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잃다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 기사승인 : 2021-11-02 00:00:37
  • -
  • +
  • 인쇄
학부모 칼럼

“그냥 말이 늦는 거라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무서웠고 생각만으로도 그렇게 될까 봐 고개를 저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네 곁에 있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다. 내 사랑이 부족해서였다고 탓했다. 그렇게 희망 고문이 시작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하루가 마치 박제된 마냥 오롯이 기억난다. 너랑 해외여행을 가려고 찍은 여권사진이었는데… 너무 잘 나왔다며 지갑에도 늘 가지고 다니던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 옆에 쓰여 있는 장애인복지카드라는 글씨가 몇 번을 읽어봐도 믿기지 않았다. 6개월을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울며 나는 어떤 희망을 기대했던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직도 네 손을 잡고 다닐 때 아는 누군가와 마주칠까 신경 쓰는 나를 발견한다. 네가 조용히 있어 주기를, 상대가 눈치 못 채길 바라는 내가 너무 싫다. 그러면서 네게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 말한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그냥 버티고 있는 걸까?”


15년을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며 내 SNS에 남긴 글이다. 첫 직장이니만큼 열심히 일했고 내 커리어에 만족하며 살았다. 임신 기간에도 근무하면서 얼른 돌아와서 일할 내 모습만 상상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았고 나도 그 평범함에 부유하며 무뎌져 살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 온 듯했다. 나가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날엔 젊음이 귀한 줄 모르듯이, 평범할 땐 그것이 얼마나 안정을 주는 것인지 따스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비로소 평범함의 반대편에 서게 돼서야 그것이 미치도록 부러운 것임을 알게 됐다.


퇴사이유를 묻는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소문 속에 떠다니고 싶지 않았고 동정 속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수 없었다. 소아과에서도, 은행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우리는 늘 누군가 마주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고쳐먹고 SNS에 글을 썼다. 아이가 부끄러워서 숨긴 것은 맹세코 아니었지만, 모르겠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이젠 내가 먼저 웃으며 아이 손을 잡고 인사한다. 인사가 서툰 아이에게 일부러 인사도 시킨다.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이라고 해서 부모가 매일 눈물 속에 살고, 희망도 미래도 없이 살고 있지는 않다. 다른 가정처럼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공존하고 엄마의 잔소리도 자장가도 공존한다. 최종 목표 또한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평범함을 벗어난 삶에 좌절한 적도 있지만 ‘이만하면 된 거지.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특별할 것도 불행한 것도 없는, 그냥 그렇게 잔잔하게 살아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SNS에 프로필을 뭐라고 쓸까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흔한_은영이’라고 썼다. 실제로 흔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늘 불만이었던 이름이었지만, 말 그대로 그냥 흔한 나로. 흔한 아이 엄마로, 흔한 이웃으로 살고 싶은 바람에 맞는 이름이었다.


장애인 가정이라 해서 다른 시선으로, 다른 삶이라 규정 짓지 말고 기꺼이 평범한 이웃으로 그 곁을 내어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전은영 울산장애인부모회 동구지회 회원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