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의 현현(顯現), 美 트럼프 데자뷔 <하우스 오브 카드>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09-14 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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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은 이들의 인상 깊은 문구 목록에는 “행운의 여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목적은 수단을 신성시한다”가 포함된다. ‘행운의 여신’ 자리에 ‘하늘’을 넣으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속담의 전형성을 갖는데, 마키아벨리는 스스로 돕는 자를 ‘젊은이’로 한정하며 행운의 여신은 젊은 남성을 좋아하는 세속적인 젠더로 의미부여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즘은 여전히 선악의 경계 없이 아전인수로 활용되고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시즌씩 총 6개 시즌(총 73화)을 출시한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왕좌’를 놓고 벌이는 미국 정치인들의 치열하고 잔혹한 정치의 장(場)을 그려냈다. 이 기간 미국에서는 두 번의 대선(44대 오바마 재선, 45대 트럼프 초선)이 있었다. 케빈 스페이시(프랭크 언더우드 역)의 중도하차가 없었더라면 이 작품은 46대 대선(바이드 초선)까지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는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노미네이트됐던 <아메리칸 뷰티>(1999, 샘 멘데스)의 세계적 배우였지만 오랫동안 누적돼온 성범죄가 폭로되면서 2017년 시즌5부터 기 촬영분에서 분량이 줄어들었고, 시즌6에서는 비약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극중 사망한 것으로 정리됐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남편과 정쟁을 벌이는 클레어(로빈 라이트 분)와의 서스펜스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상황에서 이후의 이야기는 여성성을 기반으로 한 여권(女權) 과잉성취 형태로 흘러간다.

 

▲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 포스터

 

▲ 2018년 마지막 시즌6 포스터

하원의원이었던 프랭크가 맨손으로 권력 중심부에 진입한 ‘개천의 용’이라면 클레어는 상류층 출신이다. 두 사람이 결혼이란 법적 계약을 맺은 것은 ‘오로지 권력 성취’로서, ‘대통령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행운의 여신’이 그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상호 절대 협조한다’. 대통령 ‘당선’은 필요 없다. 결과적으로 백악관의 주인이기만 하면 된다.


내러티브의 살인, 폭력, 음모 등이 상식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고 해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익숙한 소재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라도 백악관 사저에 프랭크의 자서전 작가로 들어온 자가 클레어의 연인이 돼, 한 지붕 아래서 남편의 용인 아래 부인이 내연남과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심지어 셋이 뒹굴기도 하는 것은 기이하다. 왕정(王政) 시대가 아니라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21세기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대국인 러시아 대통령과도 성적 매력을 십분 활용하며 중요한 협상들을 성사시킨다. 그 와중에도 둘은 권력욕에 대해 일관성 있게 진지하다.


극에서 정계, 언론계, 법조계, 로비스트 등 각계각층에서 힘을 좇는 갈대들을 처참하게 처단한다. 이런 처단의 선봉에 선 자가 프랭크의 장자방(張子房)이자 행동대장인 더그 스탬퍼(마이클 켈리 분)다. 그에게 가장 안전하면서도 강력한 권력의 실현은 그림자로서 신념을 갖고 헌신하는 것이다. 대중은 휩쓸리는 무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주군’을 대신해 주저함 없이 악역을 맡은 더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극중 내러티브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다. 넷플릭스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청자에게 콘텐츠를 추천하는데, 케빈 스페이시의 성범죄가 이슈화되면서 이야기는 극단적 페미니즘으로 치우친다. 클레어가 권력을 쥐기 위해 ‘흙수저’ 프랭크를 희생시켰고, 제작진은 드라마의 생존을 위해 케빈 스페이시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기형적 여성존중 마케팅을 펼친다. 프랭크와 케빈 스페이시를 동일시해버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가상의 인물과 현존하는 인물 모두 (극중) 부인의 권력욕과 (현실) 콘텐츠의 지속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대통령이 된 클레어가 내각을 모두 여성으로 구성했을 때 실소를 터뜨리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여론과 관련한 드라마 향방에 대해 빅데이터는 이것이 차악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던 것 같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키아벨리즘을 소환했을 때 프랭크에 데자뷔를 느낀 이들이 많다. 드라마는 반드시 이야기를 마무리짓지만 현실 정치의 마키아벨리즘은 계속된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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