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울산-울산365경] 꼰대에서 경륜으로 재발견되길-작천정과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이민정 시민 / 기사승인 : 2022-04-12 00: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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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酌川亭)은 19세기가 끝날 무렵인 1899년 언양군수 최시명의 명으로 시작해 1902년 여름에 완성된 정자(亭子)다. 그 앞으로 흐르는 계곡이 작괘천(酌掛川)이다. 이 근방에 수령(樹齡)이 100년 넘는 벚나무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시기상 일제강점기와 유관(有關)한 것으로 보인다. ‘작괘천주차장’으로 알려진 곳에 ‘작천정 벚꽃길’이란 커다란 한글 구조물이 있다. 작괘천이 시작되는 무렵부터의 길 이름이 ‘등억알프스로(路)’고,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리는 복합웰컴센터까지 이르는 길 전체에 벚나무들이 가득하다. 촬영을 나간 4월 3일 일요일은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주차장에서 한 젊은 아빠는 목에 제법 그럴 듯해 보이는 카메라를 매고도 스마트폰으로 딸아이를 촬영했고, 아이는 셔터 소리에 맞춰 능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작괘천주차장은 네비게이션에서 ‘작천정계곡 주차장’으로 띄어쓰기를 맞춰 검색해야 한다.


작괘천을 따라 세 개의 야영장이 있다. 작괘천주차장 바로 건너편에 ‘작천정달빛야영장’이 있다. 1.5킬로미터쯤 올라가면 등억알프스로에서 자수정로(路)로 갈라진다. 바로 앞에 작괘천을 건너는 등억교(橋)가 있고, 이곳에 ‘작천정별빛야영장’이 있다. 직진하는 자수정로의 오른쪽으로 작괘천을 따라 알프스온천로(路)를 700미터쯤 더 올라가면 ‘등억알프스야영장’이 있다. 앞의 두 곳이 넓은 야영장을 중심으로 방갈로와 펜션이 있다면 세 번째 야영장은 다양한 곤충 모양의 방갈로와 흰색 캠핑카가 울타리를 쳐서 단독주택단지처럼 늘어서 있다. 콘셉트는 꽤 괜찮은 편이다. 등억알프스로의 두 야영장이 작괘천 리버뷰(view)라면 알프스온천로의 등억알프스야영장은 작괘천이 앞에 있긴 하지만 시티뷰다. 시티뷰에 비유했어도 불야성 빌딩촌은 아니다. 작괘천 건너편의 등억알프스리(里)는 새로 지은 주택들이 많지만 시골이다. 농촌도 전원주택 단지도 신도시도 아닌, 시골이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새집들만 있다. 그 뒤편으로 보이는 산은 ‘산성산’이다.

 

▲ 작천정달빛야영장. ⓒ이민정 시민기자

 

▲ 작천정달빛야영장. ⓒ이민정 시민기자

 

▲ 작천정달빛야영장 건너편 주차장. 일명 작괘천주차장 또는 작천정계곡주차장. ⓒ이민정 시민기자

 

▲ 작천정 계곡. ⓒ이민정 시민기자

 

▲ 작천정 계곡의 비석. ⓒ이민정 시민기자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너와 ‘모임, 행사, 지역 간 이동 제한’ 전광판. ⓒ이민정 시민기자

포털 검색에서 울산 산성산은 한자 표기를 알 수 없는데, 언양천전리성(城) 관련 정보를 보면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산성산(山城山)’과 같을 것이다. 언양천전리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구 침입을 막는 전략요충지였다. 현재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왜적과 싸우다가 전멸한 곳이다. 부인들만 남게 돼 ‘과부성’이라고도 했다 한다. 영화 <300>(2007, 잭 스나이더)에서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스파르타의 왕과 300 용사들이 전멸한 테르모필레 협곡과 같은 곳이랄까.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오브제. ⓒ김교학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관람객들. ⓒ김교학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푸드코트 내 조리실. ⓒ김교학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푸드코트. ⓒ김교학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산악문화상 전시구조물. ⓒ김교학

최근 몇 년 동안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등억알프스로는 등억알프스길, 자수정로는 자수정길, 알프스온천로는 알프스온천길, 등억알프스리는 등억알프스마을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괘천주차장에서 100미터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인내천바위를 소개하는 팻말이 보인다. 인내천(人乃天)을 직역하면 ‘사람이 곧 하늘’이란 말로, 동학을 근간으로 하는 천도교의 만민평등 및 인간존중 사상을 상징한다. 바위에 새겨진 글은 마치 기계로 정교하게 파낸 듯 보인다. 1915년 언양 상북면의 춘사 김영걸이 글을 쓰고 삼남면의 함유성이 음각했다. 글씨와 음각은 정말 멋지다. 제작 시기를 볼 때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연관 있음을 알 수 있다. 울주의 독립운동은 천도교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이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역사가 아직 스토리텔링 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크다.


인내천바위로 오르는 입구에서 150미터쯤 올라가면 왕복 2차로 왼쪽의 작괘천 쪽으로 기와집 지붕이 보인다. ‘작천정정각식당’이다. 300미터를 더 가면 ‘초심’과 ‘단지식당’이 있다. 자연 풍광을 훼손하지 않는 적당한 분위기의 식당인데, ‘초심’은 폐업한 듯 보였고 주차장에는 폐기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국내외 인사들이 방문하는 영화제 기간이기도 한데 울산 이미지를 훼손하는 건 미리 정리를 좀 했으면 했다. 인근에 가로 스크롤 전자간판이 있었다. 바로 앞 가로등엔 두 장의 영화제 배너가 걸려 있는데 전자간판에는 모임, 행사, 지역 간 이동 제한 메시지가 반복되고 있어 디테일의 부족함과 코로나 팬데믹 시국이 주는 아이러니에 씁쓸했다.


