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창원 행복마을학교, 마을공동체를 향한 핵심적인 고민(2)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10-16 23: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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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마을교육공동체 어떻게 만들까?(2)

창원행복마을학교

창원행복마을학교가 자리한 곳은 천주산 아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구암동이다. 창원시에 대한 인상은 계획도시로 사통팔달한 지역이지만 구암동 이곳은 구 마산지역으로 마을은 대로와 연결되지 않아 30년 섬과 같은 고립된 지역이었다. 살던 사람이 계속 사는 전체적으로 주민들 연령대가 높다. 새로운 세대 유입이 되지 않아 마을문화는 정체됐다.

두 학교가 나란히 있다가 구암중학교로 통폐합되고 비어버린 중학교 건물을 이용해 2017년 말 행복마을학교를 만들려 했을 때 구암동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주민들은 학교건물을 마을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노인정이나 헬스장으로 이용하고 싶어 했다. 여러 과정을 겪어 지금은 경남교육청이 주도하는 공간이 2018년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아직 마을과 밀접히 결합되기엔 시기적으로 일렀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마을주민과 직접 상대하는 일이고 행복마을학교 박경화 센터장도 부담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 창원행복마을학교 건물은 일반고등학교 1학년생을 자유학기제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자유학교’와 고3을 대상으로 하는 ‘창원예술학교’가 같이 이용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강당 건물을 개조해 지역도서관으로 꾸민 ‘지혜의 바다’가 있다.  

 

▲ 창원 행복마을학교는?창원예술학교, 자유학교 등 경남교육청이 추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이동고 기자

 

▲ 학교 강당을 지역도서관으로 개조한 ‘지혜의 바다’. 강당 건물이 갖는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 하나로 열려 있어 개방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동고 기자


마을교육공동체 일 겁나다

박경화 센터장은 마을사람들이 행복마을학교를 좋게 바라보게 된 과정은 ‘지혜의 바다’ 도서관이 여름 피서지로 되면서였다고 했다. 폭염에 부모들이 애를 데리고 와서 더위도 피하고 책도 보고 하면서 자부심도 높아졌다. 행복마을학교에 제빵, 목공 등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주민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도 지역주민을 직접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초기 트라우마는 컸다.
박경화 센터장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배우러 왔다는데 나도 마을공동체 문제에 있어서는 보잘 것 없다”며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해 타 지역을 배우러 가야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배운다고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보다 일단 버터내는 것이 중요하고 일단 기반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올해 들어서는 항상 던지는 질문이 ‘마을교육공동체 일을 꼭 해야 하나? 그런데 내가 안 하면 안 되나?’였다. 그런데 이게 옳은 일이라서 가기는 가는 일로 그 방향성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박경화 센터장이 손으로 만든 다양한 일상용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담고 있었다. ⓒ이동고 기자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

박 센터장의 2018년 목표는 잘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기반을 만드는 일도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저 다양한 마을사람들을 만나는 일인데 ‘왜 하필 내가 저 사람들하고 웃는 얼굴로 마주해야 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나 막걸리 먹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일을 꼭 내가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박 센터장은 “마을교육공동체를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며 “마을 분들과 사귀고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속으로는 ‘다음 주가 환갑인데, 이제 쉬어도 안 되나? 여기서 살살 출퇴근하면서 살아가도 욕 들어 먹지 않겠지’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장렬히 전사하자’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행복마을학교에 계시니 행복하시지예?”하는 질문이었다.
누구 말대로 쉽게 되겠나? 사람이 살면 고단함과 달콤함이 왔다 갔다 하고 마을사람 웃음보고 기분 좋아졌다가 해코지하는 사람 만나면 금세 힘들어지고 하루에도 마음이 수백 번 왔다 갔다 하는 식이었다.
경남지역은 타 지역보다 마을 교육공동체가 시작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혁신학교도 다른 지역보다 4년 늦게 시작됐다. 경남지역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는 결국 학부모가 들어와야 하고 마을교육공동체가 순차적으로도 진행돼야 하는데 창원지역은 작년부터 6개 ‘마을학교 사업’을 지원했다. 타 지역보다 후발 사업이 됐고, 마을교육공동체 일을 푸는 데 교육청에서 주도하는 것이 부담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센터장은 말했다.

