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동다송(東茶頌)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10-26 0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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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얼마 전 나는 차벗[茶朋友]이 된 아내와 함께 청허당(淸虛堂) 다향만실(茶香滿室)의 찻자리 변화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차 문화를 가꿔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찻자리의 변모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옛것을 지키고자 하는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되새기며 고집의 한 부분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지금의 차상(茶床)을 현대식 탁자와 의자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집 차실에서 국보급인 차상이었다. 오래전 수백 년 된 금강송 밑동으로 만든 통나무 차상이다. 청허당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탐내는 유물인 셈이다. 가부좌(跏趺坐)로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오히려 편한 나만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는 대다수 사람이 양반다리로 앉는 게 불편해서 소파에 앉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니 순간 찻자리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옛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것을 수용해 성장하라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草依禪師)에게는 미안하지만 신(新) 동다송(東茶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학 <택리지(擇里志)>에 이 땅에 피어난 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다시 쓴 <신택리지(新擇里志)>의 작가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변화 앞에서 때로는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전통문화가 설 자리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만들고 창조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다. 개량 한복과 현대화된 한식 등이 이젠 낯설지 않고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한류 문화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전통문화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차(茶)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불교의 선(禪)과 함께 정신적 멋을 응축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선방(禪房) 차 문화만 고집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마당에 동다송(東茶頌)만 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방에서 티브이 홈쇼핑을 통해 가루 커피 같은 보이차 분말 스틱이 자주 홍보되는 것을 본다. 뜨거운 물을 컵에 붓고 분말 스틱 하나 뜯어 부으면 그만이다. 참 편리하다. 찻자리에 앉아 찻잔을 나누는 멋과 의미는 얻지 못하겠지만 바쁜 시대에 걸맞은 차 문화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만 해도 한국의 식당은 대부분 좌탁에 앉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점점 좌탁이 없어지고 높은 탁자와 의자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전통차도 커피숍 같은 찻집으로 변화하고 다양한 음차(飮茶) 방법과 걸맞은 차(茶)의 개발 등으로 시대에 맞는 차 문화를 창조해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통 차 문화를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고유한 정신과 가치, 독특한 문화의 내피는 담아내야 하며 계승 발전해 가야 한다. 신(新) 동다송(東茶頌)이 필요하다는 말을 오랜 망설임 끝에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더 추워지기 전 다향만실(茶香滿室)의 찻자리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그냥 막연할 뿐이다. 지난 중양절(重陽節)에 충담사(忠談師)가 미륵세상을 꿈꾸며 차를 마신 경주 남산 삼화령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에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내뱉은 말이 ‘그래, 충담사가 무슨 격식 따라 산 위에서 차를 마셨나. 내 모습 그대로 정성을 다한 차 한 잔과 교감만이 있었겠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외로운 사람들과 진심으로 나누는 새로운 차 문화라면 그냥 좋겠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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