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담론 1: 합의된 규칙, 게임 전성시대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1-11-02 0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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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문학

네덜란드 문화학자인 요한 호이징하가 정립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만드는 인간’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 함께 인간의 중요한 기능으로 정의된다. 이 개념들을 확장 해석해보면, 인간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 호이징하의 이론을 발전시킨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인 로제 카이와로, 호이징하가 놀이를 ‘경쟁’하고 ‘모의’하는 것으로 규정한 데에 카이와는 ‘운’과 ‘현기증’을 추가했다. 호이징하의 놀이가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중 부모가 부르면 그 즉시 마무리되는 것이라면, 카이와의 놀이는 도박이나 놀이기구와 같이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요구되는 형식이다. 전자의 속성이 일회성, 비연속성이라면 후자는 반복성, 연속성을 지닌다. 카이와의 놀이에는 범용되는 일련의 규칙이 있다. 놀이가 자아의 소통과 발견, 나와 타인 또는 세상과의 소통으로 역할하는 것이라면, 놀이의 규칙에 불특정 다수가 암묵적인 동의를 하며 참여하는 것은 게임이다.


플롯의 기본 구조인 기승전결에서 ‘기’는 규칙을 설명하는 시퀀스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 영화의 인물, 사건 등의 전제를 규정하고 소개하면 공포, SF, 판타지 등의 비일상적‧비현실적인 스토리텔링에 관객은 동의하고 몰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게임의 설명서와 같다.


영화에서 ‘게임’이란 키워드를 은유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랑스 화가인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1939)과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1994)이 있다. 르누아르는 프랑스의 부도덕한 성(性) 관념을 고발했고, 장현수는 야비하고 배신이 난무하는 깡패 세계를 보여준다.

 


게임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작품은 2009년에 발표된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 게임>(전 4권)이고, 영화는 2012~2015년에 4부작으로 연속 개봉됐다. 하지만 이 소설과 영화에서의 게임은 순수한 게임적 관점에서 반칙이다. 주인공은 마을 대표로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마을 대표를 죽여야 하는, 강요된 ‘헝거 게임’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선 <배틀 로열>(2000, 후카사쿠 킨지)은 훨씬 직관적으로 게임의 규칙에 충실하다. 중학생들이 파시즘적 학교 교육 방침에서 ‘생존해내기’ 위해 동급생들을 서로 죽이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잘 활용한 일본의 주요한 콘텐츠 중의 하나가 <데스노트>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로 OSMU(One Source Multi Use)된 작품이고, 데스노트 첫 장의 규칙은 스토리텔링 전체를 관통하는 플롯이 된다.

 


한국이 비디오 덱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영화산업을 발전시켜왔고, 콘텐츠를 잘 팔기 위해 반도체산업과 영상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데 반해 일본은 영화시장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다. 그래서 일본 영화는 낮은 예산 안에서 최대한 창의력이 발휘되는 쪽으로 수렴된다. 일본의 콘텐츠들은 다른 국가의 콘텐츠 산업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때가 많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 콘텐츠의 이런 영향력은 다른 국가의 영상등급 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헝거 게임>이나 <오징어 게임>(2021, 황동혁)은 <배틀 로열>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오징어 게임>의 원작이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 작품에는 많은 클리셰(cliché, 어디선가 본 듯한)가 있다. <종이의 집>의 공간, 의상, 소품들이 있고, 플롯은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 게임>, <파이 게임>이 오버랩되며, 극중 인물들의 동선은 <배틀 로열>과 <헝거 게임>의 판박이다. <머니 게임>(2018~2019년, 총 30화)은 빚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은 뒤 살아남은 자들이 상금을 나누고, <파이 게임>(2020년~, 73화)은 ‘머니 게임’의 생존자들을 모아 잔혹성은 허용하되 살인은 금지된 규칙 아래 계급별 시간 보상을 받는 내용이다.

 


전술한 게임 콘텐츠들은 게임처럼 공간이 한정돼 있고, 극중 인물과 관객 모두 기획된 규칙에 합의한다. 허용되지 않은 욕망을 대리만족하며 환호하는 현실은 참으로 기괴하다. 공익적 메타포를 의도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에 대한 반칙 아닌가.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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