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울산] - <울산365경> 아름답지만 전체적으로 불균형적-‘언캐니 밸리’ 박상진호수공원

이민정 시민 / 기사승인 : 2022-04-04 0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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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불쾌감에 대한 심리적 이론을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가 발전시킨 것이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이론이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 도리어 불쾌감을 준다는 개념이다. 박상진 호수공원이 언캐니 밸리다. 인공미를 우겨넣으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체를 한다. 도심 속 자연 만끽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연을 학대하고 있다. 호수 전체가 새둥지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유일한 한쪽의 스카이라인에 걸리는 ‘진격의 거인’ 같은 아파트들과 여기저기 꼼꼼하게 숨어 있는 쓰레기나 폐기물들은 만든 자들과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불특정 불쾌감을 만들게 한다. 자연 속 음악공연장은 속도가 제멋대로인 차량들로 북적이고,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방치한 것이며 스카치테이프를 덕지덕지 발라 고정한 안내판은 불안하고 한심하다. 작가들이 실력이 좋아 멋진 숏을 건졌지만 아니, 만들어냈지만 모두 비슷한 곳을 촬영했다. 특색이 없다. 커다란 호수 하나가 덩그러니 있고, 물빛은 진초록이다. 여기저기 뭔가를 잔뜩 붙여 놓았지만 골빈 사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명품‘질’처럼 보인다. 물에 잠긴 나무들 주위로 지저분하고 썩어가는 부유물들이 가득하다. 부디 오리배만은 띄우지 않길 바란다.

 

▲ 투명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은 소등시간 안내판. ©이민정 시민기자

 

▲ 조남훈 시인에 대해 설명 중인 김윤삼 작가. ©이민정 시민기자

 

▲ 다람쥐. ©이민정 시민기자

 

▲ 뿌리가 드러난 고목. ©이민정 시민기자

 

▲ 공연장. 소리도 소리고, 큰 짐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사람은 걸어 다니면 안 될까? ©이민정 시민기자

 

▲ 촬영 막바지 무렵, 호수 쪽으로 난 테라스에서 자세 잡은 작가들. 왼쪽부터 손방수, 이병희, 김교학, 김윤삼. ©이민정 시민기자

 

▲ 좋은 풍경의 대한민국 스카이라인은 모두 아파트인 듯. ©이민정 시민기자

 

▲ 흰색 구조물 아래 검은색 철판으로 수위를 조절한다. ©이민정 시민기자

 

▲ 거대 우체통. ©이민정 시민기자

3월 27일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네 곳을 촬영했다. 남구 남산 은월봉, 북구 박상진호수공원, 남구 공원묘지, 울주 온산공단 야경이다. 작가들은 개인 일정에 맞춰 나들었다. 9월부터 씨네울산 팀의 전시회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지면은 예정대로 매주 게시하지만 사진, 영상, 책 작업을 위한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당분간 무리 되더라도 매주 두 곳 이상을 촬영한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구상한 뒤 제작 및 발표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보니 경력에서 오는 ‘신내림’과 같은 통찰력이 생긴다. 사람이든 장소든 사물이든 그 정체성이 파악되면 공급자는 이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하고 수용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좌우전후를 예상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손님들로 북적이는 주전부리 노점들이 꽉 차 있었고, 주차장엔 주차선을 무시하고 양다리를 걸친 차들로 엉망이었다. 얕은 오르막을 오르자마자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는 ‘산불조심’ 깃발들이었다. 오르막의 수직 높이만큼 또는 그 이상 호수의 깊이일 것이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안전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둘레길은 호숫가를 따라 만든 원형으로, 산불조심 깃발 아래서 왼쪽이나 오른쪽을 선택해 돌면 된다. 오른쪽으로 돌면 흙길이고 왼쪽은 산 바로 아래 방부목으로 이은 덱이다. 오른쪽 길이 왼쪽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앞서 도착한 김교학, 이병희 작가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전망대를 거쳐 야외공연장에 들렀다가 계속 전진했고, 나는 제일 먼저 와서 이미 한 바퀴 돌아 나온 김윤삼 작가와 오른쪽으로 향했다. 손방수 작가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일행 모두와 중간 지점에서 합류한 뒤 다시 돌아 나왔다. 손 작가만 오른쪽 길을 못 갔지만 꼭 가보라고 떠밀 생각이 안 들었다. 딱히 찍을 거리나 볼거리가 없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공원 전경. ©김교학