 

▲ 부산 어느 초등학교 학부모회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배우기 위해 단체로 와서 박 센터장의 강의를 들었다. 그가 살아온 서사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줬다. ⓒ이동고 기자


파견교사, 마을교사, 자원봉사자

원칙적으로는 교육청이나 학교가 끌어가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속성을 갖고 끌어나가야 한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혼자서 하지 말고 나눠야 한다고 주변에서 말하는데 “누군들 그 일을 다 떠안고 싶겠냐마는 최소한 마을교육공동체 일에 ‘붙박이’는 있어야 한다”고 센터장은 생각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을 사람들이 그 할매(센터장)가 그 학교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저기 가서 뭐라고 말하는 것이 해결은 다 안 되더라도 말은 들어주는 붙박이 역할은 시작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행복마을학교는 중등에서 내가 왔고, 초등에서 한 명 파견, 여기는 파견 온 선생님은 둘 뿐”이라며 열악하다고 햇다, 장학사는 1명이 배치됐는데 교육청을 왔다 갔다 한다. 행정을 맡은 주무관은 따로 3명이 있다. 전체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은 결국 3명이 꾸려가는 셈이다. 3명이 끌고 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을 자원봉사자를 10명 만들어 시간당 만 원을 주고 업무보조를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교육 예약을 받고, 교육생들을 교실로 안내하고 자체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일을 한다. 12명 이상 교육체험생이 들어오면 보조교사 역할이 필요하기도 하다. 지금 마을교사는 마을에서 교사를 뽑지 못해 이 학교를 열기 전 작업장 학교를 같이 했던 사람들로 뽑았다.  

▲ 현관 입구에 들어서면 여러 작업장의 위치와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다.  ⓒ이동고 기자


작업장 학교를 꿈꿨지만 진로취업센터 수준

이 공간은 작년 1월엔 작업장 학교를 꿈꿨다. 학교에서 학업에 전념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여는 학교로 시작했다. 뭔가 하고 싶은 아이들이 가구 배우러 다니고 커피 만드는 것을 배우러 다니고 그런 일을 통해 아이들이 바뀌는 것을 보았던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박 센터장은 “커피를 배웠다고 바리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고 뭔가 배웠다는 것이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애들 눈이 빤작거리게 하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2010년부터 작업장학교를 꿈꿨다. 이전 고등학교 근무할 때 비닐하우스를 헐고 1억4000만 원짜리 33평짜리 한 칸을 지어 20여 개 작업프로그램을 넣었다. 커피 작업, 가죽 작업 등 4개 작업을 동일한 공간에서 하다 보니 먼지도 날리고 문제가 많았다. 교실 한 칸 한 칸 작업장을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 학교가 빈다는 소문을 5월에 듣고 6월에 학년 구분이 없는 학교, 초중고 구분이 없고 마을사람들까지 같이 배우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세워 교육청에 바로 제안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10개 작업 정도를 추려서 제안했고 그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행복마을학교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경남교육청은 예술학교, 창의학교를 만들고 지역 도서관인 ‘지혜의 바다’, ‘헬스클럽’ 등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한편 20억 원 예산으로 공간을 만든다는데 누가 선뜻 나설까 하는 분위기에서 그 정보를 줬던 학교혁신과에서 결국 진행하게 됐다. 2018년 1월 공사를 시작해서 4월에 개관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직업기술을 체험하는 ‘진로 취업센터’ 같은 곳이 됐다. 원래 이 행복마을학교는 프로젝트학교로 시작했다. 지향점은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이 배우는 학교’로 지금 이뤄지는 것과 다르다기에 아쉬움도 많다.  

 

▲ 목공기계와 청결성이 잘 유지된 목공기술을 배우는 교실  ⓒ이동고 기자


장기 프로젝트 프로그램은 쉽지 않고

예를 들면 목공을 배우더라도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춤으로 할 것인지 마을 선생님과 협의해서 같이 풀어나가는 학교를 생각했는데 마을 선생님을 1년 계약으로 모집했지만 이 마을에서 모집하지는 못했다. 일단 마을사람들 반대가 너무 심했고 이 마을에서 구할 엄두를 못 냈다. 고등학교 작업장학교 할 때 2년간 충분히 교감하고 맞춰진 선생님들을 채용했다. 계약을 하는 순간 이들은 ‘밖의 생계’를 다 두고 왔기에 생계를 책임져줘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비용은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에는 무료이고 학교마다 홈키움이 힘든 학생들이 오는 경우에는 지원 예산으로 강사, 재료비를 받고, 마을사람은 강사비는 무료인데 재료비는 본인 부담으로 했다. 밤에는 아이들이 6개월이나 1년 정도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숙련기술자로 키워 이들이 선생이 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꿈을 꿨다. 하지만 마을교육공동체 일을 하니까 너무 바빠 이조차 어려웠다. 

