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열풍, ‘ESG 워싱’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 기사승인 : 2021-06-14 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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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ESG 열풍, 핵심은 인권’이란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대신에 해왔던 관행을 바꾸기 위해 국제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물론 강연회는 6월 23일 열리는 ‘제2회 기업과인권울산컨퍼런스’ 사전행사의 의미도 있다. 


2021년 현재 한국에서 뜨거운 주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기업 내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어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과 달리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지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 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ESG는 기업과 인권, ‘인권경영’을 주도(?)하던 공기업, 공공기관과 더불어 민간기업까지 앞다퉈 선언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 등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ESG위원회를 구성하고 ESG 경영을 선언했다. 6월 9일자 지역 언론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협력사의 맞춤형 ESG 평가모델 수립을 지원하고, 지속가능한 조선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면서 ‘협력사 ESG 평가 상호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열풍’이란 단어가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기업의 적극적인 행보가 환영해서만 될 일은 아니다. 겉치레만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전락해 본질이 왜곡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들이 취하는 행보를 보면 이미 겉으로만 ESG를 내세우며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ESG 워싱’에 가깝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준법경영, 윤리경영, 인권경영 등 ‘무슨 무슨 경영’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이 꽤 많이 등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번 열풍에 대한 기대가 조롱으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유다. “기업에게 인권존중책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우 우려스럽다. 


하지만 이번에 등장한 ‘ESG’는 기업의 입맛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ESG’를 측정할 구체적인 방법론과 모든 개념을 인권으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제도가 왜 등장했는지 맥락을 보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ESG는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06년 UN PRI(책임투자원칙)에서 기본적인 구도가 제안됐으며, 이후 ISO26000이나 ‘UNGP(기업과인권이행원칙)’ 등으로 이어지며 주장됐다. 다만 지금 이렇게 소환돼 ‘ESG’ 열풍이 부는 것은 정확히 얘기하면 자율에 맡겨뒀던 기업의 책임을 투자자를 통한 규제로 강제하겠다는 구도와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즉, ESG의 가장 큰 특징은 행위 주체를 기업이 아니라 투자자에 둔다는 것이다. 투자운용사나 연기금은 ESG 지표에 따라 기업들을 평가해 스스로 투자를 결정하거나 고객들에게 투자처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업은 투자를 받아서 움직인다. 바로 그 투자자를 동원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고, 이를 제도화해 규제하겠다는 점이 기존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제도와의 근본적인 차이다. 


쉽게 말해 투자자들에게 ‘ESG 무시하는 나쁜 기업에게는 절대로 투자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ESG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기업마다 공시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ESG는 인권침해를 일삼는 기업에 보내는 국제사회의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CSR(기업의 사회적책임)부터 ‘UNGP(기업과인권이행원칙)’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자율적 책임에서 제도화를 통한 규제로 큰 방향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더 이상의 인권침해를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빼든 칼이 ‘UNGP(기업과인권이행원칙)’였다. ‘UNGP(기업과인권이행원칙)’는 기업의 인권존중책임과 함께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선언을 이끌어 냈지만, 공기업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시점에 다시 빼든 칼이 바로 ESG다.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제도를 들이민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악용하는 기업과 무시하는 기업들이 나타날 것은 자명해 보인다. K-pop, K-방역, K-민주주의 등 소위 K자를 붙이는 것이 어느덧 익숙해진 것처럼 벌써부터 일부 언론사와 경제기관들이 K-ESG를 내걸고 평가하는 상품을 내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기업 멋대로 기준을 세우고,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이제 사회공헌의 이름으로 연말에 연탄을 나르고,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것만으로 ESG에서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준이 바뀌었다. 이제 진짜 센 놈이 왔다. 국제적 기준에 맞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ESG 워싱’은 불가능하다.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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