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맛에 사나요?

정승현 시민 / 기사승인 : 2021-07-27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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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소리

평소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책읽아웃>, <김혜리의 필름클럽>,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 <영혼의 노숙자>, <빅리틀라이프>, <혼밥생활자의 책장>, <시스터후드>, <재즈가 알고 싶다> 등. 여기에다 최근 목록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박하선의 씨네타운>. 한데 두 시간 다 듣지는 않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든 김초희 감독이 추천해주는 영화 이야기만 듣는다. 김초희 감독은 사람 자체가 어쩜 이래 싶을 정도로 매우 재미있다. 그가 제발 어떤 라디오든지 한자리를 꿰차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DJ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씨네타운을 듣는다. 


그가 추천하는 영화도 최고다. 지난번에는 <레스트리스>를 소개해줘서 그날 밤 바로 왓챠로 봤다. 보면서 너무 좋아서 또 슬퍼서 울었다. 갑작스런 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방황하는 에녹, 암에 걸려 3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게 된 애나벨. 둘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눈다. 끝이 있는 사랑. 이렇게만 보면 뻔한 신파 사랑극?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죽음을 다루지만, 무겁거나 축 처지지 않고 산뜻하다. 끝이 언제인지 분명히 알기에 둘은 제대로 살아간다. 사랑한다. 물론 후회할 짓 하고, 삐그덕대는 게 없진 않지만, 김초희 감독도 말했듯, 새해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기 전, 코로나가 주춤했던 시절 가졌던 술자리에서 이 영화가 문득 생각났다. 당시 퇴사한 후배와 친한 후배와 낮부터 술 얘기를 하다 다섯 시도 안 돼서 술집을 찾아다녔다. 다들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어 우리는 술을 보기만 해도 너무 즐거웠고,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했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영화가 생각나서 마치 꼰대처럼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난 진짜 그동안 너무 모든 걸 유예하고 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위해 즐거움을 포기하고, 대학생 때는 뭐 새내기 때는 살짝 놀긴 했지만, 취업 준비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졸업 후에도 맨날 공부하고… 이제는 지금을 즐기려고요. 미친 듯이 소중하게! 이 순간의 행복과 기회와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겁니다. 저 말리지 마세요. 우리 생각해보면 삶을 즐길 시간은 많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우린 다 언젠가 끝이 나는데!”


‘진심을 전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고, 삶이 주는 선물을 누릴 시간도 길지 않다.’ 영화 속 대사다. 이걸 보고 정신이 번뜩 들었고, 후배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도 너무 행복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남의 눈에 있어 보이는 뭔가를 이루고 싶어서 지금의 행복을 미루지 않을 테다! ‘이 맛에 사는 거지’라고 자주 외칠 거다! 그리고 그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최대한 즐기고 소중하게 다룰 거다! 좋은 영화도 더 많이 보고, 훌쩍 아름다운 곳에 여행도 가고, 반려견 반야와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자주 놀고, 그렇게 ‘사는 맛’있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제발 주춤해져야 하는데.


정승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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