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를 반영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17대 국회의원 / 기사승인 : 2020-10-14 0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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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여성

며칠 전 90이 넘은 노모가 뉴스를 보시다가 “나는 저 이상한 트럼프도 싫고, 멀대 같은 바이든인가 뭔가도 싫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남의 나라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겠냐 마는 사실 미국의 대통령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니 할 말이 없었다. 태평양 건너 먼 한국의 92세 노인도 답답한 마음인데 당사자인 미국의 국민은 오죽할까.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 중에서 조금 덜 나쁜 사람에게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과연 민주적인 방식이 맞는가? 근본적인 의문이 일어난다.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저조한 참여율, 많은 시간과 비용문제로 인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대의민주주의로 대체된다. 17세기 영국의 의회는 군주제하에서 자문역할을 하는 귀족들의 일종의 특권 클럽에서 시작됐다. 사실 ‘민중의 권력’을 의미하는 민주주의가 대표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로 대체된 것은 단순히 효율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다수(민중) 폭정’의 위험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민중의 폭발적인 혁명성에 강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미국 또한 귀족정적 요소가 강한 상원과 투표에 의한 선출 방식에 의한 민주정적 요소인 하원에 의해 의회가 구성되는데 이 또한 다수 인민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절충방식인 것이다. 


특정 계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처음에는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참정권을 주었는데 여기에 돈 없는 사람과 노예, 여성은 배제됐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보통선거가 합법화된 것을 보면 남성 기득권 유지의 가장 큰 대척점에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발에서부터 배제됐던 여성은 동등한 민주적 권리를 갖기 위해 ‘할당제’ 또는 ‘남녀동수제’ 등을 제안하고 있으나 남성 기득권은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홉스 등 당시 정치사상가들은 과거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제를 천박하게 여기고 무시했으며 이후 18세기에 가서야 왕에 대항하기 위한 제도로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떤 제도든 당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형태로 변화 발전하기 마련이다. 현재의 민주제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 당연히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아테네의 민회는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해서 공직자를 선출했으나 사회가 확대되면서 ‘대표’를 선출하는 것으로 변화한 것처럼 이 ‘대의제’ 또한 불변의 원칙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은 우매하지 않고,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아이슬랜드의 해적당 등은 전자기술의 발전을 활용해 여성, 노인, 이방인 등 소외나 배제가 없는 동등한 정치, 투명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오늘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기득권층이 원하지 않을 뿐이다. 


급변하는 미래세상은 여성, 웹, 세계화를 뜻하는 ‘3W시대’라고도 하고, ‘이브’와 ‘진화’의 합성어 ‘이브올루션(EVEolution)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이처럼 과거로부터 동등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던 여성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한 발전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꿨던 민주제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위계가 없고, 여자와 남자는 같은 지위를 가지며, 노인은 권위를 포기하고 젊은이를 흉내 내며 … 이방인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이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수많은 국민이 죽어 나가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보호조치인 의료보험제도조차 갖추지 못한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모델이 될 수 없다. 고대 현인이 꿈꿨던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이영순 여성의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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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17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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