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도시

김루 시인 / 기사승인 : 2021-03-22 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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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세상

언제부턴가 내가 사는 이 동네는 노인의 도시가 되었다. 젊은 사람으로 보이던 중국인들은 사라지고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이 줄어 든 요즘 문 앞을 서성이며 밖을 내다보고 서 있으면 어르신들이 하나둘 내 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야야 우리 동네는 요즘 어찌 되어 가노?” 15년 동안 어르신들이 추진해 온 재개발 사업 이야기다. 15년 전에는 나도 어르신들도 재개발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같은 사업으로 인지한 어르신들은 조합장의 유혹에 너도나도 도장을 건넸다. 조합원으로 구성된 어르신들은 글도 모르는 분들이 수두룩했다. 조합장은 어르신들이 아파트를 원하지 않으면 집을 매입하기도 하니 서명하면 된다는 거였다. 


어르신들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같은 사업으로 인지하고 열심히 이웃을 유혹했다. 맛있는 식사 대접에 술 대접까지. 사업은 생각보다 진행이 빨랐다. 하지만 어느 동네에서든 반대하는 사람은 꼭 있다.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붙이고 우린 그 어떤 사업도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게 놔 달라, 소리쳐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잡을 수는 없었다. 사업인가가 나고 아파트 분양신청이 끝나자 그제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리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야야 나는 아파트 못 들어간다. 거기 가서 매달 돈 낼 형편도 안 되고, 와 우리 집은 헐값으로 가져가고 아파트는 저리 비싸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매일매일이 이제 근심이다. ‘종전자산감정평가’라는 이름으로 통보된 집의 금액은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야야 이 돈으로는 아파트 전세도 못 구한 데이. 이를 어쩌누? 후회해도 건너온 강을 되돌아갈 수는 없다. 노후된 주택정비사업은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투기꾼들이나 사업시행업체들만 배 불려주는 사업이었다. 마을을 오래 지키고 살아 온 주민들은 그야말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아무리 반대를 해도 재개발사업은 주민이 80% 동의하고 토지 소유 2/3를 넘기면 나머지는 강제수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작은 월세로 노후를 잘 살고 있던 어르신들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쫓겨나면? 어떤 할머니는 아들이 벌써부터 돈 안 준다고 명절에도 오지 않고 속을 썩인다고 하소연이다. 소박하게 동네를 지키며 잘 살아온 분들인데 요 몇 년 사이 주변 집값이며 아파트값은 터무니없이 올라 갈 곳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속사정도 모른 채 재개발하면 좋지, 라고 말한다. 계산 빠른 투기업자들은 은행에 돈을 대출받아서라도 집을 매입해 6개월 만에 얼마를 벌었네, 라고 소문들이 자자한데 정작 이곳 주민들은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돈 있는 사람, LH 직원들처럼 정보가 빠른 사람만 잘사는 나라가 됐는지.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투기하지 않고 열심히 땀 흘려 사는 사람은 왜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가 됐을까?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로 가능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를 분절시키는 세계를 구겨야 비로소 이웃이, 내가, 당신의 풍경이 되어 헛된 위로라도 하지 않을까 싶다.-이제니<우리 안에서 우리 없이> 인용


김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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