 

▲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제빵 기술을 배우는 교실  ⓒ이동고 기자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프로그램

그런대로 25명 정도의 학생은 장기 프로젝트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것은 ‘학생자치배움터’라고 학생 스스로 뮤지컬반을 만들면 뮤지컬 선생님과 소품을 구해주고 여행동아리를 만들면 여행경비를 지원해줬다. “너희들 활동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이면 무엇이든 다 좋다” 했는데도 학생들이 여기에 자주 못 온다고 한계를 말했다. “애들이 학원 다니느라 너무 바빠서. 우리는 밤10시까지 근무하고 토요일에도 근무하고”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학생들이 방과후에 올 수 있어야 하는데 가장 답답한 것이 저녁 6시 이후에는 공간이 문을 닫는 문제였다. “그 때는 무척 화가 났었는데 그 벌을 이제 내가 받고 있다”고 웃는다.
박 센터장은 “행복마을학교 운영에 제일 큰 적은 시험기간인데, 한 달은 무조건 공부한다고 쉬는데 가만히 보면 공부도 별로 안한다”며 “평일은 기본적으로 학원에 다 보내고 그런 틀을 바꾸는 문제가 가장 어렵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원에 많이 보내니 이런 공간에 대한 설명이 학부모 귀에 안 들어간다고 답답해했다.
이 곳은 아침 9시 반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중학교 자유학기제로 온다거나 고등학교에서 직업체험활동으로 초등학교는 소풍도 많이 온다면서 소풍 오면 여기서 체험하고 도시락 까먹고 ‘지혜의 바다’ 한 번 둘러보고 간다고 했다.
밤에는 장기 꿈 프로젝트, 한 달 동안 하는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지역 학생이 부모와 같이 하는 프로젝트’, 교직원이 학생들을 데리고 와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용자에 맞게 변형이 이뤄지는 형태도 있다. 이 공간에 오기 힘들다면 학교로 예산을 배정한다. 여기 오기 힘들다면 버스를 대 주고 교사와 학생이 같이 하는 프로젝트 활동도 있다.
창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면 학교에서는 오전은 기획, 계획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여기서 직접 실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버스비, 재료비, 강사비를 대주는 방식도 있다. 특히 토요일 오전에는 다문화 아이들이 방문하는 시간, 또 근처 청소년자치센터에서 와서 배우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애들이 놀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자신들 동아리 활동도 한다.  

 

▲ 요리 등을 배우기도 하고 만들어 먹기도 하는 부엌. 학교 급식 메뉴가 새로 개발되기도 한다.   ⓒ이동고 기자


공유사업, 직무연수 등 다종다양한 활용 공간

여기서는 공간 공유사업도 많이 한다, 학교 학부모회에서 모임장소를 빌려 달라, 체험 장소를 빌려 달라 하면 빌려주기도 한다. 교육청에서 대안교육 직무연수를 한다면 빌려주기도 한다. 학교 급식담당 선생님들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 여기에 와서 실습하며 개발을 한다. 올해는 공유사업도 적극적이라 마을 사람들이 기구를 빌려달라면 빌려준다. 하지만 3~4층에 고등학교 자유학기제 창의학교도 있어 소음에 신경 써야 한다. 마을학교는 누구나 불러 들여야 하니 딜레마는 있다. 지킴이반도 있어서 이름, 명찰, 전화번호 다 확인하고 표찰 달고 다닌다. 우리 학생들에게 절대 3~4층은 올라가지 마라 하는 식으로 안전교육을 한다. 전혀 다른 분위기가 한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 좋은 관계, 귀담아 듣기, 눈 맞추기

