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장터 풍경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4-19 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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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아주아주 옛날 하늘(환인)의 아들 환웅은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단수(神壇樹) 아래 시장(신시:神市)를 열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했다지요. 단군신화에 따르면 우리 역사의 시작은 시장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웅은 왜 지상 세계에서의 공식적인 삶을 시장에서 시작했을까요? 울산의 대표적인 설화인 ‘처용설화’를 보면 서울로 간 처용이 아름다운 아내를 혼자 두고 달 밝은 밤이면 저잣거리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처용은 왜 저잣거리로 갔을까요? 시장이 우리의 삶이 시작되는 곳, 즉 우리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공간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오늘날의 시장은 과거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코로나19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계절은 좋기만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 오일장은 오늘도 변함없이 열립니다. 마스크만 없다면 장터의 풍경은 예전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오전 11시를 막 넘겼으니, 하루 중 가장 붐빌 시간입니다. 장터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집 앞 단골 커피가게에서 커피를 삽니다. 장날이면 전을 펴고 화장품을 판매하는 지인과 저를 위해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삽니다. 


시장 구경은 장터 끄트머리 주택 대문 앞 막다른 골목길 채소 난전에서 시작됩니다. 상인 부부의 목소리가 건강하게 들립니다. 다양한 채소들이 놓여 있지만, 이들의 오늘 주 품목은 알타리무인 것 같습니다. 알타리무가 돌담처럼 쌓여있습니다. 2차선 도롯가에 짭짤이 토마토, 오렌지, 참외, 양말, 웰빙 뻥튀기를 실은 트럭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해초와 삶은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는 “차~알 옥수수”하고 목청을 높입니다.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건넵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장 구경을 시작합니다. 


전통시장에는 계절 상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히트상품은 열무, 양파, 엄나무 순과 가죽나무 순, 두릅, 미나리, 마늘종, 알타리무입니다. 아~ 고추며 가지, 토마토, 상추, 대파 등 각종 모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태화장에는 큰 광장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장날이면 마술처럼 찻길가와 골목이 장터로 변하지요. 자주 지나가는 길이지만, 좀처럼 들어서지 않는 좁은 골목도 있습니다. 오늘은 가보지 않던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상가주택 2층에 붙은 간판으로 미용실이 2층에 있으려니 했는데, 좁은 골목길에 미용실 입구가 숨어 있습니다. 미용실은 1층에 있었네요. 나나미용실은 오늘이 대목일지도 모릅니다.


장날에만 열리는 빵집에 들러 곡물을 가득 넣어 만든 쿠키를 두 봉지 샀습니다. 빵집 앞엔 화초가 가득합니다. 살 마음이 없어 보이는 구경꾼의 물음에도 화초를 파는 이는 친절하게 말을 받으며,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까지 합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기웃거리다 보니, 사람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옵니다. “영규야, 왔나!”, “아지매 왔능교?” 닷새마다 만나는 사이인가 봅니다. 계란 좌판 앞에선 한 아주머니는 “계란 한판 줄랑교?”라며, 상인의 마음을 살피고, 생선 좌판을 하는 부부는 오늘도 목소리 좋은 젊은 아들과 함께입니다. 옆 가게에 식육점이 새로 들어서면서 생선을 펴놓는 자리가 좁아졌네요. 부모님의 방앗간을 물려받은 젊은 자매는 손님들의 재촉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습니다. 


행주며 가위, 바늘, 고무줄 등 생활용품을 파는 아저씨는 봄 채소에 쏠린 이들의 관심을 끌려는 듯 음악을 틀어놓고 작대기로 장단을 맞춥니다. 장터 경험이 많지 않아 보이는 오징어 장수는 조심스럽게 “연한 오징어 사세요”를 외치고, 장날이면 만날 수 있는 해산물 젊은 이모는 경력이 쟁쟁한 탓에 “제철 주꾸미”를 힘차게 외칩니다. 오랜 노동으로 허리가 아픈 나이 든 상인 아주머니는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손님을 맞습니다.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대로변에 앉은 생선 장수 부부는 장 본 물건을 진 나이 든 손님에게 “엄마, 무겁다, 좀 놓으소”라며 걱정을 전합니다. 


이렇듯 봄날 장터는 활기가 넘칩니다.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음에도, 물건을 사느라 장바구니 수레가 길을 막아도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우러져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저도 그 속에 있습니다.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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