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천전리성(과부성)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 기사승인 : 2018-12-20 08: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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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언양 천전리성. 사진=문화재청
언양 천전리성. 사진=문화재청


언양 천전리성은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에 있다. 그런데 성의 이름은 ‘명촌리성’이 아니라 ‘천전리성’이다. 이곳은 명촌리와 천전리 경계지점에 있는데, 아마 옛날에는 천전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등억알프스로에서 명촌길촌로로 빠지는 갈림길 따라 뻗어있는 자동차 도로변에 있으며, 산성 아래 모래골못과 등억저수지가 있다.


해발 297m 산성산(山城山)의 8부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이미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언양읍까지는 불과 2k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까지 산성(山城) 중심의 방어체제가 운영되었으며, 전쟁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울산과 언양 주민들은 동래 사람들과 함께 양산에 있는 성황당 산성으로 피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해읍성을 중심으로 한 읍성중심 체제로 전환하면서 1477년(성종 8년)에 울산읍성이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내륙의 교통 요지에 위치한 언양은 1500년(연산군 6년)에 이미 있던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조선 초 언양읍성이 이 지역 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이곳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천전리성도 새롭게 정비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언양읍지(彦陽邑誌)>에는 ‘둘레가 2천 척(尺)이고, 성 안에 우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성의 성립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물이 성안에 있는데다 언양읍성과도 가까워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안의 우물터는 서쪽 일대에 잘 남아 있으며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의 둘레는 740m, 높이는 2.8m, 성벽의 너비는 2.7m~3.2m 정도이다.


성벽은 수직에 가깝게 축조하였으며, 성의 남동쪽은 성벽의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법(內托法)으로, 북서쪽은 내벽과 외벽을 돌로 쌓는 협축법(夾築法)으로 축조되었다. 산꼭대기와 북동쪽 일대에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성 북쪽으로는 물을 뺄 수 있는 수구(水口)도 확인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성의 모양이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과부성(寡婦城)’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이곳에 주둔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많은 남자들이 전사하고 부인들만 남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나 문헌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언양지역의 의병 활동과 관련이 깊은 곳임을 알 수 있겠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는 사찰 암자가 아홉 군데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군데군데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다. 또 한국전쟁 때는 이곳에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현재 성의 석축은 모두 무너지고 성 안에서는 토기 파편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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