작업장 선생님은 마을교사라고 불린다. 마을교사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다. 이유는 마을교사와 계속 교육을 같이 해왔기에 “우리는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진로교육센터’가 아니라 ‘애들과 관계를 맺는 곳’이다”라는 식으로 기초교육을 했다. 마을교사들이 한두 시간 수업 같이 하는데 무슨 관계를 맺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선생님들도 “한두 시간 만나서 이야기해도 삶이 바뀌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냐”하며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말고 관계를 맺어라”고 주문한다. 학생을 만나면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고, 웃으며 안아 주고, 애들이 이야기하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 주라고 강조한다.
평가시간에는 진로체험센터에서 키트를 만들어 그것대로 진행한다. 보고하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 놀이가 모든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약간 어렵지만 즐거움을 느끼고 그 일은 세상에 하나 뿐인 예술적인 일로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방과후 수업을 하는 교사가 본인은 다르게 가르쳤다고 하는데도 거의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면 매일 잔소리를 한다. “이것은 창의력이 부족하다. 더 창의성을 넣어달라” 등등. 재료가 다 똑 같아서 그런 작품이 나온다면 재료를 추가로 사 주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작업체험을 다 마치고 평가시간을 20분간 갖는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학생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는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으로 진행하니 선생님들도 간혹 울고 나온다. “이런 생활을 20년간 했는데 누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고개를 끄덕여 준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선생들 삶이 무척이나 메말랐고 힘들었던 것”이라며 “마을교사들은 공부하는 것 좋아하고 마을협의회에 참가해서 협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마을교사와 생계문제

교육과정 단계로 보면 초등학교 5~6학년은 작업장으로 보내고 초등학교 1~4학년은 일놀이터라고 따로 만들었다. 저학년 아이들은 학년 구분 없이 목공도 들어가고 그림도 들어가고 요리도 들어가고 한다. 놀이와 일과 그림이 같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진행하니까 좋아한다. 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인 경우에는 저학년이더라도 부모와 함께 작업장에 들어갈 수 있다. 마을교사들도 프로젝트 공부를 많이 했지만 문제는 이 활동으로는 생계가 해결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기 교실이 생기면 다 만족하겠느냐” 하던 교사들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욕망을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 즉 제빵이나 커피 등 주로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은 불티가 나고 운동 차원에서 하는 업사이클링 공작실 같은 경우는 인기가 낮다. 적정기술도 코딩(프로그램 짜기)도 하면서 실제 3D프린트를 작동하는 것, 뭘 두드려서 만드는 활동 등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 마을교사 생계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 마을교사가 한 달에 받아가는 금액 편차가 심하다. 초기에는 상상경제교실, 사회적경제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열었는데 한 달에 겨우 2번 3번 신청으로 인기가 낮았다. 교육 프로그램은 신청을 1차적으로 받고, 안 차면 또 2차로 받고 그래도 다 차지 않으면 공간을 학부모에게 대여하는 사업으로 연결되게 준비한다.

평가와 전망

교실마다 수업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고 조언도 해준다. 작년은 마을에 문화센터를 만드는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8년 운영결과를 두고 회의했는데 시설 만드는 데 비용을 너무 많이 썼으니 이제 마을사업을 중심으로 운영해보자식으로 평가를 했다.
외국인 견학팀들도 자주 오는 편이다. 수업이 비는 시간이 있으면 여기 와서 설명을 듣고 직접 체험도 하고 간다. 3년 안에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마을교사와 센터 교사들이 협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박경화 센터장의 또 다른 꿈

그는 미술교사로 재직 중일 때도 학생들에게 실습장을 만들기 위한 여러 모험적 시도를 했다. 교사들 주차장을 작업실로 허락 없이 바꾸기도 하고, 마을주민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을 오래 전부터 실험해온 열정이 넘치는 교사였다. 박 센터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마을교육공동체가 꿈꾸는 마을이었으니 말년에 내게 딱 맞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또 “이제 알만 하니까 퇴임할 때가 다 됐다”면서 “사람 일이 다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박경화 센터장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새로운 학교를 꿈꾸고 있다. 네 살배기 아이부터 청소년,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다니는 학교 말이다. 할머니가 네 살 아이를 봐주면 용돈이 생기고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어울려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학교 말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살아야 서로 배울 것이 많다. 네 살 아이도 귀엽다고 한 번 쓰다듬으면 비용을 내야 한다. 나이가 어려도 자립기반을 빨리 갖추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박 센터장은 경제적 자립은 자유와 행복에 관련된 문제이니 꿈꾸는 학교를 통해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꿈꾸면서 하나하나 다가가는 일이라는 게 박 센터장의 믿음이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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