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茶道)와 한복

김상천 시인 / 기사승인 : 2021-05-11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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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향만리

오월의 산야는 조화(調和)의 극치를 보여준다. 생명 있는 모든 식물들이 저마다 고유한 빛깔의 청순한 자태를 마음껏 드러낸다. 초록의 물결 속에 울긋불긋 봄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향연의 하모니(harmony)를 연출해 내는 것이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완벽한 교향악이다. 조화(하모니)란 두 개 이상의 요소가 모였을 때 서로 분리돼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없이 서로 고르게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음악에서의 하모니는 일정한 법칙에 따른 화음의 연결을 의미하며 디자인에서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통합적 원리를 뜻한다. 모두가 미적 원리를 통합하는 최종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로서 조화를 말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미니멀 라이프(minimallife)를 추구하면서 경계의 담을 높이 치고 조화(調和.어울림)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해 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삶의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생활이라고는 하나 실은 주변 많은 것과의 단절을 통해 스스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COVID-19 Pandemic)을 통해 더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너와 나의 어울림,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 자연과 자연의 어울림, 더 나아가 사람과 신(神)의 만남과 어울림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대동세상(大同世上)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얼마 전 조카의 신혼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신비한 신천지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내 전체가 하얀색으로 도배돼 있고 거실에 하얀 소파와 티브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순간 “아 이것이 미니멀 라이프라는 거구나”라고 혼자 되뇌었다. 좋은 그림이라도 하나 걸어주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차상(茶床)과 차기(茶器)들을 놓아주고 싶었는데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어울릴 수 없어 보였다. 내 눈에는 단절과 경계(境界)로 인해 딴 세상으로만 보인다. 오직 하나만 있고 더불어 함께 누리는 조화(하모니)는 없으니 나 자신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평소에 한국의 전통 한복을 즐겨 입는다. 옷장에는 계절마다 입는 한복이 여러 벌 있다. 목회 시절에도 성직자 검은 가운보다 한복을 입고 설교했다. 오래전 6.15 행사차 평양에 갔을 때도 홀로 한복을 입고 갔다. 몽골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할 때도 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수거해간 한복을 나눠주고 ‘한국학과의 날’ 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점점 한복 입는 횟수가 적어진다. 부조화(不調和) 때문이다. 더 이상 개량 한복이라도 입은 나를 받아주고 포용하고 어울려주는 곳이 없다. 이 부조화는 관계를 파괴하고 분리시킨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포용함으로써 조화를 이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복을 받아주고 어울림으로 아름다운 자리가 있으니 찻자리이고 다도(茶道) 시연의 자리다. 한복을 입고 찻자리에 앉아 차를 내리는 여인을 상상해 보라. 조화로움의 극치를 느낄 것이다. 차는 원래 천천히 내리고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느림과 기다림이 있는 찻자리의 조화인 것이다. 양복에 커피가 어울리고 찻자리에 한복이 어울린다고 하지만 이 분별심도 경계를 허물면 좋겠다. 서로가 경이로운 차이들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면 좋겠다. 


지금은 개량 한복도 좋아서 불편하지 않고 아름답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차인(茶人)들도 과도한 격식에 빠지면 안 된다. 양복과 차(茶)가 어울리고 한복과 커피가 어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석탄일이 다가오고 있다. 원효는 저잣거리에서 무애춤(無碍舞)을 추면서 일체의 경계를 한 마음으로 허물어버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무애춤을 추는 날을 꿈꾼다. 


김상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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