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1)

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 기사승인 : 2021-05-11 0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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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TV 지상중계

인문숲 시즌2-방황

▲ 왼쪽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오른쪽 박가화 수필가.



은둔의 작가 샐린저

최미선=저자 샐린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은둔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서 행적이 크게 알려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가화=네, 맞습니다. 샐린저는 은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다고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은둔 작가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에 대해서 더 알아보면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 뉴욕시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의 딸이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종교인 유대교로 개종합니다. 아버지 솔로몬 샐린저는 뉴욕에서 육류, 치즈 수입상을 했는데요 그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대부분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부모가 그렇듯이 샐린저의 부모도 자녀에 대한 기대와 교육열이 꽤 높았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명문 학교에 아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진학시킵니다. 그러나 샐린저는 개인적인 기질이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기질 때문에 번번이 정학과 퇴학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에게서 샐린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작품을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샐린저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밸리 포지 사관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샐린저라는 인물 검색을 하다 보니 밸리 포지 사관학교를 평범한 성적, 평범한 아이큐로 졸업했다는 글을 봤는데요. 번번이 퇴학을 반복하다가 평범하게 졸업한 것이 오히려 이렇게 명기할 정도로 화제가 됐나 싶기도 했습니다. 


사관학교를 거쳐 그는 뉴욕대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다니면서 성적 부진으로 또 제적을 당하게 됩니다. 이 정도쯤 되면 부모님이 엄청 화가 날 만도 하죠? 아버지의 강압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안 돼서 유럽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미국으로 돌아와 어시너스 칼리지 문예창작과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한 학기 다니다 제적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다 인생의 큰 반환점이 되는 콜롬비아 대학으로 진학합니다. 그 대학에서 청강으로 듣던 문예 창작 수업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1940년 <휘트 버넷 단편집>에서 ‘젊은이들’이라는 단편으로 등단해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전 세계로 제2차 세계대전이 확대되자 사관학교를 졸업한 샐린저는 지휘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벌지 전투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 전투들은 지금도 그 처참함과 끔찍함으로 악명이 높은데요. 샐린저는 지옥 같은 현장에서 그것들을 그대로 겪습니다. 또한 독일 최악의 유대인 수용소였던 다카우에서 봐서는 안 될 현장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훗날 샐린저는 그 때 그곳에서 맡았던 살 태우던 냄새가 평생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그가 대중들의 관심을 싫어하며 은둔생활을 했던 것은 아마 전쟁으로 인한 외상증후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당시에는 그런 용어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작가의 기이한 행동이라 치부됐을 것입니다. 


샐린저는 프랑스 전쟁 후 파리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납니다. 헤밍웨이는 샐린저의 작가적 재능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혁명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은 샐린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해 잠시 언급하는데요. 그다지 좋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독일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나자 그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잠시 입원하게 되는데 그때 알게 된 독일의 정신과 의사와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 집안의 부모에게 독일인 며느리가 당연히 달가울 리 없었겠죠. 결혼하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 오지만 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몇 달 후 아내는 이혼하고 독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샐린저는 더욱 외부와 단절하게 됩니다. 은둔하며 집필활동에만 집중했던 그는 1951년 <호밀밭의 파수꾼>을 세상에 내어놓게 됩니다. 샐린저의 나이 32살 되던 해였습니다. 이 작품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리게 됩니다. 


그는 유명해질수록 대중으로부터 더 벗어났는데요. 은둔하며 꾸준히 작품을 써 왔다고는 하지만 1965년 이후로 크게 발표된 작품은 없습니다. 2010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최미선: 작품을 읽어보면, 자극에 대해서 세심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아마도 전쟁의 참상을 보고 온 후유증은 아닐까요?


박가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참전했던 작전은 악명 높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습니다. 발을 딛지 않는 바다에서 발을 딛고 선 육지의 적을 향해 전투한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힘든 작전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이 전투로 1만여 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합니다. 상륙작전의 특성상 앞에 쓰러진 전우를 밟고 돌진해 나갈 수밖에 없는데요. 그 두려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으리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어쩌면 제정신으로 버텨내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극에 대해 샐린저의 온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를 알아가는 동안 그 고통이 느껴져 가슴이 짠하게 아팠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홀든 또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로 설정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홀든에게 작가의 투사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부조화, 어지럼증

