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

조영화 식생활교육울산네트워크 교육팀장 / 기사승인 : 2021-03-24 0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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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올해 5학년이 된 큰딸이 6살 때쯤이었습니다. 3월 어느 날, 북구 정자에서 텃밭을 가꾸는 친정엄마가 시금치가 끝물이라며 가져가 나물을 해 먹으라고 한 봉지를 주셨어요. 집으로 가져와 손질하고 데친 후 엄마가 담아준 국간장 조금, 볶은 소금 조금, 엄마가 기르고 껍질 까고 빻아준 마늘 조금, 엄마가 기르고 장날에 가서 짜낸 참기름도 조금, 엄마가 기르고 털어 볶아준 깨소금도 넉넉히 넣은 후 조물조물 무쳐냅니다.


보통은 조물조물 무쳐진 나물에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할 즈음 삼 남매를 큰 소리로 부릅니다. “시금치 간 좀 봐줄 사람!” 그럼 가장 배고픈 녀석부터 후다닥 달려옵니다. 갓 무쳐진 시금치나물을 입에 넣은 삼 남매는 맛있다고, 어서 밥이랑 같이 달라고 발을 동동 굴러댑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몰라요. 


그런데 3월의 어느 날, 바로 그날은 뭣에 바빴는지 바로 밥상을 차려냈습니다. 밥과 함께 시금치나물을 먹던 큰딸이 갸웃거리며 “엄마! 봄이 왔나 봐요”라고 하는 겁니다. “응? 왜?”하며 물었더니, 젓가락으로 시금치나물을 가리키며 “시금치가 맛이 없네요. 겨울에는 달콤했는데!”라고 합니다.


그제야 시금치 맛을 제대로 본 나는 “그러게. 3월이 됐더니 시금치가 맛이 없네… 경원아. 이제 원추리, 쑥 같은 봄나물들이 나도 좀 먹어줘, 하며 나올 때니까 시금치는 오늘 마지막으로 먹어주고 이제 봄나물 뜯어서 먹자”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는 주말에 친정에 가서 과도 하나씩 들고 난처럼, 튤립 이파리처럼 생긴 원추리를 칼로 쏙쏙 베어 뜯어 데쳐서 새콤달콤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더랬죠. 


식생활교육 강사를 10여 년째 하고 있는 엄마에다가, 그 엄마의 엄마는 또 때때마다 산이며, 들이며, 밭에서 난 온갖 푸성귀들을 구해다 갖가지 요리를 해서 주니 우리 집 삼 남매는 입이 아주 귀신입니다. 겨울 내내 배추를 쌈장에 찍어 먹고, 물미역은 초장에 찍어 먹고, 손끝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고, 거친 김을 구워 종일 몇십 장씩 먹어대고, 고구마와 밤은 수시로 구워 먹고, 무청시래기를 지져 먹고… 제철 음식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삼 남매는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시금치와도 그렇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사실 지금 많은 아이, 부모들은 제철 음식, 제철 재료에 대해 잘 모릅니다. 마트에 가면 언제나 시금치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휴대폰 몇 번만 두드리면 새벽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뽁뽁이에 쌓여온 시금치를 언제나 만날 수 있으니까요. 철마다 자연이 알아서 우리에게 주는 선물 제철 음식이 얼마나 귀하고, 맛이 좋고, 내 몸에도, 자연에도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찬 성질의 참외는 2월이면 과일가게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월이 시작되던 즈음, 자주 갔던 친환경 매장에도 참외가 나와 있더라구요. 봉지에 쌓인 노란 참외를 보자마자 “참외야. 너는 왜 벌써 나왔니. 아직 나는 이렇게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는데. 그리고 봉지에 쌓여있으니 더 속상하구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가끔 학부모 수업을 나가보면 “아유, 우리 애는요 비싼 과일만 먹어요”하며 딸기도 11월 처음 나올 때 것만, 참외는 2,3월 참외만, 그리고 국산 과일들이 뜸해질 때는 체리, 애플망고 같은 비싼 수입 과일만 찾는다며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철모르는 음식을 먹은, 특히 2월에 참외를 먹은 아이들의 속은 어떨까요? 배가 꾸륵, 속이 차갑고 분명 불편해할 겁니다. “엄마. 배가 뿌글뿌글 아파요”라고 얘기하면 아마 많은 부모가 ‘배가 아프다고? 장에 좋은 유산균 영양제 뭐가 좋다고 하더라?’하며 검색창을 들여다보겠지요.


지금 우리는 이런 음식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철 음식 대신 나와 우리와 지구까지 아프게 하는 음식들을 너무 편하게, 자극적인 맛과 요리법으로,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거지요. 정말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아직 추운 2월에 참외를 사주는 게 아니라, 참외를 먹었다고 배 아픈 아이에게 유산균을 내미는 게 아니라 차라리 우리 아이 배를 따뜻한 내 손으로 살살 문질러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내 아이와 손을 잡고 제철 음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시장이나, 울산의 로컬푸드 매장으로 가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함께 손 모아 간단한 제철 요리라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베란다나 창가에 작은 화분을 두고 상추 한 포기라도 심어 보는 게 어떨까요?3월이 됐습니다. 겨울 제철 채소 시금치와는 다들 이별하셨는지요? 강렬한 향으로 겨우내 잠들었던 우리 몸을 깨워줄 봄나물들과 반갑게 인사하셨는지요? 


조영화 식생활교육울산네트워크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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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화 식생활교육울산네트워크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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