 

▲ 박상진 의사 동상. ©김교학

 

▲ 호수공원 북쪽 전경. ©김교학

 

▲ 호수공원 야외공연장. ©김교학

 

▲ 둘레길의 나무. ©김교학

 

▲ 호수공원 쪽에서 본 들판. ©김교학

오른쪽 길 오른편은 돌과 펜스로 산사태를 방지하듯 막아놨는데, 뿌리가 훤히 드러난 나무가 위태로워 보인다. 호수 쪽으로 내려다보면 작은 쓰레기들이 거슬리고, 바다의 고래뱃속에도 플라스틱과 함께 가득 들어있다는 마스크가 널브러져 있었다.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물속에서 자란 것인지, 길을 조성하다 보니 물에 잠겨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다, 멋지다, 가 아니라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났다. 나무 주위로 그득한 썩어가는 부유물들은 여름을 걱정하게 했다.


호수 쪽 난간에 울산 시인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김윤삼 작가도 작년 초에 <고통도 자라니 꽃 되더라> 제목의 시집을 냈다. 김 작가가 모두 아는 시인들이라며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김 작가의 시도 걸렸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유명 시인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다람쥐가 시야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놀랐다기보다 반가운 감정에 가깝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촬영을 나가면 청솔모나 다람쥐 같은 작은 포유류들을 종종 본다. 작은 것은 대개 귀엽다. 어머니가 유치원을 했었는데, 작은 동물농장에 다람쥐 두 마리가 사는 쳇바퀴 집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죽어 있었다. 살아 있는 다람쥐가 사료를 먹지 않았다. 슬퍼하는 줄 알았다. 사체를 치우러 할아버지와 함께 갔을 때 산 놈이 죽은 놈 살을 뜯어 먹고 있었다. 기억하는 그때의 감정은 신기함이다. 다람쥐가 도토리만 먹는 줄 알았는데 육식을 하다니. 자연의 섭리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가끔 기억이 난다. 비슷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직접 본 장면이다. 내가 태어나 살던 불광동 집은 주변이 산이어서 꿩이 자주 출몰했다. 따뜻한 어느 날 들쥐가 꿩 똥구멍을 핥더니 점점 몸 안으로 들어가면서 꿩이 죽었다. 내장을 다 파먹은 것이다. 멍청한 꿩, 얍삽한 쥐. 다람쥐를 한 컷 담으며 이 기억들이 떠올랐다.

 

▲ 호수 둘레길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팔각정. ©김윤삼

 

▲ 물에서 자라는 나무. ©김윤삼

 

▲ 팔각정 전경. ©김윤삼

 

▲ 쑥 캐는 사람들. ©김윤삼

 

▲ 호수 전경. ©김윤삼

 

▲ 치렁치렁 늘어뜨린 봄꽃. ©김윤삼

좀 걷다 보니 검정색 중형차 한 대가 제법 속도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기분이 상해서 옆에서 한 컷, 뒤에서 한 컷 찍었다. 야외공연장에서 크게 소리가 들렸다. 반구대에서 영화제를 하며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은 뒤에야 데시벨을 낮췄다는 지역 주민의 주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공연장 쪽으로 들어가자 그 차가 다시 되돌아왔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은 제법 남은 것 같은데, 장비를 실어 온 것으로 보이는 트럭 한 대와 SUV 한 대, 검정색 그 차를 포함한 석 대가 있다. 그러고 보니 통제하는 이가 없었다. 다시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나도 차를 갖고 들어올 테다. 예술경영 전문가를 통해 지역의 문화인과 예술인의 반경을 넓히고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는 일은 중요하다. 울산에 온 뒤로 혼자서 벽 보고 떠들어댄 말의 내용이 이것이다. 그러나 규칙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다. 작은 특권으로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과 작은 기본조차 통제하지 않는 방임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덱 길이 시작되면서 크게 두 가지에 놀라고 한 가지가 무척 불편했다. 내가 꾸는 최악의 악몽은 높은 곳에 방치되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만일 스파이인데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야 한다면 발판이 작은 높은 곳에 올려놓으면 다 불어버릴 것이다, 이다. 수영장에서 수영은 잘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서는 못 한다. 물가의 덱은 나에게 고문이었다.


