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값진 선물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03-24 0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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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우리 아파트 뒤로 ‘남목마성’을 오르는 등산로가 자리 잡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목마성은 조선 초기부터 나라에서 쓸 말들을 기르는 목장이었다. 말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고 한다. 아직 그 성터가 남아 등산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말들이 노닐던 곳이라 상상하긴 어렵다. 말은커녕 말굽 자국도 없다.


길 따라 걸으면 금방 아래 정경을 맞는다. 울산스럽다. 줄지어 공장이 서 있다. 좀 더 위로 한참을 오르면 ‘주전봉수대’가 있다. 그제서야 산 넘어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참 좋다. 우리 동네 기념물이 우리가 사는 집 뒤에 있다. 역사적인 한 장소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아이가 10kg을 갓 넘긴 세 살 때의 일이었다. 그 시기에 아이랑 바깥나들이를 하면 아이를 안거나 업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얼마 가지 않아 버릇처럼 보채기 시작했다. 같은 10kg이라 하더라도 아이의 그것과 사물의 그것은 체감이 다르다. 아빠로서 할 얘긴 아니지만 전에 아이를 안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허리 쪽 근육통이 도지기도 했다. 산을 오르기로 한 마당에 되돌아갈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았다. 아이 엄마에게 넘길 순 없는 노릇이다. 당시 봄볕이 한창인 4월 경인 데다 날씨마저 맑았으니, 구슬땀은 비 오듯 했다. 날씨가 얄밉다. 주전봉수대가 있는 정상에 겨우 올랐으나, 또 다시 내려갈 길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이후로 아이와 함께 오르는 등산은 당분간 접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자주 찾는다. 아이도 어느새 자라 제법 잘 오른다. 힘들 땐 쉬어 갈 줄도 안다. 이제 아이랑 밖을 나서는 게 안심이다.


3월에 접어든 지난 일요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저 날씨가 맑다는 이유로 아내는 가족 산행을 고집했다. 그날 난 체력을 좀 아끼고 싶었다. 할 일이 있다고 핑계도 대 봤지만 아내 고집은 꺾일 여지가 없었다. 사실 밤사이에 글을 써서 보내야 했는데, 일찍 잠에 들면 낭패다. 산을 오르되 최대한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했다. 보폭을 줄이고 아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틈틈이 쉬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출발할 때부터 우리 가족의 걸음 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참 스마트한 세상이다. 그런데 보폭이 좁았던 난 아내를 조금 앞서갔다. 아내는 그런 날 신기하게 보았다. 평소 걸음 수는 아내를 따라갈 수 없던 터였다. 이쯤 되면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걸음 수로 아내는 내기를 걸었다. 지면 ‘저녁 차리기’다. 난 이미 그날 아침을 차렸던 터라 그러지 말자 했건만, 피할 방도가 없었다. 아이로부터 해방됐다고 좋아했던 난,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이후로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틈만 나면 폴짝폴짝 뛰기도 수없이 했다. 그날 난 결국 졌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등산로를 걷는 동안 꽃, 벌레, 동물 그리고 긴 나뭇가지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길쭉한 나뭇가지가 보이면 그걸 수집하느라 양손 한가득이다. 줍고 버리기도 바빴다. 길을 걷던 아이는 유튜버가 된 것마냥 방송에도 열중이었다. 입이 쉴 새가 없었다. 나는 폰을 영상 모드로 바꿔 아이를 찍었다. 그러면 연신 ‘구독 꼭, 좋아요 꼭’ 눌러 달라는 호소를 잊지 않았다.


어느새 주전봉수대에 도착했다. 그곳에 이르면 등산객 모두를 반가이 맞는 큰 흰둥이 개 한 마리가 있다. 우리는 그 개를 그저 ‘도꾸’라고 불렀다. 도꾸는 창살에 바짝 붙어 몸을 만져달라 했다. 우리는 늘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만 보았다. 산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이는 도꾸 옆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봉수대는 바람 피하기가 딱 좋다. 쉬어 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어 우리는 불을 피우던 곳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음료수를 꺼내 마른 입을 적셨다. 잠시 위를 향해 누우면 둥그런 하늘이 보인다. 그러면 힘들었던 산행도 잊을 수 있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 이제 내리막이었다. 그곳엔 얼마간 신발을 벗고 걷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아이는 맨발로 보드라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걸었다. 오래전부터 아이는 흙과 친숙했다. 평소 흙만 보면 신발과 양말 벗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물이 고인 조그만 습지를 만났다. 개구리와 도롱뇽이 낳은 알주머니가 보였다. 습지로 들어가 끈적끈적한 그것을 손으로 만져 보고는 제자리에 놓았다. 완연한 봄이 되면 그들도 깨어날 것이다. 그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을 내려 오면 바닷길로 접어든다. 산도 바다도 우리의 생활권 내에 있다. 여느 동네 부럽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이런 자연과 벗 삼아 자란다. 우리 동네 값진 선물이다.


우리는 두세 시간 산행하는 동안 심심할 틈이 없었다. 이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가까운 카페에 들렀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듯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쥑인다이가~’.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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