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서 소설을 쓰는 법

이태영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 기사승인 : 2021-06-15 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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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올해는 비가 자주오는 것 같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오나 보다. 비 오는 즈음에 그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책이 <그 마을에서 소설을 쓰는 법>이었다. 책 제목이 특이하다. 처음에는 소설에 대한 글쓰기 요령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소설이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 같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이다.


소설의 배경은 남해 해변 마을이다. 남해를 여행한 경험 덕분에 소설과 같은 장소는 아니겠지만 소설의 마을 모습이나 언덕에서 바라보는 주변 환경 등을 충분히 상상하는 즐거움이 곁들여졌다. 비 오는 날 색채가 더해진 해안의 언덕에서 비, 그림 그리고 책이 이야기를 엮어낸다. 


여느 소설과 달리 이 책에서는 톡톡 튀는 짜릿함 같은 것은 없다. 소설의 전개가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 비유된다. 비도 여름철 폭우는 아니다. 소설 속 남녀의 마음속으로 비가 스며들고 독자의 마음에도 젖어 든다. 축축한 습기 따위는 없이 모든 것이 비의 정감에 어우러진다. 비의 변주곡은 게스트하우스에 스며들고, 윤솔이 소설가 오덕근에, 오덕근 또한 마을에 스며든다. 그리하여 오덕근의 일상은 어느새 마을에 동화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장마철의 우울한 잿빛 바다라고 생각했다. 어제의 풍경은 고요했다. 잔잔하고 평온했다. 그리고 오늘은 화창하면서도 아련했다. 버스 정류장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외로이 앉아 정면의 바다를 멍하니 응시했다. 동시에 버스를 기다렸다. 이곳에 온 뒤로 아무 생각 없이 풍경을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태함을 가장한 여유, 혹은 그 반대, 어쩌면 그것은 여태껏,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행위였다. 더 좋은 문장, 수준 높은 작품, 인정받는 글을 써야 한다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어떤 작품,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했는지 잊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진 않았다. 다만 소소한 영감과 함께 잊고 있던 몇 가지를 떠오르게 해주었다. 멍 때리며 말이다.”


벽촌 같은 마을이지만 차도남과 차도녀의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카페, 불꽃놀이가 등장하고 이 부분이 아주 작은 클라이맥스로 느껴진다. 서로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잔잔한 물결 같은 연결부분이다. 왜 불꽃일까? 우리는 뭔가를 깨달았을 때 마음속 불꽃이 터트려지고 갑갑했던 마음은 화려한 불꽃으로 산화한다. 매듭의 풀림이다. 윤솔과 오덕근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를 깨치게 된다. 그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가 아니라 남해 해변의 마을에서 가진 두 사람의 휴식을 통한 자아성찰을 통해서였다. 화가는 그리고 싶어하고 작가는 쓰고 싶어하지만 애벌레에서 나비로 되는 과정의 고통과 방황을 겪어야한다. “나아가고 싶었나 봐요. 속도와는 상관없이. 그게 전부예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옆에서 지켜봐 드릴게요” “기다릴게요.” 두 사람은 지적인 인생의 성숙을 통해 공명하고 삶을 공감한다.


깨달음은 시도가 필요조건이다. 작가는 주인집 아저씨가 아줌마를 선택하고 벽촌 같은 마을에 눌러앉을 당시의 마음에 대한 표현으로 한 구절을 더하고 있다. “사람은 갈림길에 선 순간, 어떤 선택을 하던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은 미련에 대해 후회하는 것보단, 그 사람과의 추억을 그리면서 때때로 아파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후회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후회가 숙명인 양 ‘무덤덤하게’와 ‘아무렇지 않게’를 자주 쓰고 있다. 이러한 어휘들은 마음을 졸이지도 않는다. 만약 어느 커피점이 블랙커피만 메뉴로 했다면 아인슈페너나 달콤부드러운 라떼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얼마 안 가 망할거야.”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짜릿함보다는 그냥 덤덤한 것이며, 비 오듯이 촉촉히 적셔지는 것이리라. “같은 장소, 같은 풍경이라도 계절이 다르단 이유로,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그 날의 온도가 다르단 이유로요.”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주인공 오덕근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남해 해변 마을에서 깨닫는다. 덤덤한 일상 속에서 인생을 깨우치는 것, 그것이 ‘그 마을에서 소설을 쓰는 법’이다. 비 오는 날이면 산천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산하에 내리는 비를 보며 이런 책을 다시 펼치고 싶다. 그리고 방역이 허락된다면 촉촉히 비 오는 날의 언덕배기 남해를 다시 찾을 것 같다.


이태영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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