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조례, 더 이상 미루지 마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 기사승인 : 2020-09-16 00: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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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9월 제정을 목표로 추진되던 ‘울산민주시민교육조례’가 결국 상임위원회 미상정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채 임시회가 마무리됐다. 지난해 소위 3대 조례가 해당 상임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한 이래 또다시 허무하게 좌초된 것이다. 걱정되는 지점은 이번 미상정이 혐오세력의 조직적 반대로 인한 후퇴가 아닌 내부 이견이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마뜩잖다. 하반기 시의회 원구성 이후 이번에야말로 3대 조례를 제정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이조차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울산시민주시민교육조례’는 말 그대로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할 기본적 소양을 배양하기 위해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역사적 과정을 거쳐 가며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과 동시에 민주주의가 이식되고, 고도로 압축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 제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발전해왔지만 정작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과정은 매우 부실했다. ‘민주주의의 이념과 의미, 가치’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축약되고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의 본령이 무엇인지, 이를 우리사회의 기본적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민주화의 과정은 굴절되고 사회갈등의 양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은 반드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보이는 사회적 갈등은 이런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정규교육과정에서 부족했던 민주시민교육을 보완하고 이를 통해서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높여내고자 조례를 제정하려는 것이다. 남인순 국회의원에 따르면 현재 총 53개 지자체 및 교육자치단체에서 민주시민교육조례가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상반기 의회에서 논란이 됐던 소위 3대 조례와 마찬가지로 ‘울산시민주시민교육조례’의 내용을 조금만 살펴본다면 일부 혐오세력이 주장하는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란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로 제정돼 시행되고 있으며 조례로 인해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조례 제정 시기에만 이렇게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왜일까? 조례의 내용이 아닌 정치적 의도가 깊이 개입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흔히 막무가내 식, 아님 말고 식의 가짜뉴스에 기반한 저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팩트체크’를 거부하는 반지성주의 주장도 동일한 가치를 부여해 기계적 중립 또는 공론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할지 말이다. 


조례 제정에 대한 필요성은 이미 확보됐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에서는 공론화를 주장하며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최대한 아우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조례의 의미이며, 심지어 반대편의 의견조차 수렴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다. 그런데 반이성적인 주장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폭거에도 공론화 운운하며 기다려야 할 것인지 이제는 결론 지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더 이상 일부혐오세력이 주장하는 ‘정치 중립 위반’, ‘성윤리 파괴’등 근거도 없고 사실도 아닌 황당하고 비이성적인 주장들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소환시켜서 진지하게 논의할 정도의 후진사회가 아니라고 본다.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수용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용하는 방식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수용할 것인지 명확히 하고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입법권한을 소중히 사용해야 한다. 시의회가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일부 혐오세력들의 주장이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과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갈망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다. 압도적 지지로 지금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낸 시민들의 의지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 의무다.


그런데 최근 전개되고 있는 사태만을 보면 지난해 3대 조례가 무산될 때와 비슷하게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과연 울산시의회가 ‘울산시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할 의지가 있는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민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제도를 연구하고 이를 입법화하는 것은 시민들이 의원들에게 부여한 권한이자 의무다. 이를 의원 개인의 자의적 판단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일부 반대세력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과 이를 이유로 정당한 조례 제정까지 유보하는 것은 다른 성격의 문제다. 아무리 유권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기준은 가져야 한다.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이제는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인권’ ‘민주’ ‘노동’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대다수 조례들이 제정 단계부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제도적·사회적 개선도 미뤄지고 있다. 개탄스럽다. 


소위 3대 조례와 민주시민교육조례는 사회적으로 계속 심각해지는 혐오와 차별, 인권침해에 맞서 지방자치단체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청소년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혐오세력들의 저항을 이유로 울산시의회가 조례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은 것은 시민들의 대표로서 의회가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울산시의회는 관련 조례안을 즉각 심사하고 본회의에 부의해서 하루빨리 조례를 제정하길 강력히 요청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마라.


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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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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