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목흑유(天目黑油) 찻잔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7-05 0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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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청허당(淸虛堂) 다실(茶室)의 수많은 다기(茶器)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다기는 천목흑유(天目黑油) 찻잔(盞)이다. 다관(茶罐)도 있고 차호(茶壺)도 있고 공도배(公道杯)와 다완(茶碗) 등이 있는데도 작은 분잔(分盞)을 좋아하는 것은 우려낸 차를 담아 마지막 입술에 대는 다기가 잔이기 때문이며 가장 자주 그리고 밀착되는 것이 잔이기 때문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내 입에 맞는, 내 한 손에 곱게 잡히는 찻잔을 선호하게 되는데 아내가 수집한 백여 개의 찻잔 중에서 애지중지하는 잔이 천목흑유잔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을 때 제자가 선물로 준 찻잔인 것이다. 


차실을 찾는 많은 지인이 흑유잔을 고집하는 나를 보고 왜 흑유잔인가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궁합(宮合)이 맞아서라고 대답한다. 원래 궁합은 혼인할 때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입각해 신랑과 신부의 사주(四柱)를 보아 배우자로서 두 사람의 적격 여부를 점치는 점술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 생활 속에서 일반적으로 서로 잘 맞는 관계를 말할 때 쓰는 용어가 궁합이다. 삶 속에서 궁합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소통이란 화두(話頭)가 시대어가 된 지금의 시대에서 궁합이란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찻자리에서 천목흑유잔은 나와 궁합이 잘 맞다고 할 수 있다. 천목흑유잔은 다른 잔과는 달리 잔 입술(잔 테두리)이 도톰하고 질감이 부드러워 나처럼 입술이 얇고 옆으로 퍼진 사람에게는 그저 그만이다. 입술이 도톰하고 앞으로 튀어나온 사람들은 아무 잔이나 잘 맞다. 그리고 입 밖으로 물이 휩게 흘러내리지 않는다. 반대로 입술이 얇고 옆으로 퍼진 사람은 맞지 않는 잔으로 차를 마시면 곧장 찻물이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천목흑유잔은 잔 모양도 둥근 형이라 손 안으로 쏙 들어온다.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잔을 잡을 필요가 없다. 이렇듯 흑유잔은 내 잔으로 차상(茶床) 위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여행할 때도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됐다. 천목흑유잔은 나와 궁합이 맞는 것도 있지만 예술적 작품성도 뛰어나고 역사적 의미도 있어 찻잔 중에서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다. 


천목흑유잔은 송나라(북송)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찻잔으로는 최고의 명품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의 차청(茶城)에 가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북송(北宋)의 채양(蔡梁)은 흑유잔을 묘사하기를 “잔은 짙은 남빛을 띤 검은빛인데 무늬는 토끼털과 같고 잔은 정묘하며 두꺼워서 물을 부으면 오랫동안 뜨거우며 요긴하게 쓰기에 가장 좋다”고 했다. 검은색의 유약이 고온으로 구워지는 가운데 속으로부터 흑유만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토끼털 모양의 문양으로 나타나는데 이른 봄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굽 주위에 유약(釉藥)의 흐름은 꽃받침을 연상케 해 손으로 잡으면 꽃 한 송이를 받드는 것 같아 좋다. 천목(天目)이란 말이 안휘성 천목산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나 나는 반대로 천목잔이 만들어짐으로써 그 산을 천목산이라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천목흑유잔에 차를 부어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밝은 불빛 아래 흑유잔에 차를 담으면 잔 바닥에 계란 노른자 같은 문양이 나타나고 토끼털 같은 잔 벽면의 문양과 함께 태양처럼 보인다. 천목(天目) 곧 하늘의 눈이란 태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아끼는 분신 같은 물건이 있다. 갖고 있으므로 너무 잘 어울리고 유익한 것이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도 내 입에 잘 맞고 너무나 멋진 천목흑유잔을 꼭 갖고 간다. 이제는 이 잔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책을 한 권 쓰고도 남을 만큼 많아졌다. 소유한 모든 것이 다 내게 유익하지는 않다. 귀중하지도 않고 비록 작은 것이라도 나와 궁합이 잘 맞는 그 무엇이 되면 좋겠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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