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무슨 상관인데?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1-11-01 0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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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제법 추워졌다. 맨발의 청춘이 가까이 있다. 큰애가 구멍이 숭숭 뚫린 크록스 샌들을 아직도 신고 다닌다. 맨발로 샌들 신고 학교 가려는 걸 불렀다. “양말이라도 신지?” “엄마가 무슨 상관인데?” 맨발에 샌들 신고 나갈 날씨는 아니지 않은가. 발이 추울까 봐 말한 건데 너무하다. 사춘기 조짐이 보인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건 오래됐다. 지금은 가끔이지만 쌀쌀맞은 표정과 뾰족한 말을 매일 마주한다면 괴롭겠다. 


전날에 배춧국을 저녁으로 끓였다. “엄마 음식은 최악이야.” “엄마 상처받았어, 사과해라.” “사과하기 싫은데?” “사과 안 하면 너랑 말하기 싫을 거 같아.” “그럼 우린 말할 일이 없겠네.”하고 휙 뒤돌아 눕는다. 다음 날 아침, 큰애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어제 일을 잊었는지 평소처럼 나를 부르려다 멈칫한다. 그러곤 다시 휙 뒤돈다. 이런 고얀 것.


기분 안 좋게 학교 보내기는 싫어서 “엄마한테 사과해줄래?” 요청했다. “싫어.” 난처하다. 기지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큰애 등에 귀를 대고 혼자 연기하듯 말한다. “뭐라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네 마음은 그랬구나.” 큰애가 마지못해 수그러든다. 화해의 포옹을 나눈다. 큰애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품속에서 “엄마 죄송합니다.” 말한다. 이쯤 되면 나 보살인 듯.


큰애가 왜 화가 났는지 말하길, 내가 막대사탕 약속을 안 지켰기 때문이란다. 저녁 먹고 나서 막대사탕 먹어도 된다고 해놓고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먹으라고 했던 상황이 기억났다. 큰애가 아토피가 있는데 요즘 진물이 날 정도로 심했다. 어릴 때야 가려서 먹였지만 점점 자랄수록 내 손을 벗어난다. 먹는 걸로 실랑이를 하느니 웬만하면 먹게 해줬다. 그러다가 막대사탕은 내가 일관성없이 규제했던 거다. 큰애에게 사과했다.


큰애가 변기에 예민하다. 씻는 건 거실 화장실에서 해도 싸는 건 꼭 안방 화장실에서만 한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한 날은, 안방 화장실이 더러워서 청소했다. 큰애가 화장실에 가려다가 짜증에 울음을 쏟아낸다. 왜 자기한테 안 물어보고 청소했냐고 말이다. 큰애가 서너 살 아이처럼 팔다리를 휘저으며 한참을 운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다.


큰애가 썰물처럼 나가는 요즘 작은애의 밀물에 위로받는다. 작은애가 한글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정성스럽게 삐뚤삐뚤 적은 사랑 편지를 내게 준다. 몇 년 전 큰애가 해줬던 건데 이제 작은애가 하니 감개무량하다. 가끔 작은애가 질투심에 “엄마는 언니한텐 빨간 하트고 나한테는 검은 하트야, 엄마 저리가!”라고 토라지곤 한다. 말은 저리 가라 해놓고 손은 내 옷을 잡아끈다. 이런 대사와 손짓이 귀여워서 웃음이 키득키득 삐져나온다.


큰애가 써준 편지와 그림들을 모아 놨다. 나를 데면데면 여길 때를 대비했다. 네가 지금은 이렇지만 엄마를 지극히 사랑했음을 곱씹을 거다. 효도는 이때 다 한 거야 하며 마음을 다스려야지. 큰애한테 사춘기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지거나 방문 닫고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올 거야.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사춘기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거지.” “내가 그렇게 되면 엄마 나 싫어할 거야?” “아니, 엄마가 널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지.” “나 사춘기 길게 안 했으면 좋겠다.” “사춘기가 언제 오는지, 얼마나 길게 하는지는 사람마다 달라.” 잘 알아들었는지 동생한테 사춘기를 설명해주는 모습을 본다. 나도 남편도 사춘기가 찰나처럼 지나갔던 지라 좀 겁은 난다. 자녀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붙으면 누가 이기나 우스갯소리도 있던데.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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