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회원 / 기사승인 : 2020-10-08 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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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500년 전에 쓰인 <도덕경>이라는 책은 <주역>, <장자>와 함께 알 듯 모를 듯한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노자가 썼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실존인물인지 생몰연대에 관한 정확한 사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경이 꾸준히 후세에 계속해서 가필돼 오면서 여러 판본이 존재하나 그 내용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시중에 다양한 해설서들이 저마다 자부심을 갖고 출판돼 요즘은 도덕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덕경은 통치술, 존재론, 인간관계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다스리는 자에게는 통치술을, 철학하는 자에게는 ‘도’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으로 발전했고, 특히 인간관계를 위한 처세술 등에 도움이 된다. 


현대사회는 욕망의 문제가 철학적 화두로 많이 등장한다. 지나친 소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그리고 소비를 못해서 불행을 느끼고 갖고 싶은 것은 갖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욕망을 확장하고 제어하는 것에 관한 자기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인 앞에서 자신의 위상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런 삶이 참 피로하다. 이럴 때 잠시 소비를 멈추고 내 속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삭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덕경을 권하고 싶다. 


도덕경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자연이 그런 것처럼 지금의 가식과 작위를 떨쳐버리고 조금 더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욕심을 조금만 줄이면 삶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자는 역설적이게도 버리고 비우면 오히려 차게 되고, 채우고자 하면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마음의 안정과 생명의 보존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노자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명성과 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목숨과 재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명리(名利)를 얻는 것과 목숨을 잃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名與身孰親,身與貨孰多,得與亡孰病? 44장) 이 질문에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노자는 묻고 곧 이렇게 대답한다. “이런 까닭에 애착이 심하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장구할 수 있다.”(是故甚愛必大費,多藏必厚亡。知足不辱,知止不殆,可以長久 44장), “세상에서 가장 큰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고, 가장 큰 허물은 턱없이 욕심을 내는 것이다.”(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46장)라고 말하고 있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진실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차오르는 욕심이, 온갖 잡된 생각과 온갖 지식들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과욕이 위태로움을 불러오고 결국은 우리의 생을 망치게 만든다는 노자의 말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돼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섬뜩한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경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노자는 우리에게 욕망을 제어하는 실천적 방법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오로지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을 아끼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고 자신을 닦는 데는 아끼는 것이 제일이다”(知足者富 33장,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59장),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다.”(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67장) 이렇듯 노자가 말하는 삶의 지혜는 검소(嗇)하고 담박한 삶이다. 검소함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개체는 자기보존의 욕구가 있으므로 이 욕구를 제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욕구에 휘둘려서 살다보면 자기 몸을 망가뜨리게 되고 그런 삶이 멈출 줄 모를 때 타인의 몫까지 빼앗아 가기 마련이고 결국은 상대방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간다. 타인의 고통을 바탕삼아서 내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욕심이나 집착의 줄을 끊고 자연의 순리와 본성대로 살아갈 때 역설적으로 내 삶은 더 빛나고 내 목숨은 더 오래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노자의 계속된 외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자는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더 이상 제어가 쉽지 않음을 간파한 것인지 도덕경 중간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만약에 그래도 욕망이 분수 넘게 발동하면 무명(無名)의 박(樸)으로 진정시킬 일이다”(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37장), “자연에 순응해 질박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면 욕심이 줄어들어 고요해진다. 그러면 천하가 저절로 바르게 안정된다.”(不欲以靜, 天下將自定 37장) 다듬어지기 전의 통나무처럼 질박한 마음과 본연의 순진무구했던 내가 심연 속에 있었던가! 노자는 욕망이 차오를 때면 그것을 상기(想起)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가 볼 때 우리는 바깥의 사물에 예속돼 살고 있다.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는 각기 나름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속물화되고, 또 경쟁의 고삐를 조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 한 발짝만 물러나 보자. 그리고 경쟁하기보다 부쟁(不爭)하고, 나아가기보다는 물러나며, 채우기보다는 비우는 무위자연의 순리를 일깨웠던 노자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삶을 관조하고, 심신의 치유와 회복을 도모하자. 장차 언젠간 문득,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기고, 물러남으로써 나아가며, 비움으로써 채울 수 있는 이치와 지혜를 감오(感悟)하며 놀라워하리라. 이것이 바로 노자가 꿈꿨고, 우리 또한 그 꿈을 꿔야 할, ‘우주와 인간의 만남’을 통해 이룩되는 아름다운 삶의 환희요, 이상이다.


깊어가는 가을 아포리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도덕경을 읽어보자. 한 구절을 읽어도 행복이 스며든다. 지친 나의 심신을 보듬어 주고 나와 이웃의 생명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싶다면 테스형(?)도 좋지만 노자형(?)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해규 울산인문학협동조합 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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