최미선=호밀밭은 거대 서사가 있지 않아요.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2박 3일 동안 주인공이 겪는 에피소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미분적인 상황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라는 측면이 우리 실제 삶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홀든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박가화=이 작품에서 홀든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양태들을 보고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다양한 양태 속에서 지금 나의 것, 우리 것이 없다 할 수 없겠죠. 살면서 때론 감당할 수 없는 부조화 속에 있기도 합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를 때,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괴리가 클 때, 이런 것들이 서로 양분돼 따로따로 움직이는 상황도 많이 겪습니다. 뭐든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홀든은 순수함을 가진 삶의 진정성과 가식이라는 가면을 쓴 인위적인 것 사이에서 그 타협점을 찾지 못해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그런 일이 제게도 부지기수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타협점으로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쓰게 되는 거죠. 밖에 나가서 사회적인 가면을 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벗기도 합니다. 이중성, 다중성이 되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이중성과 모순을 느끼는 것이 단지 외부상황에서만 있을까요? 나는 아닌데 세상이 막돼먹어서 그런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외부 세상 못지않게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이중성에서도 멀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로 우리가 홀든인 것이죠. 어느 날은 호밀밭을 걸었다가 또 다른 날은 잡초밭을 걸었다 하며 살고 있겠죠.

프레임 사회, 전후 미국

최미선=이 소설이 나왔던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2차 세계대전 후 눈부시게 성장한 미국 사회의 자만이 미국 시민들의 자만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럴수록 사회는 보수화되고 경직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급부로 이에 대한 젊은이들의 환멸이 사회운동으로 표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박가화=전쟁을 끝낸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흔히 ‘정치적 보수주의, 경제적 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의 시대라고 합니다. 전쟁 이후 미국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파괴되고 유럽의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나 오직 미국만이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나라였습니다. 군수산업은 물론 타국의 재건산업으로 미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됐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프레임의 시대로 보입니다. 반듯한 프레임 안에서 안정과 평화를 원했던 것이죠. 미국 역시 전쟁으로 남편, 아들들을 잃어 가장 기본 울타리가 되어 준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내 가정, 내 커뮤니티와 같은 조직의 프레임 안에서 안정감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차 강화되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집단 이기주의도 생겨난 거죠. 


이 작품 속에서도 변호사쯤 되면 골프를 즐기고 마티니를 마시고 어떤 차를 타고 다녀야 된다는 획일화된 프레임이 씌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명문학교를 다니면 체크 무늬의 플란넬 재킷을 입으며 차별화시키는 그들만의 프레임을 가집니다. 점점 허위와 가식의 포장지로 덮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허위와 가식을 쓰고 있는 관습적인 사회에 싫증과 역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겠죠. 주인공 홀든 역시 가식의 도시를 떠나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 곳에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후에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중심으로 일어났던 비트 운동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이는데요. 컬럼비아대학 축구선수였던 소설가 잭 케로액과 역시 컬럼비아대학생이었던 시인 앨런 긴스버그에 의해서 주도된 운동이었습니다.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도시는 신이 떠나 버린 사탄의 도시, 곧 비인간적인 산업화와 기계문명과 물질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오염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허위와 가식으로 잘 짜인 권력 시스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에서 벗어나 각기 다름을 지닌 개성적인 존재로의 욕구를 표현했습니다. 작품 속 홀든이 레고블록처럼 획일화된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했던 것과 맥락이 통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꼰대들로부터 해방을 원했던 것입니다. 


퇴학을 자처한 홀든의 방황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학교란 곳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실존적 저항의 몸짓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부분이 그 시대 젊은이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 같네요.


최미선=프레임의 시대였다라고 표현했는데, 그 프레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느끼는 소외도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일환으로 비트 운동이 일어났다는 말도 이해가 돼요. 홀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홀든은 구토와 어지럼증을 자주 호소하는데, 이는 홀든이 이 사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토, 어지럼증을 많이 호소한 작가는 사르트르나 까뮈 등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들이었는데, 그 흔적을 샐린저에게 느끼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가화=샤르트르의 말 중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샤르트르의 말에 의하면 타자는 ‘나’와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실존을 황폐화시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타자는 나에게 존재의 근거를 부여해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타자들을 보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절대성보다는 타자의 세계 안에 정의된 것 혹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판단이 결정되는 비주체적인 대상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잖아요. 그러니 타자는 필연적 존재이지만 나의 실존은 그로 인해 와해되고 황폐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내가 가진 본연의 절대성과 타자로부터 내가 정의해버리는 것들 사이에서 구토 어지럼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의 실존은 반드시 훼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음호에 계속)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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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 인문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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