첫 번째 놀란 것은 반환점에서 아직 마무리가 덜된 것으로 보이는 깎아낸 산마루에 폐기물이 커다란 흙덩어리와 엉켜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나무둥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줄기 하나는 하늘로 뻗어 있는데 하나는 꺾인 채 “언제 머리를 숙여 보셨나요”라는 문장으로 겸손을 강요하는 장면이었다. 절로 휜 가지인지 일부러 꺾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이기심과 멍청함만 보였다. 인사할 때 머리만 숙이면 건방진 인사 아닌가? 난 책을 보느라 매일 머리를 숙인다. 그럼 난 겸손한 인간인가? 작년 초 인터뷰 촬영차 반구대로 가는 길에 뒤에서 차가 들이받은 이후로는 목이 아파서 대형 독서대를 구입해 빳빳한 자세로 책을 읽는다. 그럼 난 겸손하지 않은가? 저 문장이 나무 허리를 억지로 꺾어야 할 만큼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가?
산 쪽으로 바싹 붙어 덱을 걷는 내내 심장박동수가 실제 느껴질 만큼 올라갔고 대략 림프관이 있는 부위들에서 밀려오는 소름을 떨어냈다. 김교학 작가와 이병희 작가가 호수 쪽으로 난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있고 손방수 작가와 김윤삼 작가가 합류했다. 난 헉헉거리며 일단 네 사람을 찍었다. 어쩌면 초입부터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내내 불쾌했던 가장 큰 이유가 덱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불평불만이 이곳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 산책로 입구의 머릿돌과 안내판. ©이병희

 

▲ 호수 전경. ©이병희

 

▲ 호수 둘레길 출구의 공원명과 유시(遺詩) 나무판. ©이병희

 

▲ 전망대 근처 벤치와 그네의자. ©이병희

 

▲ 호수 전경. ©이병희

 

▲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 전경. ©이병희

덱을 벗어났을 때야 편안해졌다. 초입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 갔다 보니 입구의 대형 빨간 우체통을 미처 못 봤다. 서울 평창동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의 우체통이 전국으로 분신을 뿌리더니 울산에 온 이후로 간절곶에서 다시 봤을 땐 그럴 듯했지만 이곳에선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언캐니 밸리의 화룡정점이다.

 

▲ 터질 듯 말 듯한 꽃망울. ©손방수

 

▲ 활짝 핀 진달래. ©손방수

 

▲ 연둣빛 새잎. ©손방수

 

▲ 고즈넉한 풍경 속 팔각정. ©손방수

 

▲ 만개한 노란 꽃잎. ©손방수

 

▲ 봄을 머금은 푸른 솔잎. ©손방수

작가들은 호수의 장면을 멋지게 담아냈다. 서두에서 말했듯 ‘만들어낸 것’이다. 김교학 작가는 노출을 조정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김윤삼 작가는 나뭇가지를 오브제 삼아 운치를 느끼게 했다. 이병희 작가는 대비를 활용해 백두산 천지연의 스펙터클을 창조했고, 손방수 작가는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야외공연장에서도, 난 차량에 감정을 실었는데 김교학 작가는 공연장과 주위 풍경을 명물로 만들었다. 난 이번 촬영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만 찍었다. 보는 순간, 그리고 촬영하는 내내 언캐니 밸리라고 생각했다. 뇌파검사를 하면 내가 부정적 성향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난 단점을 장점화시키는 데 재주가 있고, 아흔아홉 개가 불만이어도 하나의 칭찬거리를 찾는 데 능숙하다. 그런 나지만 박상진호수공원을 영화촬영지로 찾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곳을 훌륭한 장소로 헌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덱을 걷는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심이고, 작가들의 사진을 통해 좋은 장면들이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박상진 호수공원은 스카이라인을 점령한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장소 같다. 앞으로 이런 곳을 조성한다면 부디 전문가들과 고심 끝에 최선을 뽑아내길 당부한다.


이민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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