더 부드럽고 지역친화적인 신자유주의로 전환함으로써 국민국가(국가국민)의 저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국제개발원조에서, 1950년대 이후 지속적인 원조에도 수원국은 개발할수록 더 가난해졌다. 그 대안으로 개발은 단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문화적 맥락에서 참여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제개발원조의 공여국 역시 1970년대 불황기를 맞아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가는 민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도시재생의 경우, 이제는 도시마다 특색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민의 문화 활동 참여를 적극 권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는데, 이 또한 시민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가 된다. 이처럼 참여정치는 국내·외의 복잡한 환경에 따른 결과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시민의 문화 창조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 됐다. 그런 만큼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행정에서나 시민의 권리 차원에서나 좋은 일이 됐고, 마치 시금치가 몸에 좋은 것처럼 참여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참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른슈타인은 참여의 수준을 8단계로 나누고, 이를 3묶음으로 구별했다. 첫 번째 묶음은 조작이나 치료의 수준에 있는 단계로서 참여가 아니다. 우리는 통상 나 자신이 진정 원했던 필요보다는 교육에 의한 필요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참여는 광고에 의한 소비자, 혹은 사은품에 이끌려 축제에 참가하게 되는 구경꾼이 된다.


두 번째 묶음은 정보제공, 상담, 달래기가 포함된 단계다. 이 단계는 속칭 토큰만 주면 버스를 탈 수 있듯이, 미리 계획된 프로그램에 숟가락만 하나 올리는 수동적 참여다. 이런 참여의 경우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정보제공이나 참여가 허락되지 않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형식적으로 도장만 받는다. 예컨대, 아르코 연습장은 옛 울주군보건소였다. 당연히 그 건물의 층고는 3m가 안 된다. 공연장 조명 특성상 최소 6m 이상은 돼야 하는데, 나중에 전문가 공청회를 통해 위층을 뚫는 것으로 구조가 변경되는 일이 있었다. 만약에 설계 시기부터 참여했다면 예산뿐 아니라 공사 기간도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세 번째 묶음은 파트너십, 권한위임, 시민통제 수준의 참여다. 이 단계는 행정이 시민의 의견을 경청할 뿐 아니라 협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거나 더 나아가 일정한 영역에 대한 권한을 시민에게 아예 맡기는 능동적인 참여다.


이처럼 다양한 수준의 참여가 하나의 용어에 담겨 있기 때문에 행정과 시민의 기대는 종종 엇갈리는 일이 발생한다. 문화기본법 아래 시민이 문화적 표현(창조)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와 재정 지원은 시민의 권리이며, 국가와 지방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것이 책무로 규정돼 있다.


만약에 행정에서 이 책무를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수준에서 다 했다고 한다면 비극이 아닐까? 많은 공무원은 아직도 생활문화를 지원하자고 하면 개인의 취미활동에 국가의 세금을 쓴다는 게 타당한가라고 의심한다. 그런데 이것은 공무원 개인의 의심과 상관없이 법률적 규정이다. 한시라도 빨리 울산의 도시문화 형성을 위해 다양한 시민의 창조적 표현활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참여는 바로 그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 봄, 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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