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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천 6거랑을 걷다
480명째 죽음, 미포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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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주제답사]
[향토사 답사] 무거천과 척과천이 태화강국가정원으로 모이다
영축산 참샘에서 발원한 ‘무거천’무거천은 영축산의 참샘에서 발원해 대밭골과 전골을 지나 옥현3교에서 옥동저수지 물과 합친 다음 삼호동을 거쳐 태화강과 합류한다. 이 하천은 지금은 통상 무거천으로 통용되지만 예전에는 물길이 활을 닮았다고 해 궁거랑이라 불렀다. ‘궁’은 ‘큰’의 음전(音轉)으로 보아 큰거랑의 와전으로 보기도 하고, 무거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향토사 답사] 태화강국가정원이 남산 북쪽 산자락을 돌아 태화루를 만나다
위용 되찾은 조선시대 영남 3루 ‘태화루’태화루는 조선시대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로 전해지고 있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와 643년(선덕여왕 12) 울산에 도착해 태화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태화루는 태화사 경내에 조성된 누각으로 황룡연(黃龍淵)이 내려다보이는 태화강변의 절벽 위에 세웠다고 한다.오랜 세월을
<기고> 울산서낭당각시의 성지인 울산 도화골 - 영남가면극의 발상지
울산 도화골, 도화공원은 어디에 있는가?울산은 196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을 선도해 110여만 인구의 도시로 산업화됐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는 울산의 정체성이 담긴 전통적인 원천문화조차도 흔들리게 했고, 사람에 의해 전래됐던 공동체 무형유산은 거의 소멸돼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울산문화원은 1960년대부터 울산공업축제에서 해마다 농악경연
[향토사 답사] 병영성을 지나 구도심 앞으로 흘러온 태화강과 만나는 동천강
1800년대 이후 26번이나 개축한 ‘울산향교’울산향교는 원래 반구동에 있었다.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17년(1488년)에 일읍일교(一邑一校) 체제가 완성된 이후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제자리에 다시 세웠는데 기숙하는 유생 가운데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10여 명에 이르는 등 변고가 잦아 1652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전근(田根
[향토사 답사] 태화강과 여천천이 돋질산에서 만나다
동구 서부동 명덕마을 출신 김운근 박사가 설립에 앞장섰던 ‘울산공고역사관’김 박사는 2004년 울산공고동창회 회장을 맡은 후 울산에서 처음으로 학교 역사관 건립에 앞장섰다. 이 역사관의 건립 취지문은 다음과 같다.“우리 울산공업고등학교는 오랫동안 국가와 지역사회의 간성(干城)을 배출한 산업전문 인력 양성의 산실이었다. 이제 울산공업고등학교 교문을 나선 3만
[향토사 답사] 왜군이 울산에 남긴 임진왜란의 흔적,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
임진왜란은 선조 25년(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明)나라를 정벌하러 가는데 길을 빌려 달라는 구실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으로, 정유재란까지 약 7년 동안 이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의 보급로 확보와 전쟁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본토와 가까운 우리나라 동남해안에 28개의 왜성을 짓도록 명했다. 그중 두 곳이 바로 울산에 있는 서생포왜성과
[향토사 답사]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문수산(文殊山) 일대의 다섯 사찰을 찾아서 - 취선사, 문수사, 혁목암, 망해사, 영축사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에서 후삼국까지의 유사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역사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신화와 설화, 불교, 문학(향가) 등이 수록된 풍부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울산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찰이 열 곳인데 그중 다섯 곳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수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유사가 쓰인 고려시대까지 문수산
베리끝 전설의 특이한 전승과 전파 확인...다양한 문화 예술 콘텐츠로 개발해야
베리끝 전설어느 해 한여름에 며칠째 큰비가 쏟아져서 태화강은 온통 흙탕물을 이루며 무서운 기세로 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이때 젊은 부부가 시집가지 않은 누이동생과 함께 베리끝을 막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를 뒤따르던 두 여자가 공교롭게도 함께 발을 헛디뎌 굽이치는 강물에 휘말렸다. 사내는 자신의 앞으로 막 떠내려가는 옷자락을 엉겁결에 움켜쥐고 허겁지겁
개운포 연안 원주민들의 기억과 기록, 망향비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64년의 기록, <심원권일기> 속 ‘개운포 연안 방문기’1. 성암1911년 8월 27일. 맑음. 새벽에 명동에서 돌아왔다. 아침에 처용에 갔다가 성암의 이 집강회갑연에 가서 놀았다. 사평에 들렀다가 돌아올 때, 남평에서 송어 9마리를 가져다가 지곡의 못에 넣었다.2. 세죽1890년 10월 25일. 구름이 짙고 간혹 비가 옴. 저녁에 세
울산 수령들의 마애비(磨崖碑)를 고찰(古刹)에 새긴 까닭은?
답사의 주제가 정해지고 선뜻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령은 조선시대에 고을을 다스리던 지방관을 뜻하는데, 어떤 연유로 부처를 모시는 종교적인 곳에 세속을 다스리는 수령의 마애비가 있는 것일까? 회원들과 함께 해당 사찰과 각 수령에 대한 조사와 발표를 분담하고, 마애비가 있는 3곳의 사찰을 향한 답사길에 나섰다.운흥사지(雲興寺址)–부사조재선영세불망비(府使
울산지역 두 전설의 국제성
Ⅰ. 아미산(峨嵋山)의 외소나무 전설명나라 풍수가가 찾아낸 아미산의 천하의 명당, 외소나무만 안다아미산은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와 미호리에 걸쳐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유명한 풍수지리학자가 어느 날 저녁에 천문을 살펴보다가 조선의 아미산에서 천하의 명당을 찾았다. 그가 축지법을 써서 조선에 건너와 아미산에서 어렵게 그 명당을 찾아냈다. 그곳에 묘지를 조성하면
60년 만에 다시 만난 전설 속의 울산 호랑이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즉 호랑이해이다. 60년 전 같은 임인년이었던 1962년 울산은 상전벽해의 격변이 시작됐다. 박정희 군사 정부는 그해 1월 옛날부터 성곽들이 즐비한 군사도시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공포했다. 곧 불과 일주일 만에 당시 대현면 납도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함으로써 공업 도시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이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가 군
신라 경순왕은 왜 울산에 잇따라 절을 지었나
경순왕은 통일신라 말인 927년 11월에 즉위했는데, 929년(경순왕 3년) 진흥왕 때 창건한 동축사를 중창하고, 930년(4년) 월봉사, 931년(5년) 옥천암, 932년(6년) 백양사를 창건하는 등 1년 단위로 울산의 동부 권역에 사찰을 지었다.울산향토사도서관 향토사답사회 회원들과 이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네 곳의 사찰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분담
공장에 둘러싸인 개운포 좌수영성
개운포 좌수영성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시민추진단으로 답사 갔던 날, 심한 비바람으로 성곽을 둘러볼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개운포가 고향인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님이 따로 안내하겠다며 번개 탐사를 제안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회원분들과 남구문화원에 모여서 함께 차를 타고 개운포로 이동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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