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의 시기’는 언제인가 <독립기념일>(1)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1-06-16 00: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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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숲 시즌2-방황

▲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왼쪽)과 조미정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사실주의 소설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독립기념일>은 사실주의 소설입니다. 사실주의 소설이란 어떤 소설을 말하는 건가요?


조미정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사실주의 문학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묘사하는 문예사조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에는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들이 사실주의 문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미선=작가 리처드 포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조미정=리처드 포드는 1944년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에 잠깐 다녔으며, 이후 소설 창작으로 방향을 돌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잡지 편집자, 대학 강사, 스포츠 기자로도 일했습니다. 1986년 <스포츠 라이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동시대의 미국 사회를 날카롭고 냉정한 시선으로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미선=2018년엔 방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로 방한했나요?


조미정=2018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은 ‘비영웅적 삶 속의 영웅적인 삶, 거대 서사가 없어진 곳에서 찾아낸 거대 서사’라는 심사평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미선=인터뷰를 읽어보니 ‘가족’과 ‘평범함’이란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이 <독립기념일>도 그 범주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아빠와 아들

조미정=<독립기념일>은 모두 두 권이고 페이지 수가 만만치 않게 상당합니다. 하지만 내용은 시간적으로 보면 4일에 불과합니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극적이랄 것도 없는 주인공 프랭크의 부동산 업무, 연인 샐리와의 통화 내용, 전처 앤이나 고객과의 만남과 대화, 아들과 독립기념일 여행이 전부입니다. 주인공 프랭크는 44세로 이혼남입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한때 스포츠 저널리스트였고 단편소설집은 펴낸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첫아들의 죽음과 이혼 등 시련을 겪은 후 이제는 부동산중개인 일을 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독립기념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혼한 전처와 살고 있는 아들 폴과 독립기념일 주간을 맞아 농구 명예의 전당을 여행할 계획으로 마음이 들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폴은 슈퍼에서 절도죄로 체포돼 독립기념일 다음 날 재판을 받게 돼 있습니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부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며, 프랭크에게는 어쩌면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프랭크는 이혼으로 아들딸과 떨어져 있느라 부모 구실이 쉽지 않았던 터라, 여행 동안 아들에게 ‘긍정적인 자기 신뢰’와 ‘독립’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신뢰>, <독립선언문>을 읽어 오라고 미리 일러둡니다. 


프랭크는 아들 폴이 과거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워짐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길 바라지만 폴은 사회에 대한 반항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발산하는 동시에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프랭크는 이는 온전한 독립의 기준에 맞지 않음을, 그리하여 내면 성찰을 통한 진정한 독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가르쳐주고자 애씁니다.


이들 부자의 여행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폴과의 사이에서 감도는 어색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흥을 내 이런저런 말을 꺼내지만 둘 사이의 대화는 계속 삐걱대고 폴은 잔인할 정도로 계속 아빠의 심기를 긁어댑니다. 결국 독립기념일 전날 아들 폴이 불의의 사고로 실명 위기에 처하고, ‘부자간의 다정한 여행’을 기대했던 그의 희망은 처참히 무너져버립니다. 


최미선=조미정 선생님에게는 이 소설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조미정=등장인물들이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 삶은 하나같이 녹록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프랭크의 연인 샐리도, 살해당한 동료도,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폴도, 아들을 잃은 프랭크 부부도…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버텨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최미선=미국적인 소설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질감이 있으면서도,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성에 동질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조미정=여기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란 백인 중산층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부동산중개인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많은 사람, 제한된 공간, 제한적인 선택이라는, 철저히 자본주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라는 점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모습 아닐까요. 물질적으로는 풍부해졌지만 동시에 늘 생존 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사회적 가면 뒤에 진실한 소통의 부재, 정서적 거리두기와 그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바로 우리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최미선=프랭크는 공적인 일에서는 굉장히 사려깊고 유능하게 느껴집니다. 까다로운 손님들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절함을 잃지 않죠. 그러면서 사적인 영역에서는 감정 처리의 미숙함이 느껴집니다. 