인내천바위가 무척 거대했다. 이 바위가 유난한 것이 아니라 산 여기저기에 편편한 거암(巨巖)들이 많았다. 물이 마른 작괘천 바닥에도 그랬다. 이런 모양새는 낯설면서 흥미롭다. 지리나 자연에는 무지한 편이라 기회가 있다면 알아보고 싶다.


문을 닫은 ‘초심’ 식당 150미터 전쯤 건너편에 비석이 있었다. 망원렌즈로 당겨 봐도 보호 울타리 때문에 비석 내용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약 열 자 내외의 한자 마지막 글자 일부분이 비(碑)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볼 때 뭔가를 기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석은 지붕에 짚더미 같은 것이 잔뜩 쌓여 있어 관리가 안 된 것 같았고, 비석에 대한 설명이 아닌 야영과 취사행위 금지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흉물스러웠다. 그 아래 돌담에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역시 디테일이 아쉽다.

 

▲ 등억알프스로 인내천 바위. ⓒ성경식

 

▲ 등억알프스야영장 전경. ⓒ성경식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현장 입구. ⓒ성경식

 

▲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이어지는 알프스온천로 풍경. ⓒ성경식

 

▲ 등억알프스야영장 입구와 너머로 보이는 상북면 등억알프스리 마을 전경. ⓒ성경식

몇 년 전 언론에서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한 평가를 요청해 와서 급하게 방문한 뒤로 이번 촬영차 처음 갔다. 당시엔 22억5000만 원을 대체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속상하고 역정이 났는데, 그 사이 꽤 발전이 있었던 것 같다. 다행이다. 여전히 아쉬운 점은, 영화제의 물리적 공간을 상당히 차지한 푸드코트 때문에 영화제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인, 개최 도시, 지역민 등 3주체의 만족을 추구한다. 영화인은 영화제를 통해 작품 발표의 기회, 영화인 간의 교류, 프로모션의 기회 등을 가진다. 개최 도시는 문화향유 기회 제공, 도시 브랜드 이미지 제고, 문화도시 실현 등을 추구한다. 지역민은 문화향유, 영화인과의 교류, 개최 도시 소속감과 만족 등을 누릴 수 있다. 여성, 인권, 노동, 환경 등 운동과 결합했거나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관련자들의 기회와 만족감이 추가된다. 그런데 울산의 문화행사들은 푸드코트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향유보다 먹고 즐길거리에 집중한다.


언젠가 영화인들이 울산을 방문해 삼산동에 갔다가 조잡하게 번쩍여대는 네온사인들에 필자를 포함한 동료들이 크게 놀란 적 있다. 의식주가 적당히 해결되면 인간은 정신‧정서 활동이나 예술문화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데, 울산은 이를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소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술은 소비를 통해 축적되는 것이다. 세금이 투입되는 울산의 크고 작은 영화제와 다양한 문화축제들은 먹을거리가 우선함으로써 낭비로서의 소비로 인해 각 예술축제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최악의 표현을 쓰자면 전시든 공연이든 축제든 먹으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제가 하나 더 생긴다고 할 때마다 축제가 더 생기려고 할 때마다 시민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

 

▲ 등억알프스로의 벚나무. ⓒ손방수

 

▲ 등억알프스야영장 전경과 너머로 보이는 상북면 등억알프스리 마을 전경. ⓒ손방수

 

▲ 등억알프스야영장 위쪽의 벚나무가 있는 테라스. ⓒ손방수

 

▲ 알프스온천로의 도깨비도로 시작점. ⓒ손방수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오브제. ⓒ손방수

 

몇 년 전의 영화제 방문 때 되돌아오는 길에 아무 곳이나 들러 지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영화제는 지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푸드코트들 때문에 식당에 들르지 않는다고 했다. 푸드코트에서 적당히 먹은 뒤 술 마시러 울산 시내로 다 나가버린다고 했다. 영화제의 일자리는 모두 외지인들이라고 했다. 영화인들은 발꿈치도 구경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는 프로듀서도 프레와 1회에 참석했다가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야영장에서 가족들과 추억을 쌓은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고 했다. 잘 아는 감독들은 괜히 힘 빼지 말고 너도 울산에서 한몫이나 챙기라는 말을 왕왕 해왔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해 상당수의 영화인은 울산은 호구라는 공식의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이 영화제뿐 아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지만 몇 년 사이 긍정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길, 앞으로 있길 바란다. 다른 영화제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엄청난 예산들이 내 돈은 아니지만 아까울 따름이다.


어쨌든 작천정 계곡 인근은 영화제 이전부터 울산의 명소였고, 지금은 영화제가 개최되는 영남알프스가 영화인들에게 제법 알려진 장소가 됐다. 내가 울산에 온 이듬해 프레가 있었고, 이를 포함하면 올해가 벌써 여덟 번째다. 연수(年數)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닌, 연륜이 되길 기대한다. 이 일대가 영화 로케이션 촬영지로도 크게 관심받을 수 있길 고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민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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