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떠나지 않는 생각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10-26 0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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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올해는 장마가 늦은 데다 여느 해와 다르게 비도 자주 왔다. 빗길을 달려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최근 출장이 잦았다. 다행히 일감이 부쩍 늘었다. 소상공인인 난 시즌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지라 연중 항상 바쁜 건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심상치 않아 해를 거듭하면서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일정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는 법이 없다. 물이 들어올 때 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한다. 


사업은 안과 밖의 일이 명확한 편이다. 함께 일하는 동생과 역할 분담도 명확하다. 안을 동생이 책임진다면, 밖은 형인 내가 책임진다. 난 그만큼 밖을 나설 일이 많다. 외적인 관계나 요소로 인한 변화도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변화는 불가피하게 나를 살찌우기도 하지만, 나를 곪게도 한다. 지금은 누구나 비축해야 할 시기다. 더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기 전에 말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나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나를 잊은 듯하다. 눈을 뜨고 눈을 감는 그 순간만이 감지될 정도다. 늘 시간에 쫓기며 속도를 내야 할 상황의 연속이다. 그저 ‘감(感)’에 의존하며 살아낸다고 해야 할까. 그 감이란 것은 늘 일정치 않다.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평소 난 속도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도로가 정하는 속도를 크게 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질상 무엇이든 지나친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그간 경험했던 차들도 속도에 민감한 차들이 아니었다. 속도보다는 실용성이 우선이었다. 일상에선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고, 일터에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어야 했다.


최근 아이가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타기 전에 아이가 자전거 핸들만 잡고 있어도 차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박을 정도로 자주 한다. 차를 타기 전 나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아이처럼 그걸 잊게 된다. 어느 날 빗길 운전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약속 시간을 넘길 것 같았다. 네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을 보니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속이 탔다. 많이 늦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목적지에 연락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말았을 텐데, 그날은 좀 더 빨리 달려볼 심산이었다. 아산로를 지나 명촌교 밑 지하도로를 막 달리던 중이었다. 차가 많은 상황은 아니어서 속도를 조금 올렸다. 막 그곳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올 때, 갑작스런 시야의 변화가 찾아온다. 마침 그때 그곳 같은 차선 내 앞으로 고장 차량이 깜빡이를 넣고 서 있었다. 그걸 미쳐 견지하지 못했던 난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옆에 앉은 어머니도 내 이름이 아닌 손자의 이름을 마구 불러댔다. 빗길이라 미끄러운 상황이었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보니 속도는 줄지 않았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어떤 기지를 발휘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백미러를 보니 옆 차선에서는 차가 바짝 뒤따라 오고 있었다. 꺾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고, 꺾지 않으면 그대로 고장 차량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센델 교수가 책 속에서 말하듯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내게 제시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상황은 실제 상황이었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꺾었다. 차선을 바꿨다. 그때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몸의 감각을 믿었다. 믿었다기보다는 맡겼다는 말이 옳다. 순간 고장 차량과 종이 한 장 사이로 비껴가고 있었다. 뒷차가 크게 ‘빵’하고 나를 향해 욕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사고는 피했다. 뒷차량에겐 미안했다. 누구라도 날카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고장 차량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지 나를 그냥 지나쳐 갔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고장 차량 앞 가까이에서 여성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차량과 부딪쳤다면 운전자로 보이는 그 여성은 어떻게 됐을까.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여성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그 후로 운전하는 내내 그 순간을 복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생각들이 줄지어 나를 괴롭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찍 잠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깼다. 그날은 특히 잠에 들었다 깼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데 깰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해야만 했다.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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