조미정=프랭크는 직업적으로도 유능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원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동산중개인을 만나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고 하죠.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하고, 사랑하고, 잘 노는 것 그리고 연대감이 필요합니다. 프랭크의 삶은 균형이 깨진 상태라고 봐야겠죠.


달리 말하면 사회적 페르소나가 발달된 사람입니다. 아들의 죽음과 이혼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후 방황을 거치면서 나름 찾은 방법 대신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기보다 회피하기로 작정하고 살다 보니 가족들이나 연인과도 진실된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의 감정을 포착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은 특히 한국 문화에서도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의사소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다 보니 어색하고,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감정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미해결상태로 남습니다. 심한 경우 자신의 감정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불능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은 홧병이 생기겠죠.

존재의 시기

최미선=‘존재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존재의 시기란 어떤 시기를 말하는 건가요?


조미정=복잡한 일에 관여하지 않고 인생을 그냥 흘러 보내는 시기입니다. 아들의 죽음과 이혼 등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해체로 인한 충격으로 자신만의 내적 균형잡기이며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와 연결고리를 최소화하고 큰 고통 없이, 큰 기대 없이,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정서적 거리두기죠. 하지만 이런 정서적 단절로 주변 사람들과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내면의 불안과 공허감이 더 커지겠죠.


최미선=혹시 존재의 시기를 보낸 적이 있나요?


조미정=당연히 있죠. 누구나 방황과 혼란과 고립의 시기가 있을 테니까요. 너무 바쁘고 일에 쫓길 때, 사람들 사이에서 지칠 때 나만의 시간이 간절해지기도 하죠.

가족 떠나보내기

최미선=첫아들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상흔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통 큰일을 겪으면, 그 일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이 가족들도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조미정=가까운 이의 죽음을 특히 가족의 죽음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암묵적 압력이죠. 첫아들의 죽음은 큰 트라우마로 남아 부부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상실에 대한 애도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각기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을 수긍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처든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죠.


최미선=프랭크가 존재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아들 폴은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상당하는 장면도 그렇고 여러 가지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친구예요. 폴은 어떤 친구라고 생각하나요?


조미정=폴은 상당히 영민하고 순수한 아이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단단한 아이라고 여겨집니다. 부모의 이혼과 불안정한 환경에서 폴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에게 불만을 행동으로 표출하죠. 게다가 자기 스스로도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폴 역시 자신도 변화가 필요함은 인식합니다. 나름 고군분투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럽고 표현방식도 역시 서툴고 파괴적입니다. 그나마 아빠에게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리지 않은 것 같아 희망이 보이긴 합니다.


폴은 아빠가 ‘재미없는 부동산 일을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는 속 깊은 모습도 보입니다. “아빠, 혹시 차라리 다운증후군이나 아니면 그저 그런 정신질환을 앓는 아이가 내 자식이었으면 하고 바라세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프랭크에게 장난스럽게 “당신은 혹시 자기 자신을 완전한 실패자로 보는 거예요?”라고 묻는 등 프랭크를 계속 자극하는 장면에서 폴이 아주 당돌하기도 하고 슬픔이 느껴집니다. 폴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버지가 폴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폴의 문제행동 기저에는 집에서 키우던 강이자 토비의 죽음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그냥 갇혀 있어선 안 돼.” “이 아빠는 항상 그걸 잘 해내지 못했지. 아주 심했어, 그래도 노력은 한단다.” “나도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뭘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폴의 진지한 목소리에 프랭크는 심장이 덜컹할 만큼 놀랍고 기쁩니다. 


“네가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프랭크는 아들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죠. 그저 아들에게 나쁜 것이 무엇인지만 따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만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다음호에 계속)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시민인문학교 교장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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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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