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위한 선택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3-23 00:00:45
  • -
  • +
  • 인쇄
기억과 기록

지난 주말 저녁, 엄마와 함께 새로 시작된 드라마를 봤습니다. 광씨 성을 가진 세 딸이 주인공이더라구요. 아버지는 이혼하겠다고 하고, 이런 아버지에게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세 딸은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더군요.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이성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부정적인 자극은 잘 기억된다고 하니, 시청률을 놓치지 않으려는 전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욕하면서 본다’고 하지만 제게는 그 전략이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조절되지 못한 채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지켜보는 것만도 피곤합니다. 그런 가운데 <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인풀루엔설, 2021)은 제게 위안을 줍니다. 인간은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도 했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에도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심지어 스스로를 희생해 온 것이 더 많았기에 인류공동체가 유지돼 올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는 차고 넘친다며 글을 이어갑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는 현실에서 예외적인 존재라는 말이지요.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학폭’사건이 연예계와 스포츠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으로 좁혀 보더라도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냐!’는 절친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었지요.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희망의 끈이 있으니까요. 기후변화나 전쟁과 같은 무수히 많은 위기 속에서도 인류가 생존해 온 것을 보면 공동체 유지를 위한 선한 노력들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사회라서 가능했을까요? 고려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조선 초 역사서인 <고려사> ‘세가’편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관료인 노극청이 가난해 집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집이 팔리지 않았다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해 일을 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그를 반기며 현덕수라는 사람에게 백금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노극청은 기뻐하기는커녕, 아내를 나무라며 현덕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처음에 9근을 주고 이 집을 사서 여러 해를 살고 더 꾸민 것도 없는데 12근을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 3근을 받으시오” 했지요. 이에 현덕수는 자신도 의(義)를 아는 사람이라며 거절했답니다. 그러자 노극청이 한발도 물러섬 없이 주택거래를 없던 일로 하자며 더 강하게 나갔습니다. 현덕수는 어쩔 수 없이 3근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의를 아는 현덕수가 그 돈을 그대로 받을 수는 없었지요. 그는 노극청에게서 되돌려 받은 돈을 절에 시주했답니다. 


생활비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이 상황을 노극청의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남편이 아내가 사는 동네로 장가를 가는 처가살이가 일반적인 결혼 형태였던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쩌면 그 집은 아내 소유였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청렴한 노극청은 성리학적 관념으로 무장한 조선의 건국 주체인 사대부에게 모범적인 인물로 보였겠죠. 국가건설에 참여한다는 기대감에 충만한 사대부들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했을 것이고, 노극청의 사례는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거죠.


주택거래를 둘러싼 노극청과 현덕수의 얘기를 전해 들은 이가 탄식하며, “지금 세상에 이와 같은 사람을 얻어 볼 수 있게 되다니!”라고 했다는군요. 그때도 흔치 않은 일이었나 봅니다. 노극청이 살았던 고려사회도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제활동이 있었고,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였던 거죠. 저자는 노극청을 빌어 문제 많은 고려는 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새로운 조선이 건국될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고려 패망의 필연성과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거죠.


자신이 가진 지위 덕에 선점한 개발정보로 투기에 나선 이들의 소식을 들으며, 더 큰 사회적 위기가 오기 전에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브레흐만이 틀리지 않았겠지요?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