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역에서

정익화 시민 / 기사승인 : 2021-10-13 0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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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여행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연인의 이별을 노래한 '안동역'이 생기기 전인 1911년 전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망명을 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바로 석주 이상룡 선생입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99칸 임청각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해 조상의 위패를 산에 묻고 노비 문서를 나눠준 후 만주로 떠났습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석주를 싫어한 일제는 1942년 임청각을 관통해 중앙선 철로를 놓고 안동 시내에 안동역을 만들었습니다. 기찻길 옆 저택은 70년간 흔들리다가 2020년 중앙선 철로를 이설하고 복원 작업을 시작해 이제야 본 모습을 찾게 됐습니다. 안동역이 이전한 자리에는 복합 문화 공간이 생겼고 광장에 있는 노래비는 그대로 남아 연인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청각 바로 옆에는 탑동 고택을 뒤로 한 '법흥사지 7층 전탑'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절터인 법흥사터에 고성 이씨 종택이 들어서 탑과 기와집이 기이하게 어울린 풍광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섞여 반만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기단부를 콘크리트로 보수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태화동에는 '관왕묘'가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신 사당입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이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운다고 건립했는데 안동, 강진, 남원, 성주에 있고. 서울에는 남관왕묘, 동관왕묘(동묘)가 있습니다. 외국 군대가 도와준다고 들어오고 난 뒤 생긴 사당이라 우리 문화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합니다.


영주로 가는 5번 국도 길목인 이천동에 ’제비원 석불‘이라 불리는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석불인데 몸통과 머리 부분을 이어 붙인 거대한 불상입니다. 영남에서 충청, 경기, 서울로 가려면 소백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꼭 거쳐야 할 곳이 이곳 제비원입니다. 예전 역참 시설일 때 관원이 숙박하고 말을 바꿔 타고 가던 여관 같은 ‘원(院)’이 있던 자리이고 지금은 ‘연미사’라는 절로 변했습니다. 제비원이라는 단어는 전통 종교 음악인 무가(巫歌)에도 나옵니다.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이 본이 되야/ 제비원에다 솔씨 받어 동문 산에다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밤이며는 이슬 맞고 낮이며는 변에 쐬어/ 청장목 황장목 도리 지둥이 다 되었구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그런데 여기에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이여송이 우리나라의 맥을 끊고자 돌아다닐 때 탄 말이 제비원에서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미륵불의 목을 치니 떨어졌다고 하며 불상 목 언저리 얼룩 자국이 피 흘린 자국이라고 합니다.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이라는 표현은 이 땅의 민중이 받은 고통을 대변한 말입니다. 왜군에 대항해 도우러 온 명나라 군사의 횡포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육이오 한국전에 온 미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안동에서 대구 가는 길목 일직면 조탑리에 ‘동화 작가 권정생 살던 집’이 있습니다. 도로 안내판과 함께 동네에는 벽화 등으로 찾기 쉽게 돼 있어 평화를 지향하던 작가의 삶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평생을 시골 교회 종지기로 살며 <몽실 언니>, <강아지 똥> 등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며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생태주의자로 살다간 작가의 삶이 몽실이를 통해 그대로 나타납니다. 몽실이가 육이오 전쟁 중 여자 인민군을 만나 나눈 대화에 밑줄을 친 <몽실 언니> 책을 학생에게 빌려줬다고 의식화 교사로 몰린 어느 교사의 실화가 헛웃음을 웃게 합니다. 동네 어느 집 담벼락에 다음과 같은 시와 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통일이 언제 되니?/ 우리나라 한가운데 가시울타리로 갈라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울타리 이쪽저쪽 총 멘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안동댐에는 안동 출신 작곡가의 ‘해뜰날’ 노래비도 있습니다. 성공을 지향하는 고도성장기의 한국 현대사를 표현하는 노래인데 못살던 시절 ‘잘살아 보세’의 의지와 착하게 살려는 몽실이의 의지가 겹쳐 물안개를 이루고 있습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정익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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