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혜택들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10-14 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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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하틀리(L.p.Hartley)의 <중개인 The Go-Between>은 이렇게 시작된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실로 그들이 다르게 행동했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근에 획득된 관점이다.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사람들은 시간상으로 멀리 떨어진 시기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과거를 현재와 거의 구별하지 않았다.-데이비드 로웬덜, <과거는 낯선 나라다> 중에서

만약 180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어떨까요? 나에게 1800년대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입니다. 역사를 배운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은 해볼 만한 상상입니다. 실은 이미 많은 책과 영화에서 다룬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해 봅시다. 잠시 돌아갔다 오는 게 아니라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거라면 어떨까요? 1800년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그 기계에 쉽게 오를 수 있을까요? 어쩌면 누군가는 개인적인 호기심, 학문적 갈증, 혹은 과거에 대한 환상 같은 이유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역사와 기억은 과거를 미화시키는 경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과거는 그대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웬덜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에서 과거가 주는 혜택에 대해 다음 6개의 범주로 나눠 말합니다.


친숙함, 간접 경험이나 대리 경험은 현재를 더 잘 지각할 수 있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전에 본 적이 있거나 듣고 읽은 적이 있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응집력이 약한 현재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장면을 보게 되면 상황 파악이 더 쉬워집니다. 다시 말해 이해하기 쉽게 잘 기억된 어제의 이미지는 매우 복잡한 오늘의 개념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확인과 확인, 과거는 현재의 태도와 행동이 이전의 것들과 유사함을 확인함으로써 그것들의 정당성을 확증합니다. 역사적 선례는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것을 합법화하는데 현재까지 존재해온 것은 계속 존재해야만 하거나 다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가정 아래 선례는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정체성, ‘과거의 나’에 대한 확신은 ‘현재의 나’에 대한 확신을 내릴 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고향에서 유리된 사람들은 떠나온 고향을 복제하기도 합니다. 옛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동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새로 정착한 곳의 언덕과 들판과 강에 떠나온 고향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상처받은 뿌리를 치료받고자 했습니다. 


지침, 과거는 교훈을 끌어냅니다. 과거가 현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관념은 처음 역사가 서술되던 시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오늘날 대중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의 어려움에 과거의 해결책을 대입해 넣고 있고, 역사가 더는 교훈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역사는 여전히 어떤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풍요롭게 하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과거는 우리 주변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과거에 의해 지지받는 현재는 너무 가까이에 있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현재보다 수천 배나 더 깊은 깊이를 갖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도피, 과거는 만족스러운 현재를 적극 고무시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에 대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며 재미있는 과거는,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과거입니다. 


물론 이러한 혜택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는 없습니다. 정체성은 일종의 가치 높이기 범주일 수도 있고, 친숙함은 지침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혜택은 다른 혜택과 충돌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과거를 이용하는 행위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범주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으며 논리적 모순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과거가 우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매체로는 가능합니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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