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운의 계층적 설계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07-05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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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농생태학의 이해(6)

농생태학에서는 전환과정을 중요시합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의 주체인 농민이 농사에서 얻어왔던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돼서는 농민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작물만을 재배하는 단작 형태의 농업 구조는 농기계 운용과 화석 에너지 사용, 그리고 비료, 농약 등 화학 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극대화했습니다. 농산물의 대량 생산을 달성하기 위해서 고비용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체제입니다.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 농업은 규모화된 대농뿐 아니라 소농에도 관철되는 것이어서 고비용 구조는 농업의 수익성을 고질적으로 저하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농생태학적 전환이 중요하면서도 난제인 이유입니다.
 

▲ 여름을 알리는 보리수 열매
생태계의 지지 기반, 토양

대규모 단작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토양에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인삼 재배 농가가 수십 년 인삼을 재배하던 곳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재배지로 옮겨가는 것은 토양의 상태가 인삼을 재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농업 기술이 발전했다고는 해도 일단 토양에 문제가 생기면 단기간에 복구하기 어렵게 됩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장기간 참외를 재배하던 토양이 풀마저 자라지 않는 불모지가 돼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파국적인 토양고갈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농가를 통해 일반화된 대규모 단작 형태의 농사방식은 토양의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조성, 토양 미생물 생태계의 건전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대증요법이 되고 말아 상황은 지속해서 나빠지는 형편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훼손된 토양의 개선과 복구는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없습니다. 토양 자체가 매우 느리게 변화하는 특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만, 그보다는 토양에 가해지는 잘못된 관행의 개선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로 트랙터 등 무거운 기계의 사용으로 토양의 하단부에 생긴 경반층은 맨 먼저 기계 운용을 멈춰야 개선의 여지가 생기는데 기계를 멈출 수 있는 농가가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노동력이 농가당 1, 2인에 불과한 실정에서 기계를 멈춘다는 것은 농사의 포기나 다름없습니다.

무경운 설계의 기초

일반적인 농법으로 운영하던 농경지를 갑자기 무경운으로 경작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파종이나 모종 심기를 하면서 소형 굴착기를 동원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토양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토양 경화현상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퇴비나 비료 등 영양공급에서도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작물을 심은 밭의 온습도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잡초의 극성은 말할 것도 없고 병충해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부작용은 이미 토양에 집적된 무기물의 불균형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경운의 이점은 경운의 이점과 같습니다. 경운은 토양을 뒤집음으로써 토양 하단에 집적된 양분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로는 토양이 분쇄되면서 토양의 조성을 강제적으로 떼알구조(단립구조)로 만들어줍니다. 다시 말해 경운으로 토양의 물리적 성격과 화학적 구성을 순식간에 개선하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경운의 목표는 인위적인 노력 없이 경운의 이점을 지속해서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경운이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인 경반층 형성, 경운의 반복으로 토양의 압밀이 떨어져 기대하는 떼알구조가 점차 깨진다는 점, 만성적인 토양침식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용과 노동력의 감소도 기대할 수 있으나 때에 따라 무경운에도 노동력과 비용이 들고, 경운보다 덜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무경운을 위해서는 일정한 준비단계가 필요하며, 이 단계에서 농작물의 생산성과 수익성의 감소가 없거나 최소화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무경운의 정착에는 여러 해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준비단계는 환경친화적이면서도 부분적으로 토양의 개선과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게 되므로 무경운과 별개로 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무경운의 준비단계는 무경운의 계층적 설계의 밑그림입니다. 준비단계는 그 자체로 농사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어서 무경운으로 진입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 토양 피복은 비닐 대신 유기물로 한다.
2) 영양분 공급은 정기적 토양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퇴비와 액비 공급의 비율을 높여간다.
3) 사계절 녹비작물을 심고, 주 작물과 함께 섞어짓기와 돌려짓기를 한다.
4) 무경운에 대비한 경지정리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무경운 밭의 감자 캐기

농업생태계의 다양성 확보

우리가 다루는 논과 밭은 자연생태계와 유리된 인위적 공간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 상호작용 하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도시조차도 그렇습니다. 이는 농생태학의 접근 방식이기도 한데, 우리의 경작지는 농업생태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생태계의 한 단위로서 경작지가 자연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는 가장 명확한 예가 병충해입니다. 보통 병충해는 자연보다는 농경지에서 집중적으로 확장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농업생태계가 지극히 편향된 식물의 구성단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균과 바이러스, 그리고 벌레들의 경쟁 대상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편협한 식물 구성은 특정 병충의 번성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무경운은 이러한 편협성을 개선하는 역할을 합니다. 토양이 그대로 유지되면 다양한 미생물과 소동물, 벌레들이 안정적으로 서식할 환경이 되는 것이죠. 이를 원활하게 해주는 보조적 요소가 섞어짓기, 돌려짓기, 사이짓기이며, 사계절 밭을 놀리지 않는 녹비작물의 재배입니다.


따라서 무경운 계층의 가장 상단에는 농경지를 생태계로 이해하는 태도가 놓여야 합니다. 일반 농업의 소모적 방식은 토양고갈과 병충해라는 적과의 승산 없는 싸움이지만, 농업생태계와 자연 생태계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농경지를 바라보게 되면, 농경지 생물의 다양성 확보라는 방법론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농경지 식물의 다양성은 그곳에 깃드는 생명체가 다양해지고, 관리와 통제를 간결하게 고안할 수 있게 됩니다.
 

▲ 무경운 밭의 버섯

토양 덮개

무경운의 핵심 기술은 피복(멀칭)입니다. 토양의 침식이나 경화를 막고, 온습도를 유지함으로써 토양 내부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됩니다. 가장 간편한 소재는 비닐입니다. 기대하는 기능을 발휘해주지만,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온습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덮개로 가장 좋은 것은 산속의 낙엽이 썩어 거의 흙으로 변한 부엽토입니다. 그러나 부엽토를 대량으로 채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가장 비슷한 것이 나무껍질이고 이것을 썩혀 사용하면 부엽토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쉽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억새인데 이 역시도 다량으로 확보할 수 없습니다. 농작물의 사체(부산물) 또한 작물의 종류에 따라서는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톱밥이나 왕겨, 쌀겨를 숙성해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경작 규모가 크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식물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겨울나기 작물을 심게 되면 좀더 수월하게 덮개재료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리나 밀을 재배하면 알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을 덮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리와 밀은 억새와 비슷한 성질이 있어 장기간 피복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체 유기물보다 더 좋은 것이 살아있는 식물입니다. 예를 들어 겨울나기 작물로 자운영을 이랑에 심게 되면 이듬해 봄 자운영을 그대로 둔 채, 또는 일부를 제거하고 파종이나 모종을 심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이 피복의 가장 훌륭한 소재입니다. (계속)

 

▲ 겨울을 난 밀 사이에 심은 고추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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